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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구의 상황과 희년의 성취/ 민중신학의 Paradigm Shift를 위하여/ 김용복 박사/ 2002-02-01
21세기 지구의 상황과 희년의 성취/ - 민중신학의 Paradigm Shift를 위하여 - 김용복 박사 <머리말> 1. 지구는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고 있다. 세계가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어 지구적 상황이 지역, 민족사회 그리고 세계사회의 지평이 접속되고 정치계, 경제계, 사회계, 문화계, 종교계, 생명계에서 인간과 생명이 다중 적인 희생의 제물이 되는 현실이 압도하여 오고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구조적 변화는 (1) 지정학적인 재구성과 (2) 모든 차원의 상호연관성이다. 지정학적 재구성이란 지역적 지평과 민족 사회적 지평과 지구적지평이 동시적으로 결합 되여 있는 지정학적 구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또 상호연관성이란 자연, 경제, 사회, 정치, 문화, 종교적 차원은 총체적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인간사회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시장화된 지구적 상황에서 인간의 다중적 희생은 새로운 신학적 과제와 접근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의 한 전략가의 관찰에 의하면 앞으로 인류는 문명의 충돌(Civilizational Clash)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1.1 지구시장은 초국적 기업에 의하여 장악된다. 초국적 기업은 지구적 조직망과 통신망을 가지고 경쟁적으로 시장을 장악하여 사회주의권 내지는 구 사회주의권을 비롯하여 소위 제3세게권은 물론 산업선진국과 신흥공업국의 걍제시장도 장악하려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계적 기업들이 세계경제성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지역적 빈부의 격차는 물론 지구전역에 있어서 경제적 약자는 희생을 당하게 된다. 기아, 가난, 실업 등의 경제적 불안은 그 강도에 있어서나 그 범위에 있어서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될 전망이다. 세계무역기구의 출범은 이러한 세계시장경제질서의 개편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여기소 소위 국가경제체제라는 근대국가의 고정적 개념은 와해되고 오직 세계시장속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경제생활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치열한 경제적 경쟁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1.2.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됨에 따라 근대국민국가(Nation State)의 체제도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초국적 기업의 세계시장의 장악은 국가권력의 약화를 초래하고 국가사회는 세계경제의 운동방식에 적응하도록 강요되고 국가사회의 개방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국민주권의 개념은 절대적인 개념으로 될 수 없으며 지구시장적 역학관계에 노출될 것이며 국민의 주권은 상대적으로 약화라는 현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소위 민족국가 또는 국민국가체제는 심각한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고 세계시장에 개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3.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됨에 따라 세계적 경제경쟁의 격화는 물론 모든 사회관계의 대립, 갈등, 모순은 심화될 것이며 격화되고 심지어는 폭력화 될 전망이다. 이 경쟁관계를 무한 경쟁이라고 칭하기도 하고 정글의 현상으로도 비유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경험해 왔던 민족간의 갈등, 계급간의 대립은 물론 모든 사회관계가 다차원적으로 대립, 강등, 모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1.4.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되는 상황에서 인간의 정신생활과 문화생활에 대한 충격은 가장 심각하다. 세계시장은 세계적인 통신망을 구축하고 정부를 유통하며, 세계는 지구적 다중매체에 위하여 지배될 것이며 따라서 모든 민족 또는 공동체 문화의 정체성, 문화적 도덕적 정신적 가치 그리고 삶의 양식은 시장의 소용돌이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지구시장의 경쟁적 논리는 문화적 차원에서는 문화전쟁으로 까지 치닫게 될 것이며 이런 차원에서 문명의 충돌이라는 말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종교와 종교의 관계도 치열한 시장적 경쟁관계에 종속되게 될 것이다. 1.5.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됨에 따라 지구의 생명은 더 커다란 회생을 당하게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생태계의 위기는 서구형 산업경계체제와 산업발전의 모순 즉 자연과 인간의 대립이라는 관계에서 인식되어 왔다. 이제 시장의 세력들은 상대적으로 시민의 정치적 압력을 초월하여 군림함으로 그 사회 정책적으로나 생명계에 대한 정책이 파괴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전망이 더욱 커 졌다. 생명의 환경은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적 의지의 결집이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게 되어 가고 있다. 2. 민중과 생명은 공히 희생되고 있다. 2.1. 지금까지 전통신학은 물론 민중신학은 민중의 희생은 생명의 파괴와 연대관계 없이 이해되었었다. 민중신학에서 조차 생명의 파괴는 별도의 문제로 취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민중의 생명은 자연의 생명과 일체적인 것이다. 민중의 생명은 민중의 삶과 구분되지 않으며 민중의 삶은 생명 그 자체와 구별될 수 없다. 우리는 생명일반의 파괴를 민중의 생명파괴에서 체험한다. 따라서 일반 생명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며 모든 생명은 차별없이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되고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민중신학의 共生的 또는 相生的 생명론(Minjung Ecology)을 말할 수 있다. 2.2. 일반생명과 민중의 생명과 민중의 삶은 일체적인 실체이다. 생명과 삶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이다. 민중의 살림살이(삶)가 민중의 생명을 좌우한다. 민중의 생명은 민중의 졍제적 살림살이(Minjung Political Economy)에 의하여 크게 좌우된다. 민중신학은 생태계(Ecology)와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를 유기적으로 이해한다. 로마서 8장 21절(우주의 신음) 2.3. 생명체의 파괴와 민중의 희생은 단순히 사회경제적 기반에 의한 계급적 모순과 갈등구조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체의 파괴는 생명의 자생성의 붕괴이며(토지훼손) 민중의 생산적 주체성(노동과 경영)의 종속이다. 생명체의 파괴는 계급적 모순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적 산업조직과 거대기업의 현대과학기술(Technocracy)을 기반으로한 총체적인 경쟁적 통제적 경영논리에도 기인한다. 이 과정은 생명의 자생성과 민중의 노동과 생산적 주체성이 부정되는 것이다. 나아가서 경제적 가치(화페등과 같은 금융경제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적 가치)가 생명이나 공동체의 삶에서 유리된 채 창출되어 경제적 힘이 생명 희생적 주체 억압적 실재로 작용한다. 이러한 경제적 희생은 단순한 재화의 결여나 빈부의 구조적 격차에 의한 에 의한 빈곤이나 기아에서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다. 2.4. 생명체와 민중은 살림살이를 결정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성과 자유를 박탈당하거나 억압당하고 있다. 생명체와 민중의 삶은 생명과 삶의 공동체의 민주적 형성이 독재체제(예 개발독재)에서는 물론 자유주의체제 또는 신 자유주의어려워 짐에 따라 그 주체성이 억압된다. 2.5. 민중의 삶과 생명은 정보산업과 문화산업에 의하여 더 희생당할 전망이며 다중매체에 의하여 그들의 생명과 삶이 문화적 폐허와 정신적 억압으로 고난 당하지 않으면 안된다. 3.. 민중은 포괄적이고 상호연관성을 가진 모순관계에 의하여 수난을 당하고 있다. 3.1. 민중신학은 지금까지 정치적 억압 즉 힘이 있는 자와 힘이 없는 자의 모순과 갈등과 계급적 모순과 갈등을 축으로 하여 민중의 고난을 이해하여 왔다. 민중의 생명과 삶을 파괴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 경제적인 모순과 갈등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산업문명과 생태계의 모순, 문화적 피폐와 억압, 폭력, 생명의 정신적 기반의 붕괴라는 종속적이 아닌 독자적인 요인과 모순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3.2. 그리고 민중의 삶에 있어서 대립과 갈등은 상호연관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모순관계로 이해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상호연관성을 간과하고 분석적 차원을 절대화하는 우를 범하였다. 따라서 민중의 생명과 삶은 분석적 모순관계로 축소되고 환원되었다. 3.3. 민중신학은 80년대에 들어와서는 또 이 모순의 위계질서를 물질 우선적으로 정하였다. 물질을 기반으로한 계급갈등이나 민족갈등을 우선적으로 분석하는 데서 다른 차원의 모순과 갈등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또 1980년 이전에는 민중의 고난과 투쟁을 명확한 모순의 분석이전의 상태에서 인식하였었다. 그러나 이제는 민중신학이 모순과 갈등과 대립을 다차원적으로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고 각차원의 상대적 독자성과 고유성 그리고 각 차원간의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생명체와 민중은 다차원적 희생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3.4. 민중의 생명과 삶에 있어서 폭력과 평화의 문제를 정의의 문제보다 우선순위를 낮게 정하였다. 정의는 평화의 기본조건이고 평화는 정의의 충분조건이다. 모든 모순과 갈등과 대립은 폭력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으며, 평화적으로 모순과 대립을 극복하는 것도 민중의 생명과 삶을 일으켜 세우는 데 중요한 요건이다. 지금까지 민중신학은 폭력의 문제를 상대적으로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폭력의 다양한 실체를 소홀히 파악하였으며 폭력극복을 위한 노력을 미온적으로 하여 왔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폭력의 실체를 단순히 수단적인 차원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민중의 희생은 결국 폭력에 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민중신학은 폭력문제를 물리적인 수단의 차원을 넘어서 다차원적인 생명파괴의 실체로 인식하여야 한다. 3.5. 민중의 생명은 자연적 조건, 정치 경제적 조건만으로는 지탱될 수 없다. 민중의 생명과 삶은 문화적, 예술적, 심미적, 정신(영)적 차원에도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런 조건은 물질이나 자연에 종속된 요건이 아니라 독립되어 물질적 요건과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민중의 생명과 삶에 있어서 감성의 풍성함과 운율의 다채로움도 본질적인 활력의 일부이다. 민중의 생명과 삶은 그 정신과 혼백의 활력을 중심에 지녀야 살아있게 된다. #4. 민중의 주체성의 재구성 4.1. 민중신학은 민중의 역사적 주체성을 정치 경제적 차원을 중심으로 이해하여 왔다. 그리고 민중의 주체성을 정치 경제적인 소유와 권력의 차원에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민중의 주체성인식에 있어서 정치 경제적 축소주의에 빠져 비 정치 경제적 요소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 4.2. 그러나 민중의 주체성은 그 모순관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다차원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민중과 생명체는 생명의 주체이며, 삶전체의 주체이다. 그럼으로 민중의 사회전기는 정치 경제적 차원에 국한될 수 없고 종교적, 정신적, 정신적 차원이 상호연관성안에서 공히 인식되어야 한다. 민중의 주체성은 同活體로서 내적으로 외적으로 다차원적 주체성간에 공생관계와 협동관계를 내포한다., 이것은 마치 다양한 주체들이 원탁에 공히 지리를 같이하는 조합적 또는 집합적 주체를 형성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4.3. 민중신학은 권력이나 소유의 문제에 있어서 그 실체를 표면적으로 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고 따라서 민중의 소유, 민중의 권력을 낭만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4.4. 그러나 민중의 생명과 삶은 소유의 문제나 권력을 획득하고 장악하는 데서 해결되지 않고 소유관계나 권력관계를 원적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민중이 소유나 권력관계에서 종속되고 억압당하고 있을 지라도 그 생명과 삶은 간헐적으로 소유와 권력관계의 쇠사슬에서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체험을 가지게 된다. 민중의 주체는 권력과 소유이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 4.5. 민중의 생명과 삶은 소유와 권력을 장악하는 데서 성립되지 않고 소유와 권력에서 \\\"해방\\\"될 뿐 아니라 소유와 권력관계자체에서 \\\"초월(Kenosis and Diakonia)\\\"됨으로 이루어 진다. 민중신학은 소유와 권력관계의 악순환을 근원적으로 차단하여야 했다. 5. 민중과 연대관계 5.1. 민중신학은 연대관계를 너무 단순차원에서 인식하였다. 민중의 연대를 정치 경제적 소유나 지배의 관계에서 이해하는 경향은 민중의 주체의 배타성과 파당성을 강조한 나머지 민중의 고립을 자초하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다. 5.2. 민중의 연대관계는 민중주체성의 포괄성을 전제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민중생명과 삶은 소유와 권력관계에서 중요하게 이루어지지만 그 차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독자적이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5.3. 생명체와 민중의 삶의 연대관계는 전통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계급간의 연대(Inter-class Solidarity), 문화적 차별을 넘어서는 연대 (Inter-gender Solidarity), 정치적 지배관계를 넘어서는 연대(Inter-political Solidarity)등 모순과 갈등 등의 대립관계속에서도 연대의 다리를 모색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체과 민중의 삶이 이러한 연대망을 구축하는 것은 모순을 애매하게 인식하거나 억압세력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와 민중의 삶이 포괄적인 주체로 성립하고 포괄적인 연대를 수립하여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5.4. 따라서 민중신학이 주창하여오던 절대적 적대관계란 논리적으는 있을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다. 5.5. 주체로서의 생명체외 민중은 포괄적인 주체성을 토대로 다양한 연대관계 그리고 모든 적대관계를 뛰어 넘는 연대관계(공생, 협동, 연대)를 형성하여야 할 것이며, 항상 유동적이고 열려있는 연대운동을 벌려가야 할 것이다. 6. 종의 형체와 Diakonia의 살림살이 생명공동체(Oikonomia Tou Theou) 우리는 성경이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민중적 사회전기 즉 예수의 형체를 통하여 민중의 주체를 재구성하려한다. 희년은 노예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히 노예적 생산관계에서 해방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노예가 그 주체성을 항구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빌립보서 2장에 종의 형체를 입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기까지한 하나님을 영광의 주로 고백하는 구절이 있다. 이것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자화상 즉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섬기기 위하여 십자가의 수난을 받으러 왔다\\\"는 선언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이는 이사야서에 표출된 \\\"고난의 종\\\"즉 메시아라는 신앙적 체험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나아가서 초대교회는 종(Diakonos)을 공동체의 직분으로까지 세웠다. 여기서 역설적으로 이야기되는 종의 형체, 종의 사역, 고난의 종은 민중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이 종의 실체 안에 주체적 실체를 역설적으로 함유함을 의미한다. 이 종의 형체를 공동체(교회론)적으로 표현하면 이는 \\\"섬김의 공동체\\\"로 이해된다. 여기서 예수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주체로 일으켜 세운다. 섬김이란 모든 사람은 일으켜 세운다. 실로 DIAKONIA운동은 모든 생명체와 민중을 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운동을 의미한다. 예수를 따르는 민중은 이미 종속적 관계에서 종의 \\\"사역\\\"에 강요되었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안에서는 모든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메시아적 DIAKONOS의 사역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민중의 주체성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즉 민중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메시아적 종의 형체\\\"를 입게 된다. 이 섬김의 공동체 안에서는 민족적 주체성, 사회경제적 주체성, 문화적 주체성, 정치적 주체성, 종교적 주체성, 생명적 주체성의 기적을 일으키는 섬김의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갈라디아서 3장, 예배소서 4장>에서 이 역설적 同活體의 실체가 이야기되고 있다. 7. 희년과 민중신학 7.1 땅은 생명의 그루터기이다. 땅의 회복이란 생명의 회복을 의미한다. 생명과 땅은 공생동활의 연대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1995년 민족희년의 선포는 삼천리금수강산을 민족의 생명의 정원으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7.2. 희년은 민족의 삶을 보장하고 안전하게 하는 경제적 살림살이를 의미한다. 즉 민중이 경제적 살림살이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금 펼쳐지고 있는 세계시장에서 민중의 살림살이공동체는 지역적 지평과 민족적 지평과 세계적 지평에서 그 주체성을 공히 확보하여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적 소유관계만을 의미하지 않고 살림살이 전반의 경영(DIAKONIA)적 주체를 의미한다. 이것이 민중신학이 말하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우리는 희년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을 근거로 한 경제행위에서 \\\"경제적 주체의 형체\\\"를 발견한다. 레위기 25장과 마태복음 6장에서 이 실체가 들어 나고 있다. 한국민족의 성원들이 복된 살림살이를 꾸미는 일이 민족경제의 과제 일 것이다. 기독인과 민중교회는 경제적 주체로서 민족경제의 요체를 실현하여야 한다. 7.3. 희년에서 선포되는 해방은 노예의 사회경제적인 주체회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민중의 포괄적인 삶의 주체형성을 의미한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과 삶에 대한 주권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며 모든 억압체제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서 억압체제를 변혁하고 새로운 살림살이의 주역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에스겔서 37장(전반부)은 생명과 삶의 주역을 일으켜 세우는 비전을 그린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희년이 부과하는 정치적 과제를 지역 사회적 차원에서, 민족 사회적 차원에서 그리고 세계 정치적 차원에서 민주시민을 일으켜 세우는 일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7.4. 희년의 선포는 샬롬(화평)의 계약을 의미한다. 이는 총괄적인 생명과 인간의 사회안전보장체제를 민중이 주체적으로 이루고 가꾸어 가는 운동을 의미한다. 사회적 DIAKONIA는 사회적 평화의 내용이다. 사회적으로 모든 생명과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서 사회복지와 안전의 주역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사야 11장이 이런 희년의 표상이다. 그리고 에스겔서 37장 후반부의 \\\"화평의 계약\\\"은 민족DIAKONIA와 민족통일과의 관계를 잘 설명하여 주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의 비전은 민족DIAKONIA의 과제로 설정될 수 있다고 본다. 7.5. 희년은 생명과 삶의 축제이다. 축제 없는 곳에 생명도 삶도 있을 수 없고 생명과 삶을 이룰 수도 없다. 시와 노래와 춤이 어울려 생명체와 민중의 문화적 영적 주체가 날개를 펴고 땅과 하늘에 생명과 삶의 향연을 이루는 축제가 희년이다. 요한 계시록 21장 22장이 이런 희년의 표상이다. 우리한국교회는 민족의 문화와 종교를 천시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민중신학은이에 대한 회개운동을 전개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민족에제 주신 시와 노래와 춤과 아름다움과 신선도와 같은 그림을 활성화하여 희년의 나팔을 불면서 생명과 삶의 축제마당을 열어야 할 것이다.
A History of Israel(1)<이스라엘의 역사(1)>/2009-12-03
A History of Israel(1) 이스라엘의 역사(1) [1] 앗수르의 확장과 사마리아 함락 디글랏빌레셀 3세는 왕권을 찬탈한 후 B.C.745년부터 727년까지 다스렸다. 신 앗수르 시대는 B.C.745년부터 612년까지를 말한다. 디글랏빌레셀 3세는 북서쪽 아람 국가인 아르밧, 북쪽의 알레포, 운키를 상대로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럼으로써 북부 수리아와 지중해 북부 팔레스타인 연안에 대한 통제권이 확고해졌다. 이와 같이 디글랏빌레셀 3세가 앗수르 제국을 확대하고 세력을 확장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호세아 왕은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앗수르의 살만에셀은 호세아를 감금하고 3년 동안 사마리아를 포위하였다. 이것이 바로 종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호세아 왕은 앗수르에게 반란을 일으키면서 애굽 왕 소(So)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의 애굽은 자체내의 사정이 어려워 호세와 왕을 도와줄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B.C 752년 살룸은 스가랴 왕을 암살하고 왕위를 찬탈하였으나 므나헴에게 암살되었다. 므나헴은 디글랏빌레셀에게 조공을 바침으로써 왕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앗수르의 다음 목표는 블레셋이었다. 앗수르의 블레셋 진격은 애굽에서 시작되는 무역로를 통제하고 이스라엘이나 시리아가 애굽에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통로를 차단하려는 목적을 지녔다. B.C.733년 이스라엘의 베가를 포함한 아람의 작은 나라들은 앗수르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였다. 이 동맹이 바로 유다왕 아하스가 가담하지 않으려고 했던 동맹이며, 그로 인해 다마섹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B.C. 732년 디글랏빌레셀은 다메섹으로 진격하여 그곳 왕 르신을 처형하고 다메섹이 다스리던 지역을 한 행정구역으로 편입시켰다(왕하 15:29).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영토는 에브라임 산의 중앙산지로 축소되었다. 디글랏빌레셀 3세는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베가 왕을 퇴임시키도록 모종의 조치를 취하였으며(왕하 15:30) 호세아를 새로운 후임 왕으로 인정하였다. 이스라엘은 그 나라의 19번째이며 마지막 왕으로 엘라의 아들 호세아를 맞이하게 되었다. 호세아는 불과 두 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왕국의 아홉 번째 왕조를 출범시키며 이스라엘의 마지막 9년을 다스렸다(B.C 732-722). 그는 과거 이스라엘이 영토 가운데 그때까지 남아 있던 사마리아 도성 및 그 주변의 일부 에브라임 산지를 다스렸다. 호세아 왕은 디글랏빌레셀 3세의 후계자인 살만에셀 5세에 대한 조공을 중단하고 애굽의 소에게 원조를 요청하였다. 살만에셀 5세는 호세아 왕의 이와 같은 반란에 대해 사라미를 3년간 포위하여 마침내 함락시켰다. 사마리아 포위공격은 B.C.724년부터 722년까지 계속되었다. 사마리아 성이 함락된 B.C 722년 27,290명이 포로로 잡혔다. B.C 734년부터 B.C 669년까지 65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강제이주가 진행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이 왜 사마리아에 필요하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왕하 17:7~18). 여호와께서 도와 줄 수 없거나 이스라엘을 구원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주권에 충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세의 법에 이미 경고되었던 심판이 결국 성취된 것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포로 유배생활이 B.C 734년부터 약 65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B.C. 734년부터 669년까지 이사야의 예언대로 정확히 65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강제이주가 진행되었다. 이주 정책은 사르곤 2세의 손자인 앗수르 왕 에살핫돈 시대에 와서야 완료되었다.
A History of Israel(2)<이스라엘의 역사(2)>/2009-12-03
A History of Israel (2) 이스라엘의 역사(2) [2] 앗수르의 지배 원래 앗수르는 유다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주로 다메섹과 이스라엘을 최종 공격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B.C 740년 이후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아하스는 친앗수르 정책을 채택하여 권력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서 유다는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애굽은 국내의 정치적 혼란과 왕권 경쟁으로 복잡한 상황이었다. 유다는 앗수르의 유다는 앗수르의 속국이 되면서 주변에 팔레스타인의 다른 반자치국가들과 함께 외로운 변방으로 남게 되었다. 유다는 반앗수르 동맹에 가담하지 않았다. 요담은 에루살렘 성전의 문과 오벨 성벽을 건설하고 성읍들을 확장하였으며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요새와 망대를 세우는 등 여러 가지 선한 일을 하였다. 히스기야 왕은 B.C 729년에서 B.C 686년까지 42년간 통치하였다. 그후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55년간 통치하였다. 반앗수르 동맹에 대한 동참을 거부해 온 아하스(B.C. 743~715)는 사면으로부터 압력을 받았다. 다메섹의 르신과 사마리아의 베가의 침입을 받았다. 아하스에게 가장 큰 전쟁은 수리아 - 에브라임 동맹과의 전쟁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아하스에게 두 왕의 협박에 굴하지 말고 독자적인 노선을 유지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의 언약적 개입에 관한 선지자의 권고를 거절하고 대신 디글랏빌레셀 3세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B.C 727년 디글랏빌레셀이 죽자 사마리아의 호세아가 반란을 일으켜 조공을 중단하였다. 그러나 살만에셀 왕이 즉각적인 공격을 가해오자 이스라엘 왕은 다시 조공을 바치기로 결정하였다. 살만에셀 왕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B.C 724년 사마리아를 포위하였다. 히스기야 왕은 B.C. 729년부터 686년까지 42년간 통치하였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기 시작했다(왕하 18:3~7). 그는 성전을 다시 열고 수리하였다. 그리고 모든 이방 종교들을 파괴하였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바벨론을 선점한 틈을 다서 다시 한번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B.C 701SUS 산헤립이 유다와 애굽을 향해 서쪽으로 진군을 하였다. 산헤립은 이스라엘을 공격하였고 성은 포위되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에 조공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했다. 히스기야가 죽과 나서 그의 아들 므낫세는 B.C 696년부터 642년까지 55년간 통치하였다. 므낫세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전혀 없었다. 므낫세는 앗술바니팔에 의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에살핫돈은 B.C. 648년경 그의 부친 산헤립이 파괴한 바벨론을 다시 재건하여 앗수르 제국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므낫세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4~5년 정도 더 통치를 했다. 므낫세의 아들 아몬은 B.C 642년부터 640년까지 2년간 통치했다. 므낫세는 왕궁 대신들의 음모에 의해 죽었다. 이 무렵 앗수르가 지배하던 한 세기는 끝나가고 있었다. 바벨론이 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A History of Israel(3)<이스라엘의 역사(3)>/2009-12-03
A History of Israel(3) 이스라엘의 역사(3) [3] 바벨론 패권시대(B.C.640~539) 고대 근동의 맹주로 부상했던 앗수르는 B.C 627년 앗술바니팔의 사망과 함께 극적이면서도 빠른 속도로 퇴보하기 시작했다. 유다 지역을 관할하던 앗수르의 통치는 애굽의 지배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신흥세력 바벨론의 부상은 애굽으로 하여금 앗수르와 연합하게 만들었다. 유다가 멸망하기 전 100년의 역사는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수르, 바벨론, 애굽 세 나라와의 상황에 따라 위기와 안정을 되풀이하였다. 유다는 B.C.621년 요시아 개혁의 결과로 왕국의 회복과 재통일을 위한 희미한 희망과 기대를 가졌으나, 주변 국제정세의 불안과 대혼란으로 그 이후 B.C.587년까지 25년의 기간은 유대에게 아주 가혹한 시련이었다. 유다를 다스렸던 5명의 왕 중 2명은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3명은 유배지에서 죽었다. 앗수르는 새롭게 등장한 바벨론과 싸워야했고, 바벨론은 애굽과 싸움을 벌였다. B.C.610년 앗수르는 하란성까지 밀려 있다가 바벨론과 스키타이 동맹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요시아가 통치했던 B.C 640~609년 사이의 31년 동안 유다는 외부의 적과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으며 나라의 재건과 신앙과 관련된 영적 문제에 몰두할 수 있었다. 요시아는 우상을 몰아내고 예루살렘 성전을 청소하고 보수하였다. 유다 쇠퇴기에는 스바냐(B.C. 640~609년), 하박국(B.C.615~598년), 나훔(B.C.663~612년), 예레미야(B.C.627~562년) 등이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요시아가 죽고 나서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대를 이었다. 당시 바벨론은 앗수르와의 싸움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그 틈을 타서 애굽의 느고 왕은 여호아하스를 감금하고 그의 형인 여호와김을 왕으로 세웠다. 그리고 애굽은 유대로부터 조공을 받았다. B.C.605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내자 유다는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바벨론은 애굽을 상대로 계속해서 공격을 했다. 바벨론과 애굽의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유다는 애굽의 도움을 받으려고 기대하면서 바벨론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그 때문에 B.C.598년 여호와김은 죽고 말았다. B.C.597년 느부갓네살은 요시아의 셋째 아들인 맛다니야를 유다 왕으로 삼았다. 맛다니야는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B.C.587년까지 통치하였다. 맛다니야의 이름은 나중에 시드기야로 바뀌었다. 시드기야는 애굽의 도움을 받아 바벨론에게 반란을 일으키기로 작정하였다. 이에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성을 포위하게 되고, B.C.586년 7월 예루살렘은 마침내 함락되고 말았다.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의 두 아들을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살해하였고, 시드기야도 두 눈이 뽑혔다. 유다가 멸망한 후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그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다랴도 왕손 이스마엘에 의해 살해된다.
A History of Israel(4)<이스라엘의 역사(4)>/2009-12-03
A History of Israel(4) 이스라엘의 역사(4) [4] 포로생활과 제1차 귀환 바벨론이 임명한 새 총독 그다랴는 두 달간 총독으로 지내다가 이스마엘에의해 갑자기 살해당했다. 첫 포로들이 바벨론으로 간 것은 B.C. 605년이었으며 이때 다니엘과 그 세 친구인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다른 왕족 및 귀족들과 더불어 포로로 끌려갔다.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은 경제적으로 부를 누렸으며 어떤 사람들은 다니엘처럼 고위관직에도 오르기도 하였다. 신 바벨론 제국은 느부갓네살 왕 때 최고조에 달했다. 그는 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건축학적인 업적을 남겼으나 정치적인 안정은 별로 누리지 못했다. 베벨론 제국은 느부갓네살의 카리스마와 개성으로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그가 죽자 제국은 곧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느부갓네살이 죽고 23년이 지나자 수도 바벨론은 메대 - 바사 제국을 건설한 고레스의 손에 넘어갔다. B.C.539년 바벨론은 고레스에 의해 정복되었다. 고레스는 메대와 소아시아, 바벨론을 정복한 후 피지배백성들의 종교를 허용하는 정책을 택하였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일부 귀환하게 되었고, 성전을 재건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A History of Israel(5)<이스라엘의 역사(5)>/2009-12-03
A History of Israel(5) 이스라엘의 역사(5) [5] 에스라와 느헤미야 인도하의 귀환 바벨론은 70년 포로기간 동안 언약백성들의 활동 중심지가 되었다. 헬라는 B.C.487년 델로스 동맹을 체결하고 아테네로 하여금 그 동맹을 이끌도록 하였다. 다리오 통치 초기에 중단되었던 성전건축이 다시 재개되었다.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재건을 주도한 사람은 여호수아였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성전재건에 반대하고 나섰다. 사마리아 함락 당시 북쪽 지역에 남았던 이들은 속국 백성들에 대한 앗수르의 이주정책으로 들어온 많은 이방인들과 혼인관계를 맺어왔다. 바벨론을 정복하고 메대 바사 전역을 다스리는 통치자의 자리에 오른 고레스 대왕은 B.C.538년 유명한 조서를 반포하였다. 그것은 유대인들과 같은 포로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이었다. 세스바살은 1차 귀환을 이끌었고, 더 나아가 성전재건으로 이어졌다. 그 후 에스라와 느헤미야 인도 하에 두 차례의 귀환이 더 있었다.
A History of Israel(6)<이스라엘의 역사(6)>/2009-12-03
A History of Israel(6) 이스라엘의 역사(6) [6] 헬라시대(B.C.332~167) 바사 시대의 전성기는 B.C.550년경부터 B.C 167년경까지였다. 후기 아케메니아 시대는 전반적으로 음모와 부패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 무렵 헬라라는 새로운 세력이 점차 힘을 얻고 있었다. 바사는 스파르타와 싸우는 아테네를 지원했다. 그럼으로써 소아시아의 헬라 도시들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갔다. B.C.338년 아테네에게 대승을 거둔 필립과 그의 아들 알렉산더는 바사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등장했다. B.C. 332년 마게도냐의 알렉산더는 바사제국을 초토화시켰다. 알렉산더는 마게도냐 태생이었으며, 문화적으로는 헬라인이었고, 개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교육을 받았다. 헬라어는 공식 언어가 되었고, 헬라의 사고방식은 고대 사상과 맞서기 위한 새로운 틀을 제공하였다. 유다는 이 모든 변화의 물결로부터 차단되어 있지 않았다. 100년간 계속된 애굽의 포톨레마이오스의 통치와 그 후 수리아의 셀류쿠스의 통치를 받으면서 유다 역시 헬레니즘이라는 새로운 물결에 깊이 잠기게 되었다. 세 강대국들이 알렉산더의 제국을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마게도냐에는 안티고누스 왕조, 애굽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수리아에는 셀류쿠스 왕조가 차지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의 학정 이후 유대인들은 안티오쿠스 3세의 유화정책을 반겼다. 안티오쿠스는 토라를 국법으로 인정하고 백성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하였다.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들은 3년간 세금을 면제받았고, 그 이후 모든 세금은 종전보다 1/3 감면되었다. 이 시대의 헬라화가 기여한 기념비적인 업적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 방언으로 번역한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72명의 번역자들이 헬라어 번역본을 72일 만에 완성했는데 각 번역자들의 역본이 모두 일치했다는 것이다. 이 번역본을 70인경이라고 한다.
A History of Israel(7)<이스라엘의 역사(7)>/2009-12-03
A History of Israel(7) 이스라엘의 역사(7) [7] 마카비 반란(B.C.167~134년) 샐류쿠수의 헬라화 정책에 대한 반발이 처음 시작된 곳은 모딘이었다. 안티오쿠스이 사자는 셀류쿠스 정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모딘에 이방신 제단을 설치할 것을 요구하였다. 맛다디아는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며 즉시 거부했다. 수리아의 억압정책은 여호와에게 드리는 모든 성전 예배를 중지시키고 할례를 금지시켰으며 토라 연구를 금지시켰다. 맛다디아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었고, 그의 아들인 유다 마카비가 대를 이어 반란을 계속했다. [8] 하스몬 왕국(B.C.135~63) 셀류쿠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점차로 쇠퇴해지고 있었고, 두 왕조 모두 내부적인 문제로 멸망에 다가가고 있었다. 로마 역시 B.C.133년 그라치 가문이 일으킨 내란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내전은 B.C.33년 아우구스투스가 원수정치를 수립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로마는 동쪽의 수리아와 팔레스타인 정사에 개입할 여유가 없었다. 데미트리우스는 셀류쿠스이 통치 170년째 되던 해인 B.C.142년 시몬 마카비에게 독립과 아울러 조공을 면제해 주었다. 당시 유대 문화 속으로 점차 침투해 들어오는 헬레니즘 문화와 사상에 대한 반발로 많은 분파가 새로 생겨났다. 그중에서 경건파 하시딤은 가장 보수적인 유대인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종교적 자유와 율법에 대한 철저한 준수를 주장하고 모든 형태의 헬라적 문화와 사상을 배척하였다. 이 하시딤은 나중에 바리새파가 된다. B.C.63년부터 로마는 예루살렘을 통치하게 되었으며 유대는 로마에 조공을 바쳐야 했다. 히루카누스 2세는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으로서 제한적인 구실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의 동생 아리스토불루스는 로마의 포로로 압송되었고, B.C.61년 폼페이의 개설행렬 때 전시되었다. 이렇게 하여 하스몬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로마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옛땅으로 입성하여 이 지역이 수리아주로 편성됨으로써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는 모두 끝이 난다.
A History of Israel(이스라엘의 역사)/2009-12-03
A History of Israel 이스라엘의 역사 [1] 앗수르의 확장과 사마리아 함락 디글랏빌레셀 3세는 왕권을 찬탈한 후 B.C.745년부터 727년까지 다스렸다. 신 앗수르 시대는 B.C.745년부터 612년까지를 말한다. 디글랏빌레셀 3세는 북서쪽 아람 국가인 아르밧, 북쪽의 알레포, 운키를 상대로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럼으로써 북부 수리아와 지중해 북부 팔레스타인 연안에 대한 통제권이 확고해졌다. 이와 같이 디글랏빌레셀 3세가 앗수르 제국을 확대하고 세력을 확장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호세아 왕은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앗수르의 살만에셀은 호세아를 감금하고 3년 동안 사마리아를 포위하였다. 이것이 바로 종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호세아 왕은 앗수르에게 반란을 일으키면서 애굽 왕 소(So)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의 애굽은 자체내의 사정이 어려워 호세와 왕을 도와줄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B.C 752년 살룸은 스가랴 왕을 암살하고 왕위를 찬탈하였으나 므나헴에게 암살되었다. 므나헴은 디글랏빌레셀에게 조공을 바침으로써 왕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앗수르의 다음 목표는 블레셋이었다. 앗수르의 블레셋 진격은 애굽에서 시작되는 무역로를 통제하고 이스라엘이나 시리아가 애굽에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통로를 차단하려는 목적을 지녔다. B.C.733년 이스라엘의 베가를 포함한 아람의 작은 나라들은 앗수르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였다. 이 동맹이 바로 유다왕 아하스가 가담하지 않으려고 했던 동맹이며, 그로 인해 다마섹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B.C. 732년 디글랏빌레셀은 다메섹으로 진격하여 그곳 왕 르신을 처형하고 다메섹이 다스리던 지역을 한 행정구역으로 편입시켰다(왕하 15:29).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영토는 에브라임 산의 중앙산지로 축소되었다. 디글랏빌레셀 3세는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베가 왕을 퇴임시키도록 모종의 조치를 취하였으며(왕하 15:30) 호세아를 새로운 후임 왕으로 인정하였다. 이스라엘은 그 나라의 19번째이며 마지막 왕으로 엘라의 아들 호세아를 맞이하게 되었다. 호세아는 불과 두 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왕국의 아홉 번째 왕조를 출범시키며 이스라엘의 마지막 9년을 다스렸다(B.C 732-722). 그는 과거 이스라엘이 영토 가운데 그때까지 남아 있던 사마리아 도성 및 그 주변의 일부 에브라임 산지를 다스렸다. 호세아 왕은 디글랏빌레셀 3세의 후계자인 살만에셀 5세에 대한 조공을 중단하고 애굽의 소에게 원조를 요청하였다. 살만에셀 5세는 호세아 왕의 이와 같은 반란에 대해 사라미를 3년간 포위하여 마침내 함락시켰다. 사마리아 포위공격은 B.C.724년부터 722년까지 계속되었다. 사마리아 성이 함락된 B.C 722년 27,290명이 포로로 잡혔다. B.C 734년부터 B.C 669년까지 65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강제이주가 진행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이 왜 사마리아에 필요하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왕하 17:7~18). 여호와께서 도와 줄 수 없거나 이스라엘을 구원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주권에 충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세의 법에 이미 경고되었던 심판이 결국 성취된 것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포로 유배생활이 B.C 734년부터 약 65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B.C. 734년부터 669년까지 이사야의 예언대로 정확히 65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강제이주가 진행되었다. 이주 정책은 사르곤 2세의 손자인 앗수르 왕 에살핫돈 시대에 와서야 완료되었다. [2] 앗수르의 지배 원래 앗수르는 유다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주로 다메섹과 이스라엘을 최종 공격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B.C 740년 이후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아하스는 친앗수르 정책을 채택하여 권력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서 유다는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애굽은 국내의 정치적 혼란과 왕권 경쟁으로 복잡한 상황이었다. 유다는 앗수르의 유다는 앗수르의 속국이 되면서 주변에 팔레스타인의 다른 반자치국가들과 함께 외로운 변방으로 남게 되었다. 유다는 반앗수르 동맹에 가담하지 않았다. 요담은 에루살렘 성전의 문과 오벨 성벽을 건설하고 성읍들을 확장하였으며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요새와 망대를 세우는 등 여러 가지 선한 일을 하였다. 히스기야 왕은 B.C 729년에서 B.C 686년까지 42년간 통치하였다. 그후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55년간 통치하였다. 반앗수르 동맹에 대한 동참을 거부해 온 아하스(B.C. 743~715)는 사면으로부터 압력을 받았다. 다메섹의 르신과 사마리아의 베가의 침입을 받았다. 아하스에게 가장 큰 전쟁은 수리아 - 에브라임 동맹과의 전쟁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아하스에게 두 왕의 협박에 굴하지 말고 독자적인 노선을 유지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의 언약적 개입에 관한 선지자의 권고를 거절하고 대신 디글랏빌레셀 3세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B.C 727년 디글랏빌레셀이 죽자 사마리아의 호세아가 반란을 일으켜 조공을 중단하였다. 그러나 살만에셀 왕이 즉각적인 공격을 가해오자 이스라엘 왕은 다시 조공을 바치기로 결정하였다. 살만에셀 왕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B.C 724년 사마리아를 포위하였다. 히스기야 왕은 B.C. 729년부터 686년까지 42년간 통치하였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기 시작했다(왕하 18:3~7). 그는 성전을 다시 열고 수리하였다. 그리고 모든 이방 종교들을 파괴하였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바벨론을 선점한 틈을 다서 다시 한번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B.C 701SUS 산헤립이 유다와 애굽을 향해 서쪽으로 진군을 하였다. 산헤립은 이스라엘을 공격하였고 성은 포위되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에 조공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했다. 히스기야가 죽과 나서 그의 아들 므낫세는 B.C 696년부터 642년까지 55년간 통치하였다. 므낫세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전혀 없었다. 므낫세는 앗술바니팔에 의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에살핫돈은 B.C. 648년경 그의 부친 산헤립이 파괴한 바벨론을 다시 재건하여 앗수르 제국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므낫세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4~5년 정도 더 통치를 했다. 므낫세의 아들 아몬은 B.C 642년부터 640년까지 2년간 통치했다. 므낫세는 왕궁 대신들의 음모에 의해 죽었다. 이 무렵 앗수르가 지배하던 한 세기는 끝나가고 있었다. 바벨론이 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3] 바벨론 패권시대(B.C.640~539) 고대 근동의 맹주로 부상했던 앗수르는 B.C 627년 앗술바니팔의 사망과 함께 극적이면서도 빠른 속도로 퇴보하기 시작했다. 유다 지역을 관할하던 앗수르의 통치는 애굽의 지배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신흥세력 바벨론의 부상은 애굽으로 하여금 앗수르와 연합하게 만들었다. 유다가 멸망하기 전 100년의 역사는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수르, 바벨론, 애굽 세 나라와의 상황에 따라 위기와 안정을 되풀이하였다. 유다는 B.C.621년 요시아 개혁의 결과로 왕국의 회복과 재통일을 위한 희미한 희망과 기대를 가졌으나, 주변 국제정세의 불안과 대혼란으로 그 이후 B.C.587년까지 25년의 기간은 유대에게 아주 가혹한 시련이었다. 유다를 다스렸던 5명의 왕 중 2명은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3명은 유배지에서 죽었다. 앗수르는 새롭게 등장한 바벨론과 싸워야했고, 바벨론은 애굽과 싸움을 벌였다. B.C.610년 앗수르는 하란성까지 밀려 있다가 바벨론과 스키타이 동맹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요시아가 통치했던 B.C 640~609년 사이의 31년 동안 유다는 외부의 적과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으며 나라의 재건과 신앙과 관련된 영적 문제에 몰두할 수 있었다. 요시아는 우상을 몰아내고 예루살렘 성전을 청소하고 보수하였다. 유다 쇠퇴기에는 스바냐(B.C. 640~609년), 하박국(B.C.615~598년), 나훔(B.C.663~612년), 예레미야(B.C.627~562년) 등이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요시아가 죽고 나서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대를 이었다. 당시 바벨론은 앗수르와의 싸움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그 틈을 타서 애굽의 느고 왕은 여호아하스를 감금하고 그의 형인 여호와김을 왕으로 세웠다. 그리고 애굽은 유대로부터 조공을 받았다. B.C.605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내자 유다는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바벨론은 애굽을 상대로 계속해서 공격을 했다. 바벨론과 애굽의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유다는 애굽의 도움을 받으려고 기대하면서 바벨론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그 때문에 B.C.598년 여호와김은 죽고 말았다. B.C.597년 느부갓네살은 요시아의 셋째 아들인 맛다니야를 유다 왕으로 삼았다. 맛다니야는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B.C.587년까지 통치하였다. 맛다니야의 이름은 나중에 시드기야로 바뀌었다. 시드기야는 애굽의 도움을 받아 바벨론에게 반란을 일으키기로 작정하였다. 이에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성을 포위하게 되고, B.C.586년 7월 예루살렘은 마침내 함락되고 말았다.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의 두 아들을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살해하였고, 시드기야도 두 눈이 뽑혔다. 유다가 멸망한 후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그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다랴도 왕손 이스마엘에 의해 살해된다. [4] 포로생활과 제1차 귀환 바벨론이 임명한 새 총독 그다랴는 두 달간 총독으로 지내다가 이스마엘에의해 갑자기 살해당했다. 첫 포로들이 바벨론으로 간 것은 B.C. 605년이었으며 이때 다니엘과 그 세 친구인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다른 왕족 및 귀족들과 더불어 포로로 끌려갔다.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은 경제적으로 부를 누렸으며 어떤 사람들은 다니엘처럼 고위관직에도 오르기도 하였다. 신 바벨론 제국은 느부갓네살 왕 때 최고조에 달했다. 그는 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건축학적인 업적을 남겼으나 정치적인 안정은 별로 누리지 못했다. 베벨론 제국은 느부갓네살의 카리스마와 개성으로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그가 죽자 제국은 곧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느부갓네살이 죽고 23년이 지나자 수도 바벨론은 메대 - 바사 제국을 건설한 고레스의 손에 넘어갔다. B.C.539년 바벨론은 고레스에 의해 정복되었다. 고레스는 메대와 소아시아, 바벨론을 정복한 후 피지배백성들의 종교를 허용하는 정책을 택하였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일부 귀환하게 되었고, 성전을 재건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5] 에스라와 느헤미야 인도하의 귀환 바벨론은 70년 포로기간 동안 언약백성들의 활동 중심지가 되었다. 헬라는 B.C.487년 델로스 동맹을 체결하고 아테네로 하여금 그 동맹을 이끌도록 하였다. 다리오 통치 초기에 중단되었던 성전건축이 다시 재개되었다.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재건을 주도한 사람은 여호수아였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성전재건에 반대하고 나섰다. 사마리아 함락 당시 북쪽 지역에 남았던 이들은 속국 백성들에 대한 앗수르의 이주정책으로 들어온 많은 이방인들과 혼인관계를 맺어왔다. 바벨론을 정복하고 메대 바사 전역을 다스리는 통치자의 자리에 오른 고레스 대왕은 B.C.538년 유명한 조서를 반포하였다. 그것은 유대인들과 같은 포로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이었다. 세스바살은 1차 귀환을 이끌었고, 더 나아가 성전재건으로 이어졌다. 그 후 에스라와 느헤미야 인도 하에 두 차례의 귀환이 더 있었다. [6] 헬라시대(B.C.332~167) 바사 시대의 전성기는 B.C.550년경부터 B.C 167년경까지였다. 후기 아케메니아 시대는 전반적으로 음모와 부패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 무렵 헬라라는 새로운 세력이 점차 힘을 얻고 있었다. 바사는 스파르타와 싸우는 아테네를 지원했다. 그럼으로써 소아시아의 헬라 도시들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갔다. B.C.338년 아테네에게 대승을 거둔 필립과 그의 아들 알렉산더는 바사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등장했다. B.C. 332년 마게도냐의 알렉산더는 바사제국을 초토화시켰다. 알렉산더는 마게도냐 태생이었으며, 문화적으로는 헬라인이었고, 개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교육을 받았다. 헬라어는 공식 언어가 되었고, 헬라의 사고방식은 고대 사상과 맞서기 위한 새로운 틀을 제공하였다. 유다는 이 모든 변화의 물결로부터 차단되어 있지 않았다. 100년간 계속된 애굽의 포톨레마이오스의 통치와 그 후 수리아의 셀류쿠스의 통치를 받으면서 유다 역시 헬레니즘이라는 새로운 물결에 깊이 잠기게 되었다. 세 강대국들이 알렉산더의 제국을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마게도냐에는 안티고누스 왕조, 애굽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수리아에는 셀류쿠스 왕조가 차지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의 학정 이후 유대인들은 안티오쿠스 3세의 유화정책을 반겼다. 안티오쿠스는 토라를 국법으로 인정하고 백성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하였다.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들은 3년간 세금을 면제받았고, 그 이후 모든 세금은 종전보다 1/3 감면되었다. 이 시대의 헬라화가 기여한 기념비적인 업적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 방언으로 번역한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72명의 번역자들이 헬라어 번역본을 72일 만에 완성했는데 각 번역자들의 역본이 모두 일치했다는 것이다. 이 번역본을 70인경이라고 한다. [7] 마카비 반란(B.C.167~134년) 샐류쿠수의 헬라화 정책에 대한 반발이 처음 시작된 곳은 모딘이었다. 안티오쿠스이 사자는 셀류쿠스 정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모딘에 이방신 제단을 설치할 것을 요구하였다. 맛다디아는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며 즉시 거부했다. 수리아의 억압정책은 여호와에게 드리는 모든 성전 예배를 중지시키고 할례를 금지시켰으며 토라 연구를 금지시켰다. 맛다디아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었고, 그의 아들인 유다 마카비가 대를 이어 반란을 계속했다. [8] 하스몬 왕국(B.C.135~63) 셀류쿠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점차로 쇠퇴해지고 있었고, 두 왕조 모두 내부적인 문제로 멸망에 다가가고 있었다. 로마 역시 B.C.133년 그라치 가문이 일으킨 내란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내전은 B.C.33년 아우구스투스가 원수정치를 수립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로마는 동쪽의 수리아와 팔레스타인 정사에 개입할 여유가 없었다. 데미트리우스는 셀류쿠스이 통치 170년째 되던 해인 B.C.142년 시몬 마카비에게 독립과 아울러 조공을 면제해 주었다. 당시 유대 문화 속으로 점차 침투해 들어오는 헬레니즘 문화와 사상에 대한 반발로 많은 분파가 새로 생겨났다. 그중에서 경건파 하시딤은 가장 보수적인 유대인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종교적 자유와 율법에 대한 철저한 준수를 주장하고 모든 형태의 헬라적 문화와 사상을 배척하였다. 이 하시딤은 나중에 바리새파가 된다. B.C.63년부터 로마는 예루살렘을 통치하게 되었으며 유대는 로마에 조공을 바쳐야 했다. 히루카누스 2세는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으로서 제한적인 구실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의 동생 아리스토불루스는 로마의 포로로 압송되었고, B.C.61년 폼페이의 개설행렬 때 전시되었다. 이렇게 하여 하스몬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로마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옛땅으로 입성하여 이 지역이 수리아주로 편성됨으로써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는 모두 끝이 난다.
何時爺蘇來 吾道無油之燈也(하시야소래 오도무유지등야)
何時爺蘇來 吾道無油之燈也(하시야소래 오도무유지등야) 좋은 씨와 맑은 물"이라는 책에서 부록 6번에 있는"석가모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에 나오는 글입니다. 불경 나마다경(38:8)에 보면 다음과같은 석가모니의 예언적인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何時爺蘇來 吾道無油之燈也 하시야소래 오도무유지등야 이 말은 놀랍게도 "언젠가 예수께서 오시면 내가 깨달은 도는 기 름없는 등과 같이 쓸모가 없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불경에 있는 내용으로, 석가가 입멸하기 전 최후로 한 설법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처럼 석가모니는 마지막에는 자신이 깨닫고 가르쳐왔던 불교의 모든 교리를 부정하면서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대천덕 신부님께. 저는 법학 교수로서 최근 그리스도인이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정말로 행하고 싶지만, 성경에 나오는 몇가지 가르침 때문에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더구나 제가 알고 있는 목회자는 이러한 점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사회문제에 대한 많은 가르침이 있음에도불고하고, 그들은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는 듯합니다. 신부님, 저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하는 지에 대해 질문하고자 합니다. 또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 지도 알고 싶습니다. 좋은 법과 나쁜 법이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모두 지켜야 할까요? 체제나 권위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만일 그 법에 아무런 자유나, 인권 존중이 없다면 어떡해야 할까요? (제가 보기에) 제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으며, 선한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좋은 일을 하고 있다면, 결함이 있는 잘못된 방법을 가지고 어떻게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까요?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가 되는 방법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까요? 주 안에서 주후남 올림 주 교수님께, 먼저 마태복음 22장(17-21절)과 누가복음 20장(22-25절)에 나오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질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내용을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이 가르침을 주신 예수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아야만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지역에는 두 개의 파가 있었습니다. 한 파는 로마정부를 인정한 무리로서, 로마의 명령에 복종해야하며, 부과하는 모든 세금을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파는 로마에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해 극렬히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그 질문은 실제로 진리를 알고자 한 것이 아니었으며, 다만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고자 한 것을 알고 계셨으며,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통해 두 파를 오히려 곤경에 빠뜨리셨습니다. 세금으로 내는 돈에는 가이사의 얼굴이 있었기 때문에 분명 가이사의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가이사의 치하에서 살고 있엇기 때문에 그 혜택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만 했던 것입니다. 실질적인 문제는 '가이사의 것은 무엇이며, 또 모든 세금은 똑같이 가이사의 것인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겔 18:4)의 하나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권에 대한 이해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앞으로 정치 경제에 대한 문제를 거론한 뒤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50편에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모든 새와 동물이 당신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그것들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레위기 25장은 모든 토지가 하나님의 것으로, (1950-53년 한국의 토지 개혁처럼)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대여되었으며, 만일 다른 사람의 땅을 사용할 경우 토지를 상환하는 회년이 될 때까지 원주인에게 그에 상응하도록 토지 임대료를 주어야 한다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금 중에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분담을 위한 세금도 있었습니다. 만일 땅 주인을 찾을 수 없고, 토지 개혁이 한번도 없었다면, 정부에 내는 토지 임차료만으로 정부의 모든 비용을 충당하고, 다른 세금은 필요없게 된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습니다. 많은 나라의 경우 정부 수입의 대부분은 사회복지기금 마련과 운영을 위해 걷은 여러가지 다양한 세금으로 채워지고 잇습니다. 만일 토지 임차만을 통해 세금을 걷는다면, 정부의 지출은 30% 정도 줄어들 것입니다 . 대국민 봉사의 주인 오늘날 대부분의 정부는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핵가족이 아닌 확대가족(Extended family)으로부터 제공되는 대국민 봉사(social service)를 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정부의 비용 부담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만일, 세금이 없다면 가족 시스템은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으며, 행정 총경비가 없이 대국민 봉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정부가 대국민 봉사를 할 경우, 실제 국민들이 받는 혜택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되며, 구성 사회에 비용을 두 배나 더들게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가족이나 지역 공동체가 이러한 대국민 봉사를 하게 된다면, 바로 그 혜택만큼 비용을 지출하게 도비니다. 또한 총경비의 약간 부분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삭감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국민 봉사는 가이사의 것일까요, 하나님의 것일까요? 또 세금은 누구의 것일까요? 성경은 초기 선지자들이 모든 정부의 대국민 봉사가 지역사회로부터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긴급 소집령을 내려 대처할 수 있으며, 그 상황이 끝나면 군대는 해산되고 군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생업에 다시 종사하게 됩니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집하고 있는 왕을 세울 경우, 중앙 정부가 세워지고 상주하는 군대가 필요하며, 이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경비가 필요하며, 이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경비가 필요하게 되어, 결국 정부는 더욱 커지게 되고, 이에 대한 유지비를 충당하기 위해 온갖 세금이 부과될 것이라고 예견하였습니다. 결국, 백성들은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한 채, 중앙정부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토지를 잃었으며, 대지주들은 토지임대비용을 내지도 않을 뿐 아니라, 희년이 와도 토지를 돌려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주들은 정부 뒤에서 권력을 갖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점점 가난해져갈 때, 계속해서 부를 쌓게 되었습니다. '20명의 백만장자와 2천명의 빈민" 이것은 케냐에서 사회구조를 두고 생긴 말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거부하는 모든 나라는 종국에는 이러한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로마 제국도 결국은 이같은 상황에 빠져들게 되어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의 정부 중에는 국가수입의 많은 부분을 토지임대를 통해 얻어, 백성들이 원하는 대국민 봉사를 안정되게 젱공하는 정부들이 있습니다. 때때로 이러한 정부의 토지임대를 통한 국가 경영이 성공할 경우, 그것은 탐욕을 불러 일으키곤 합니다. 때로는, 그 정부가 터무니 없는 불로소득의 근간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것은 국민의 일부 구성원들을 좌절시키게 되며, 그들로 하여금 법을 바꾸는 정치운동을 하게 합니다. 이것은 바로 고대 이스라엘과 근데 덴마크와 오늘날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권위를 인정하는 자들에게 무엇보다 정의와 긍휼히 여김과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막 6:8)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또한 다른 성경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애매한 감정이나 대국민 봉사 중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대하듯 이웃을 대하라고명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부합하라 이제 '좋은 법과 나쁜 법이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모두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0세기에 우리는 국가의 법을 무시하는 경우들을 수없이 많이 봐왔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순종으로 빚어진 악법을 수용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겠다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혔거나 정부에 의해 구금되었스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법의 수정을 가져왔습니다. "사람보다 하난미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6:8)는 성경말씀은 바로 이러한 불순종이 빚어낸 결과(악법)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악법이 바뀌어질 수 있도록 그들의 힘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정치력을 이용해야만 합니다. 일반 기독교인들은 대중의 의견을 수렴시켜야만 합니다. 정부가 독재행태로 갈 때, 대중의 시위는 적합한 수단이될 수 있습니다. 성서시대에는매우 극적인 대중 시위들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3년을 벌거벗은 채 돌아다녔습니다.(사20). 에스겔은 390일 동안 아무 움직임 없이 왼쪽으로 누웠고, 다시 40일간 오른 쪽으로 누웠습니다. (겔4)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내가 갑자기 죽을 것이니,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겔20). 이 일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머지않아 유다가 전쟁에서 패망할 것이며, 그 사망자가 너무 많아 백성들이 더이상 슬퍼할 기력도 없고, 또 슬피우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극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선지자의 가슴을 애리는 표현인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극적인 선지자들의 시위는 하나님으로 부터 명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시위가 어떠한 형태응 띠어야 하는지성령님의 인도함을 반드시 구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대해 시위를 해야하겠습니까? 바로 불의와 가난하고 불우한 자들의 착취와 인권 침해에 대해 행야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중 '인권 침해'란 용어는 성경에 나오지 않으며, 또한 인권에 대한 유엔의 성명에는 성경이 강조하는 토지에 대한 권리가 빠져 있다는 것을 먼저 지적하곤 합니다. 만일 이 권리가 강화된다면, 나머지 권리들도 자연스럽게 강화될 것입니다. 그러나, 땅에 대한 권리가 없다면 그것은 노예의 권리를 기록한 성명밖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땅이 없는 자들은 아무런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주나, 자신에게 일거리를 줄 수 있는 사람의 자비를 구할 뿐인 것입니다. 성경은 특히 집없는 자들뿐 아니라 타국인에 대한 차별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집을 짓고 사업과 생산을 하여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토지가 제공하도록 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국가들의 경우, 그 실제적인 권력은 대중이나 투표권자가 아닌 지주들에게 있습니다. 대부분 그들은 자신들이 조종하는 권력자들의 뒤에서 숨어있기 때문에, 대부분 그들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교수님의 다음 질문은 하나님의 뜻과 상반되는 방법으로 선한 일을 할 수 있냐는 것이 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러한 결함이 있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먼저 '결함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보아야만 합니다. 인간의 모든 수단과 도구는 그 효율성에 있어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무엇이 가장 좋은 도구가 무엇이냐고 제 자신에게 물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어떤 사람이 가장 효과적으로 보이는 버업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라면 어떡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에는 항상 명확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업에 내포되어 있는 악을 알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만일, 법법법이 악한 것이라면, 사도 바울의 말을 되새겨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롬 3:8). 이러한 논리의 또 다른 말은 "목적은 방법을 정당화시킨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널리 만연된 생각이지만, 기독교인들이 채택할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설령 성공적이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목적에 부합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에게 적법한 방법이 없을 경우, 어떡합니까?' 또는 '적법한 방법을 찾아 시도해보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경우 어떡합니까?'라는 질문을 하게 합니다. 포기해야 할까요? 공의를 위한 투쟁을 중단해야만 할까요? 바로 이 시점이 불신자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방법을 우리 기독교인들이 찾을 수 있는 때인 것입니다 바로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기적을 통해 해결된 수많은 경우를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문제에 개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실패한다 할지라도, 우리들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기 위해 함께 성경을 공부하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울부짖어 하나니므이 중재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함께 나누는 '코이노니아' 기독교인들 중에는 '행동'이 우선이며, 기독교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중보기도를 통해 쟁취한 수많은 승리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중보기도의 대가는 절대 값싼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경우,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해,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하는 하나님께 자신과 자신의 자손에게 주는 영광을 마다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간구하는 모세의 중보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출 32:1-14) 교수님은 많은 목회자들이 사회문제를 등한시한다고 말하셨습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마태복음 6장 33절에 대한 오역때문일 것입니다. 이 절의 정확한 번역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통치(나라)와 그의 공의를 위해 붙투하라(First of all struggle for God's government and his justice)'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선행을 구하라(Seek you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good behavior)'라고 번역되었으며, 또 '하늘에 들어가기와 선하게 되기를 유념하라(Be concerned to get into heaven and to be good)'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신학자인 히포의 어거스틴으로 부터 옹호를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 그의 인기와 지명도는 그의 도피주의적 신학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는 세상은 악하고, 또 그 세상에 이루어 놓을 것을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오직 자신의 영성과 선행만을 생각하면 된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러한 불교적인 사고는 항상 대중의 인기를 얻어왔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개인적으로 볼 때, 위험하지도 않으며, 고난과 투쟁에 연루될 소지가 가장 적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로마 지주였으나, 당시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자신의 영향력을 거의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가 자신의 토지를 농노에게 나누어주고 죽는 날까지 공의를 위해 투쟁하며 단촐한 삶을 살았던 레오 톨스토이 백작같은 사람이었다면 세계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북아프리카의 땅없는 민족들이 봉기하여 체제를 무너뜨리고 이슬람을 받아들인 이유는, 바로 어거스틴이 악한 로마 체제를 비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유혈사태의 근원이 되고 있는 이슬람과 기독교간의 쓰라린 적대감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신학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위험한 것입니다. 이슬람뿐 아니라 공산주의를 세웠으며 예수님과 그의 가르침, 십자가의 공로 그리고 부활을 거부하는 온갖 철학과 사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전체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하나님의 통치와 공의에 관련된 성경의 모든 가르침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6장 33절의 올바른 번역을 인식하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방법은 '(아주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함께 나눈다'는 코이노니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문제이건 서로 나누고, 분명한 답을 얻기 위해 함께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가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제 각 정치, 경제, 법의 분야에 종사하는 기독교인들이 상화 조언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연락망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책임을 지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론 론 이러한 연락망은 마음이 비뚤어진 실업인이나 공무원이나 정치인 또는 편안함과 잠시 감간의 안정을 위해 양심을 팔아버린 일부 교회의 리더십의 반감을 일으킬 정도로 알려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도 그러한 연락망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의미와 진로/ 2010-09-02
개혁주의 신학의 의미와 진로 성경 말씀 한 곳만 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 말씀입니다.\\\"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길을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처음에 총회 교육부로부터 개혁주의 신학의 의미와 진로에 대해서 강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것은 제가 맡아야 할 그런 제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원칙대로 하자면 이런 제목은 조직신학을 맡으신 분이나, 특히 교회사를 전공하시는 분께서 이런 제목의 내용을 다루어야 마땅하리라 생각을 해서 거듭 사양했습니다만은, 부탁에 못 이겨서 응낙은 했습니다만, 참으로 여러 목사님들과 장로님들께 유익을 끼칠 수 있을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내용상 특히 이제 교회사 부분을 다룰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러가지 부족하고 혹시 오류가 있을지라도 널리 양해하시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이 제목이 \\\'개혁주의 신학의 의미\\\'라고 말씀하셨는데, 개혁주의 신학은 매우 방대한 체계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느 것과 대조시켜서 이해하든지 간에, 로만 카톨릭과 대비해서 개혁주의 신학을 이해하든지, 아니면 같은 종교 개혁을 시작한 운동이지만은, 우리가 특히 독일과 북구 중심으로 널리 퍼져 있는 루터파 신학과 대비해서 말씀하든지 간에, 개혁주의 신학은 워낙 방대한 체계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한 시간 내에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 중 한 제목만을 뽑아서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도저히 짧은 시간에 말씀드릴 수 없는 줄 압니다. 또 그와 같은 것은 이 분야를 전문하신 분들께서 차후에 취급하는 것이 옳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제가 따라서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내용은 어떤 구체적인 신학의 내용을 다룬다기 보다, 어떤 개혁주의의 특징적인 시각에서 몇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어떤 분은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을 대개 이렇게 말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저 한번 어떤 시도를 해서 이룬 것에, 성취한 것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교회의 가르침과 삶에 있어서 편입한 여러가지 오류들, 잘못된 것들, 이것들을 일단 제거한 다음에, 복음과의 만남을, 참다운 교회다움, 교회상이라고 합니다만은, 올바른 교회다움으로 늘 끊임없이 새롭게 표현하는 그런 것이라고 정의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정의가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을 얼마만큼 잘, 그리고 충분히 드러냈는가는 차치하고, 조금 전에 그분이 정의한 그런 개혁주의의 특징에는 두가지 요소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첫째는 교회의 가르침과 삶에 있어서 초래된 잘못들, 오류들을 일단 제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오류를 제거한다고 하는 말은 또 무엇을 전제하고 있는가 하면,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참된 것이고 무엇을 잘못된 것인가? 오류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전제로 합니다. 이 기준이 뭔가 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지요. 이것은 비단 개혁주의만의 특색은 아닙니다만은, 모든 종교개혁 자체의 삼대 원리 중의 하나입니다만은,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라고 하는 그 말씀입니다. 성경이 무엇이 참되고, 교회의 가르침과 삶에 있어서 무엇이 참되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를 판별하는 절대적인 무오한 유일한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방금 말씀드린 개혁주의적 특징 정의에서 또 한가지 드러나는 것은 우리가 흔히 개혁주의 특징을 설명할 때 이런 구호를 많이 듣습니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daest\\\' 라고 그러는데, 개혁되어진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바로 방금 말씀드린 그런 두가지 원리라고 할까요? 두가지 시각에서, 개혁주의 신학의 의미와 진로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그 첫번째 원리는 오직 성경으로, sola scriptura 라고 하는 이 원리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드리면, 아까도 언급했습니다만, sola scritura 라고 하는 원리는 개혁주의만의 유일한 원리가 아니고요, 비록 교회 전통도 성경과 동일한 권위 내지 그보다 더 궁극적인 권위를 갖는 교회 전통을 언급했습니다만, 로마 카톨릭에 있어서도 성경의 권위는 인정을 했지요. 그러나 교회 전통을 성경과 동등한 것 아니고 어떤 의미에서 교회 결정을 성경의 권위보다 위에 놓는 그런 것에 반대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만큼, 모든 종교 개혁자에 있어서 오직 성경으로라는 원리는 다 전제가 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성경으로만 이라고 하는 이 원리는 개혁주의에 있어서 가장 강력하고 주장되고 강조된 그런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꼭같이 성경의 궁극적인 권위를 강조했습니다만은, 루터의 경우에는 조금 색깔이 다른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야고보나 다른 등등 여러 책에 대해서 뭐 지푸라기 성경이니 하는, 어떤 그런 자신이 경험한 은혜, 이신칭의의 어떤 그런 은혜에 비추어서, 성경 내의 어떤 그런 차등을 두려고 하는 어떤 그런 루터의 생각과는 조금 달리, 개혁주의에서는 성경의 권위라고 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채택된, 우리도 받아들이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보면 제일 첫머리에, 다른 하나님의 작정이나 삼위일체, 이런 것들 취급하기 맨 처음에, 첫장에 바로 이 성경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고, 웨스트민스터 신경 작성에 있어서 제일 오랜 시간이 걸려서, 정성을 쏟고, 조목조목 살피고 다듬은 부분이 바로, 이 성경에 관한 부분이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 그 일에 참여했던 분들의 증언을 통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개혁주의에 있어서는 이처럼 오직 성경으로만 이라고 하는 이 원리가 너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신학적 원리의 도출 근거를, 또는 근원을 성경에 두고 있기 때문에, 혹자는 개혁주의 신학을 어떤 말로 부르는가 하면, 성경신학이라고 부릅니다. 요즘 흔히 유행하는 그런 의미에서 성경신학이 아니고요, 이것을 영어로 말하면 조금 구분이 갑니다만, 우리가 흔히 요즘 말하는 성경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Biblical Theology지요. 성경적인 신학이지요. 이것을 우리말로 쉽게 해서 성경신학이라고 합니다만, 이 사람들이 개혁주의 신학을 가리켜 성경신학이라 할 때에는 Bible Theology, Bibel theologie (비벨테올로기)라고 그럽니다만, 정말 성경신학이라고 그렇게 부릅니다. 성경과 존립을 같이 하는 어떤 그런 신학이란 말이지요. 그래서 이 개혁주의 내에서 보면, 항상 문제가 되어 오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성경의 권위와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 영감론입니다. 그래서 장로교에서나 다른 개혁파 교회에서 큰 신학적 논쟁이 있을 때마다, 특별히 합리주의가 성행할 때에 교회 내에 있었던 여러가지 논쟁에 있어서 가장 초미의 관심사, 가장 뜨거웠던 논쟁점이 뭔가 하면, 성경과 관련되어 있어요. 성경 영감과 관련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여하튼 개혁주의에 있어서는 다른 종교개혁, 특히 루터파와 비교해서 볼 때, 꼭같이 종교개혁을 시작한 다른 어떤 교파와 비교해 볼 때도, 특히 이 성경의 권위, 모든 신학의 출발점으로서의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모든 진리 판단의 표준으로서, 절대적이고 무오한 표준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음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 회의, 공회의 결정이나 선언, 그리고 옛 교부들의 견해, 그 어떠한 종류의 견해이든지 간에, 항상 성경의 표준에 비추어 조사하고 확인해야 한다는 그런 뜻의 조문을,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경 속에 포함시키고 있음을 우리는 또한 압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 원리라고 하는 것,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라고 하는 그 말씀, 이 말씀은 개혁주의 신학은 정체되지 않고, 한번 어떻게 시도를 해서, 한번의 시도로 완성되지 않고, 또 달리 표현하면 정체되어 있지 않고, 완성되면 그 이상 더한 것이 없으니까, 딱 정체되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정체되어 있지 아니하고, 발전의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그런 뜻이 될 것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정체되어 있지 않고 발전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만큼, 신학의 역사를 하나의 동력적인 과정, 아주 힘있게 형성되어 가는 발전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조금 아귀가 맞지 않다는 느낌을 가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전에 개혁주의의 특징을 말씀드리면서 우선 교회 가르침과 생활에 있어서의 잘못된 모든 오류들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에 대한 판단 기준은 성경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무오한 기준이 있습니다. 이런 절대적인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개혁주의 신학에 대해서는, 어떤 의미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발전의 가능성, 발전의 가능성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오류의 가능성도 포함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불완전성을 그 안에 포함한다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상대화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절대적인 표준을 가졌으면 절대적인 판단이 가능할 터인데, 왜 개혁주의 신학이 절대적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어떤 발전의 여지를 두었을까? 좀 이제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습니다만은, 거기에는 이런 이해가 전제되어 있는 줄 압니다. 성경 자체는 절대적이요 무오한 표준이지만은, 성경에 대한 이해는, 어느 한 시기에 완전하거나 완벽할 수 없다고 하는, 성경이라고 하는 객관적인 표준과 그 성경에 대한 이해를 분리시켜서, 성경 자체는 완전하나 성경에 대한 우리 이해는 완벽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그런 뜻이 전제가 되어 있고, 성경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한 신학은, 따라서 어느 정도 상대화될 수밖에 없다 라고 말할 수 있고, 이런 의미에서 발전의 가능성을 인정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얼핏 생각하면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이렇게 말을 했으니까, 어떤 개혁 신학적인 전통도 완전하지 않으니까, 그 다음 세대가 항상 그것을 비판하고 오류들을 발견하고, 제거해야 된다 라고 하는 것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우리의 신학적 전통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이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발전의 가능성을 둔 것은, 항상 개혁해야 된다고 말할 것은, 우리가 신학적 유산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일단 거부해 놓고, 부정해 놓고 보고, 그 다음에 자기 나름대로 어떤 새로운 체계를 세우라는 것이 아니고요, 오히려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우리는 전통적으로 우리에게 전수되어 온 개혁주의 신학을 오히려 성경을 통해서 확인하면서, 말하자면 그것이 참으로 성경에 부합 하다고 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그 속에 있을 수 있는 오류들, 부족한 것들을 성경에 더 밝은 깨달음에 의해서 보충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하는, 그런 긍정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할 것입니다. 이 두가지 원리를, 아까 말씀드린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과 관련해서 몇마디로 요약한다고 하면, 대개 이런 말씀이 될 수 있는 줄 압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과거 전통에, 신학적인 교회 전통에 대해서, 성경에 비추어 그것의 정당함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과거의 전통 속에 들어 있는 잘못된 요소들을 발견하고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고, 그러나 이것은 과거 유산, 과거 전통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교회 역사 속에 살아가면서 늘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교회는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노력할 것이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인데, 이런 과정을 통해서도 과거에만 오류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런 교회 전통 형성에 있어서, 잘못된 오류들이 침입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런 것들을 계속적인 노력을 통해서, 성경에 비추어 그 오류들을 제거해 내고, 성경의 바른 뜻을 밝혀, 그 말씀에 따라 참다운 교회 모습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라고 하는 그런 뜻이 그 속에 있는 줄 압니다. 이런 개혁주의 특징에 비추어, 종교개혁 이후 개혁주의 신학이 걸어온 길을, 또 그 모습을 한번 살펴보는 것이 좋은 줄 압니다. 저는 교회사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매우 개괄적인 말씀이 될 것입니다. 종교개혁 이후에 모든 개신교 역사에 있어서, 신학사도 마찬가지 입니다만은, 교회사에 있어서, 몇가지 큰 역사적 동인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큰 전환기라 할까요? 어떤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어떤 큰 흐름들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첫째가 이제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엽까지 일어났던 독일의 경건주의가 그 첫째이고,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이후에 시작된 자유주의,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고, 전통적인 교리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에 의한 도전이 그 둘째이고, 세번째는 어느 시대에나 쭉 있어 왔습니다만은,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 설정이 항상 문제가 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중세 교회에 있어서는, 물론 시대에 따라 조금 다릅니다만은, 국가와 교회가 상당히 밀착이 되어 있었고, 서로 상호 간의 어떤 영향력을 미치기를 원했고, 또 행사해 왔습니다. 종교개혁 이후에 원칙적으로는 교회와 국가 간의 분리를, 구별을 천명했습니다만은, 그러나 실제적인 상황이, 왜냐하면 교회가 국가와 좀 분리해서 교회에 대한 자율권을 스스로 갖고 싶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정부가 가만 놔두지 않으면, 세속 국가가 가만 놔두지 않으면 그것은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국가와 교회 간의, 정치와 교회 간에 그런 복잡한 어떤 역사 과정 속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항상 이제 문제가 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제 개신교에 있어서 큰 두가지 흐름을 대변하는 루터파와 개혁주의 두 파에 다 공통적으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경건주의가 영미에서는 대각성 운동으로 나타났고, 영국에 있어서는 감리교 운동이라고 그럴까요? 성결운동이라고 하나요? 그런 것으로 나타났고, 자유주의가 미국 장로교회 내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어떤 의미에서 미국 장로교를 완전히 공중 분해시켜 버렸다고 그럴까요? 그 원흉이 바로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입니다. 또 이제 미국 장로교회 내에서도 교회와 사회의 관계, 또는 국가의 관계가 항상 미묘한 문제로 계속 이제 어떤 분쟁의 불씨로 작용해 왔던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독일, 화란, 동구에 있어서 헝가리, 그리고 특별히 영미에 있어서는 장로교 개통, 그리고 선교활동으로 인해서 남미쪽, 남미에 있는 장로교, 그리고 우리 한국도 극동의 우리 한국도 거기에 포함이 됩니다만은, 대개 이렇게 이제 광범하게 개혁주의가 퍼졌는데, 그 각 부분에 대해서, 각 지역에 있어서의 개혁주의 발전에 대해서 우리는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고, 한국 장로교회와 가장 가까운 관계로서 아주 큰 영향을 끼쳐 온 미국 장로교의 경우에 국한해서 잠깐 그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줄 압니다. 아주 개괄적인 말로 표현을 한다고 그러면, 칼빈주의의 영향을 받은 퓨리탄들, 청교도들이 먼저 17세기입니까? 이렇게 미국으로 건너 왔고, 이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칼빈주의자였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칼빈주의에 큰 영향을 받은 그런 어떤 유파였고, 이들은 또 상당히 그런 개인 경건에 열심인 어떤 그런 특징을 가졌었고, 또 이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서 미국으로 건너간만큼, 뉴잉글랜드 지방에 정착하면서, 거의 기독교 국가, 신앙 공동체 비슷한, 어떤 그런 생활을 한 것으로 우리가 잘 압니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에서 본다고 그러면, 교리적으로는 상당히 칼빈주의적이었고, 그런가 하면 경건주의적 요소도 그 속에 갖고 있었고, 또 거기서 거의 국가와, 사회와 교회와의 구별이 거의 생기지 않을 만큼, 거의 하나의 종교사회로 존재한 만큼, 사회와 상당한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생활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후에 18세기에 들어 와서 미국의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독일, 유럽 지역에서 일어난 경건주의 영향으로, 한 템포 늦게 미국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대각성 운동이 절정에 달했을 때 또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쪽에서 들어 온 이민들에 의해서,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세력이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고, 이들은 상당히 교리를 중요시하는 어떤 그런 특징을 가졌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우선 이렇게 내려오면서 미국 역사가, 또는 사회적 구조 내지 성격이 변함에 따라서 교회 내에도 여러가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이제 경건주의적 경향, 대각성 운동과, 엄격한 교리를 고수하기를 원하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개통과 있었던 갈등을 조금 후에 말씀드리겠고, 첫째로 다른 면에서 일어난 어떤 그런 갈등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 내의 갈등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교회와 사회, 국가와의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청교도 유산에 의하면 그 당시에는 교회와 사회가 너무 밀착되어 있어서, 교회가 사회 일에 간섭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미국에 있어서 안식일을 입법화하는, 법제화하는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미국 전체 장로교회가 다 동의를 한 것이었고, 그래서 잘 진행된 반면에, 노예제도 폐지, 특히 미국 남북전쟁 즈음에 노예제도 폐지 문제가 거론이 되자, 잘 아는 대로 남부 지역은 흑인 노동력이 없으면 면화 재배, 산업을 유지하기가 힘든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장로교 내에서 이 문제를 두고 의견이 갈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부 쪽에서는 교회는 영적인 문제나 할 일이지, 이런 정치적인 문제는 간섭할 것이 못된다고 주장했고, 그런가 하면 특별히 뉴잉글랜드 지역, 북부 지역, 그쪽의 교회들은 노예제도를 강력히 폐지해야 한다고, 교회가 분명히 이런 일에 있어서는 사회에 관여해서 이런 악을 없애야 한다는 어떤 그런 주장을 하게 되고, 그래서 교회 내의 갈등을 초래했던 것을 이미 우리가 압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나중에, 이런 논쟁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미국 사회가 거의 신앙인이었었다. 대부분이 신앙인이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나 그후에 꾸준히 이민들이 많이 들어오게 되고, 장로교뿐 아니라 또 다른 여러가지 교파들이 들어오게 되고, 특별히 신앙을 갖지 않은 여러가지, 여러 이민들이, 우리가 말하는 복수 종교사회라고 그러나요? 그리고 사회의 이념에 있어서도 어떤 그런 칼빈이즘적인 그런 국가관을 갖기보다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주장하는 그런 국가 이념들이 등장하고, 이렇게 됨에 따라 역사적 상황이 옛날 청교도하고는 상당히 변하여 버렸지요. 그때는 거의 신앙에 있어서 동질성이 확립된 그런 종교적 공동체였고, 거기에서는 교회나 사회가 크게 이렇게 분리가 되지 않는 만큼, 관여하는 것이 별 문제가 없었지만은, 이렇게 어느 한 교파의 견해에 따라 그 전 사회의 일을 결정할 수 없는 형편이 되어 버리자, 이런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게 된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그리고 이때 등장한 어떤 그런 인본주의나 자연과학 사상에 의한 성경 권위에 대한 도전들이 있게 되었고, 이런 자유주의와 결합해서 어떤 것이 생겨났는가 그러면, 사회 참여, 사회에 적극 참여한다는 것이 자유주의와 결합될 때는 어떤 현상으로 나타났는가 하면, 우리가 잘 아는 사회 복음, Social Gospel 이라고 하는 어떤 그런 쪽으로 나타나서, 종래의 장로교 같은 기본적인 교리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속죄에 근거한 어떤 그런 구원까지도, 개인 구원까지도 부정해 버리는, 말하자면 기독교를 하나의 윤리의 차원으로 전락시키는 그런 사회 복음으로도 변질이 되게 되었고, 이런 것들이 종래의 전통적인 개혁주의에 심각한 도전으로 등장하게 된 것을 우리가 압니다. 이때 구 프린스톤에 있어서의 찰스 핫지나 워필드 같은 사람이 학적으로 전통적인 신학을 유지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던 것을 우리가 압니다. 이 노력은 나중에 자유주의 문제로 교회가 갈라지고 난 다음에 웨스터민스터에 의해서 이것이 또 계속 된 것을 우리가 압니다. 그런데 웨스터민스터가 형성될 때, 자유주의에 대항해서 근본주의 연합이 생겨나게 되었지요. 우리가 사소한 데 어떤 차이가 있을지라도, 신학적인 차이가 있을지라도, 이 자유주의라고 하는 무서운 공동의 적을 대처하기 위해서 연합하게 된 어떤 근본주의 운동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진행되다가 근본주의 내에서 또 분열이 일어나게 되지요. 그것은 특별히 세대주의를 신봉하는, 흔히 메킨타이어, 그분이 주도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세대주의를 신봉하는 이런 신학적으로 이질적인 어떤 그런 그룹 때문에, 결국 다시 근본주의도 갈라지게 되는 그런 교회 분열을 미국 교회가 맞게 되지요.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제 전공도 아닌 미국 장로교회사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자세히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대개 이런 역사적 흐름에 의해서 개혁주의에서 가장 큰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장로교회가 대개 어떤 길을 걸어 왔고, 지금 어떤 형편인가를 말씀드리고, 특별히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미국 장로교회의 역사는 한국 장로교회 역사와 긴밀히 연락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또는 요즘 와서는 장로교회 내에서도 미국 장로교의 이와 같은 역사와 현실을 보고 대개 어떻게 평가를 내리는가 하면, 한마디로 분열, fragmentation이라고 그럽니다만, 갈가리 찢어졌다, 교회가 갈가리 찢어졌다. 그리고 특별히 장로교회와 관련해서 지식주의, 그리고 냉랭함, 교만, 독선, 이런 것들로 대개 장로교의 특징을 말하는 것을 우리가 흔히 듣습니다. 그런데 여기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런 분열, 교회 분열, 그리고 지식주의, 냉랭함 등등 이런 문제는 개혁주의 자체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가 미국 장로교회사를 쭉 보면, 그냥 너무 급히 지나가서 그것이 제대로, 제 뜻이, 의사가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거기서는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겪었던 그런 단계들이 그대로 거기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독일의 경건주의와 상응하는 것이 대각성운동이고, 그 경건주의가 끼친 순기능과 역기능, 그것들이 미국 교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났고, 거기에 대한 어떤 그런 보수주의자들의, 어떤 교리를 강조하는 그런 정통주의자들의 반동이, 유럽에서나 미국에서나 있었고, 또 자유주의가 등장했을 때 이에 대해서 학적으로 변호하려고 하고, 변증하려고 하는 노력이 유럽에서나 미국에서나 다같이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교회가 찢어지고 갈라진 일들, 그리고 대각성 운동에 의해서 군소 교파에 불과하던 그런 감리교나 침례교들이 급성장해서 큰 세력으로 등장하게 된 것, 이것은 오히려 미국에서 잘 맞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유럽에서도, 좀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 몰라도, 거의 다같이 나타났던 그런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와 국가 간의 미묘한 문제가 교회 내에 여러가지 분쟁의 불씨를 만든 것도 독일 교회나 미국 교회나 방식과 정도에 있어서 좀 차이가 있겠지만은, 다 일어났던 문제입니다. 따라서 장로교만을 가리켜서 저것은 분열주의자다. 장로교는 분열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흔히 이제 왜 분열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말씀하기를 그것은 포괄적이지 못하고, 편협한 성격 때문에, 독선과 교만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많이 이야기를 합니다만은, 이것은 그 옳고 그름의 문제를 하나의 mentality, 사람의 성격의 문제로 환원시켜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고 하는, 어떤 그런 평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말해서, 과연 이 장로교나 개혁주의자들이 직면했던 그런 문제들, 경건주의가 만들어 놓은, 초래한 여러가지 그런 잘못된 것, 교리적인 오류들, 이런 것들을 가만 덮어두고 그냥 싸안고 있어야 할 것인가? 특별히 자유주의, 성경의 권위 자체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은 구원 자체를 거부, 부정하는 그런 자유주의를, 그럼 교회가 관영과 일치라고 하는 명분 아래, 교회가 싸안고 포용했어야 하는가? 라고 우리가 반문을 한다고 그러면, 우리가 교회 분열한 그 자체에 대해서, 그렇게 우리의 약점으로 크게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말하자면 옳고 그름이 너무나 분명한 문제였고, 또 그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고 중요한 것인 만큼, 기독교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였던 만큼, 그것에 대해서 강력하게 저항한 것이 옳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식주의라고 하는 것도 결국 그 당시의 문제가, 특히 자유주의와 관련해서 문제가 된 것이 대개 이 지식적인 면에서였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변증하려고 하는, 기독교의 진리를 변증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의 노력에서 지식적인 면이 부각된 것, 그것이 반드시 약점이나 잘못된 오류로 지적되어야 할 것인가? 그것도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흔히 그들은 독선적이었다고 말을 하는데, 진리와 비진리와의 투쟁, 전쟁이라고 하는 그런 극한 상황에서, 어떤 호전적인 심성이 작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이 당시 특별히 강조된 것이 교회의 전투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때 교회 상황이 진리와 비진리 간에 시비가 분명해야 하는 그런 어떤 상황이었던 만큼,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려고 하는 그런 태도는, 유화적인 사람, 모든 것을 그저 덮어두고 적당히 싸안고 포용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태도가 독선적으로 비췰는지 모르겠으나,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교회의 사활을 가름하는 중대한 문제였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결코 독선이라고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그때 그 문제 자체가 사소한 문제였고, 또 그들의 주장이 근거 없는 그런 주장이었을 때는 그들의 태도가 참 독선적이었다고 비난받아 마땅하겠으나, 그러나 사안 자체가 중요하였고, 또 시비가 분명한 문제였던 만큼, 옳은 것을 옳다고 분명히 말한 그것이 결코 독선적인 태도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그저 중간을 생략 < > 특별히 이런 자유주의에 의한 위기, 이들은 다 개신교 전체 공통적으로 닥친 것인데, 이들에 대한 반응 역시 루터파나 개혁주의 교회를 막론하고, 무론하고, 대개 비슷한 양상을 나타냈습니다. 이 자유주의에 대항해서 루터파에서는 옛 교리들을 고수하려고 하는 그런 Neo Lutheranism, 신루터주의가 일어나게 되었고, 미국 장로교회에서는 프린스톤을 중심으로 한 구학파라고 그러나요? 이런 움직임이 일어났고, 이들이 강력하게 고수하려고 했던 기존의, 그들이 성경이 지지한다고 생각하는, 성경이 분명히 주장한다고 생각하는 교리들을, 교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갖다 교리주의자 이렇게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교리주의자들의 어떤 그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경건주의 운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요. 경건주의적 경향은 여전히 남아서, 그후에는 교파들이 워낙 많으니까요. 많으니까, 이런 교파, 저런 교파, 특색을 따라 여전히 남아 있었고, 특별히 사회 참여, 우리는 이 세상 속에, 어느 특정 사회 속에 몸을 담고 살고 있기 때문에, 문화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서 살수는 없습니다. 여하튼 어떤 특정 사회 내에서 기독교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고 하는 그런 문제는 항상 대두되게 마련인데, 이런 문화적 사명과 관련해서 항상 이렇게 미묘한 지렛대 역할을 한 것이,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이 문제도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었고, 특별히 우리 한국 같은 경우에도 6.29 사태를 즈음해서, 그 부분에서, 교회가 이러한 때 국가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가? 라고 하는 그런 것이 한국 교회 내에서 열띤 논쟁 거리가 되었던 것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대개 산재하는 하는 여러가지 개혁주의 교파들의 특색을, 신학적 특성을 크게 분류해서 대개 이렇게 나누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교리주의자, 그리고 경건주의적 경향의 사람들, 또 문화적 사명을 강하게 주장하는 어떤 그런 사람들의 교파, 미국 내에서는 특히 이제 칼빈 신학을 중심으로 하는 어시아닉 Christian Reformed Churth가 이 일에 적극적이라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은, 대개 이 세가지 신학적 내지 신앙적 특색이 개혁주의 내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를 향해서 매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상대방을 비난한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우선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교리, 경건, 문화적 사명이라고 하는 것은 우선 개혁주의와 상치되는 것이 전혀 없고요, 개혁주의 내 속에 다 포함되는 것이고,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고, 그런데 왜 이런 것들이 문제화되어서 경건주의니 교리주의니, 사회 참여파니 하는 이런 말이 논쟁의 불씨로 계속 등장하게 되는가? 그 이유는 개혁주의 신학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이런 것들이 교회의 새로운 역사적 상황 속에서 늘 다시 등장하게 될 때마다 여러가지 새로운 요소가 가미되면서, 여러가지 신학의 특색들이 가미되면서, 역사적으로 여러가지 부정적인 부산물들을 토해 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교리를 무시하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믿어야 할 것을 모르면서 우리가 어떻게 뭘 믿겠다는 것입니까? 바울 사도께서 목회서신을 통해서 거듭거듭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목회자에게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건전한 교훈, 가르침, 교리를 가르치라는 것이었고, 그것을 해치는 자들을 엄중히 경계하라는 말씀이 여러 군데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말을 빌리자면 갈라디아서 1장에서 바울 사도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그 복음, 그 교리가 아닌, 그 복음 교리가 아닌 다른 것을 가르치면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지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나타난 이 교리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우리는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교회적 상황을 우리가 감안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전투적인 상황,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던 그런 상황을 우리가 감안할 때, 참 그들이 강하게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할지라도, 참 사정은 이해가 되지만은, 아무래도 나쁜 것은,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지요. 어떤 부산물들이 생겨날 수 있는가 하면, 계속 지적으로 항변하려고 변증하다 보니까, 이 신앙이 살아 있는 신앙보다는 너무 주지주의적이 되어서, 이지적이 되어서, 우리 흔히 개혁주의 내에서도 이야기하는 Historical Faith, 역사주의적 신앙으로 전락하게 될 위험이 많았었고, 또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런 전투적 상황에서 강하게 반발하다 보니, 참 그런 상황이 오래 습관화되어서 교만과 독선의 부산물들이 생겨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을, 그 가능성을 우리가 부정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교리 자체는 우리 신앙에 있어서, 우리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인, 필요 불가결한 중요한 것이로되, 역사적으로 교리주의가, 전체는 아닐지라도 그 일부에 있어서나마, 빚어내었던 부산물들, 부정적인 부산물들, 우리가 심각히 반성해야 할 줄 압니다. 그 다음에 이제 제가 경건주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유래에 대해서 제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 당시 상황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뭐라고 말씀드리기는 힘듭니다만은, 이들이 이제 외친 말들, 교리 대신에 삶이 있어야 한다. 어떤 그런 제도적 직분이 아니라, 성령이어야 한다. 겉모양만이 아니라 어떤 능력, 경건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외쳤던 그들의 말에서 역으로 추측을 하면, 경건주의가 발흥하게 된 그 이면에는 분명히 어떤 그런 정통교회에 있어서 영적으로의 메마름, 그런 것들이 분명히 있었고, 이에 대한 갈급함이 경건주의 운동을 크게 확산케 하는 하나의 계기가, 하나의 토양이 되었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저는 경건주의가 주장한 근본적인 긍정적인 면들, 어떤 살아 있는 생명력 있는 믿음, 그리고 그런 성령님의 살아 생생한 역사를 통해, 우리 삶 가운데 맺히는 열매들을 강조한 것, 그런 것은 성경이 천번 만번 지지하는 것이요, 참으로 그 당시 정통주의 교회가 그처럼 생명력을 상실하였다고 하면, 그 상황에서 반드시 주장되었어야 할 어떤 긍정적인 주장이라고 저는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믿음과 삶이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는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 라고 하는 이것을 주장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주장하면서 항상 무엇을 의식하고 반대한 것이 있어요. 사실 교리와 삶이라고 하는 것을 떨어질 수가 없는데, 불가분의 것인데, 이 사람들은 교리가 아니라, 교리에 반해서 삶이 있어야 한다. 직분과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성령님이 문제다 라고 하는 이런 것들, 말하자면 반교리적이고 반제도적인 이런 태도들, 이런 것들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들은 그런 살아 있는 생생함을 너무나 강조했기 때문에, 차디찬 지성보다는 감정을 강조하게 되었고, 그래서 대각성 운동이나 이런 데서 보면 정서적인 면이 굉장히 중요하게 드러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결코 신앙에 있어서 정서를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참된 믿음을 가지면, 그리고 참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감화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복된 감정, 우리가 다 그것을 느끼는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가볍게 생각하게, 어떻게 그것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성령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 것을 우리가 다 체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반교리적이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난 것인데요, 우선 이렇게 자꾸 감정을 강조하다 보니까, 우리가 조직신학에서 이야기합니다만, Temporary Faith, 일시적인 신앙으로 전락할 위험이 컸습니다. 일시적인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그의 영혼이 거듭난,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은 그런 정서나 뜨거움이라기 보다는, 그저 내적인 참된 변화 없이, 그저 잠시 감정적으로 흥분해서 바글바글 끓다가, 씨 뿌리는 비유에 나옵니다만, 그저 얇은 흙에 떨어져서 싹이 금방 나서 이렇게 하다가, 결국 그 밑에 큰 바위가 있기 때문에, 뿌리를 뻗지 못해서, 수분을 받지 못해서 결국 이제 말라죽는, 그런 일시적인, 잠정적인 신앙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었고, 실제로 그런 폐단들이 나타났습니다. 반교리적인 이런 태도가 경건주의로 하여금 내용이 없는 믿음이 되게 했어요. 믿을 것이 없잖아요, 반교리적이면, 물론 이것은 혹평입니다만은, 하나의 경향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만은, 경건주의 가운데 헹스텐버그 같은 유명한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여튼 내용 없는 신비주의적 감정 내지, 체험 위주의 믿음으로 전락하기 쉬웠고, 실제로 그런 부작용이 많이 나타났고, 믿음이 어떤 그런 객관적인 토대를 상실하고, 말씀이라고 하는 객관적인 토대를 상실하고, 주관적인 감정에 좌우되는, 왔다 갔다 하는 그런 부작용들도 초래되었습니다. 이전에 정통교회에서 강조가 된 것은 객관적인 토대로서의 말씀, 객관적인 수단으로서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으로서의 말씀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참 그 말씀에 나의 전부를 맡기는, 신뢰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것이 강조된 반면에, 경건주의의 부정적인 면에 있어서는, 감정을 너무 강조하고, 체험적인 그런 것을 너무 강조하게 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결국 어떤 폐단이 생겨났는가 하면, 감정을 부추키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인위적으로 감정을 유발시키고, 흥분시키고 하는, 우리 종래 한국 부흥사에게서 많이 봅니다만은, 박수 부대를 동원한다든지, 여러가지 이런 것들이 경건주의 운동 말기에 오면, 미국에서 그런 일이 나타나게 되고, 챨스 피니 같은 사람, 하여튼 그런 것이 감정을 유발하다 보니까, 유발하는 것과 함께 뭐가 강조가 되었는가 그러면, 종래의 종교개혁에 있어서의 가장 근본적인 교리 중의 하나였던 오직 은혜로만,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그것이 약화되고, 인간의 결단과 의지에 호소하는, 그런 면들이 강조되게 되어서, 나중에는 어떤 신학적인 경향까지 나타나게 되었는가 하면, 거의 반펠라기우스적인 그런 경향까지 나타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이제 근본적으로는 교리나 경건이나 어떤 문화적 사명이 별개의 것이 아니고, 하나로 통합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나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어떤 현실로 나타난 것이 교리주의자, 경건주의자, 그리고 사회 참여주의자로 이렇게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각 그런 것들을 주장하는 사람에게서는, 그 정당한 것과, 또 그 정당한 주장이 역사적 현실로 나타나는 과정에서 초래된 여러가지 부정적인 부산물을 함께 안고 있는 것도, 우리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실로 존재하는 이런 다양한 신학적 흐름들, 이런 것들을 우리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고, 대처해 나가야 될 것인가? 우선 이렇게 장단점을 함께 안고 있는 여러가지 다양한 신학적 흐름에 대해서, 우리는 그저 이러한 다양성을 맹목적으로 인정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 그러니 적당히 타협하면서 그저 어울려서 살아가자. 이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절대적이고 무오한 진리의 척도인 성경 말씀에 비추어서, 각 신학 흐름이 갖고 있는 잘못된 것은, 오류는 제거하고, 참된 것은 확인하고 발전시키되, 진리 안에서 모든 참된 요소들이 통일을 이루도록 우리가 해야 할 것입니다. 적당히 너도 옳고 나도 옳고, 이렇게 그저 인정해 가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무엇이 참되고 무엇이 그른가를 밝혀 가면서, 나에게서 잘못된 것은 인정하고, 그것을 버릴 것이요, 상대방에게 좋은 점이 있으면 그것을 취하고, 상대방의 잘못된 것은 그것을 밝혀서 그것을 끊어 내야 할 것이요, 이렇게 참된 요소들을 오직 성경 말씀에 비추어 찾아내어서, 이것들이 진리 안에서, 진리로 자연이 이렇게 하나가 되도록, 통일을 이루도록 우리가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서 이렇게 Uiniy, 교회의 하나됨을 추구해야지, 이것이 교파 간의 연합이든, 아니면 한 교파 안에서 우리의 영적인 하나됨을 추구하는 것이든, 하나됨을 추구할 때, 이것을 진리가 그 근거가 되고, 진리가 중심이 되어야지, 이것이 정치적인 목적이나 어떤 교세 확장을 위한 이런 것들이 끼여들게 되면, 결국 그것이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우리도 역사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압니다. 참 어떤 근본주의 운동에 있어서, 대부분의 가장 중요한 교리에서는 합의했지만은, 그러나 세대주의라고 하는, 참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잘못된 교리적 오류가 있을 때에는, 결국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경험을 우리가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합니다. 뭐 같이 적당히 안고 함께 살아가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갈라져 나가느냐 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만은, 물론 실제적으로 나중에 그분들이 의견을 돌이켜서 돌아올 수 있었다면, 그만큼 그보다 다행한 일이 없겠지요. 그러나 여하튼 이런 교리적 차이가 있을 때, 결국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편협한, 교리만을 고집하는 그런 못난 사람들의 mentality 때문에 그런 분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교리라고 하는 것이 교회의 삶에 있어서, 교회의 존재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와 위치를 갖는가를 반증해 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교리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아무래도 좋을 것 같으면 뭐 적당히 살아도 되겠지요.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은 교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진리에 근거하지 않는 맹목적인, 감상주의적인 연합운동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W.C.C. 같은 운동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직 진리에 근거한,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 안에서, 비록 그것이 지루하고 번잡하고 오랜 과정이라고 할지라도, 참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인내와 관용을 가지고 기다리면서, 우리가 하나됨을 추구해야 될 줄 압니다. 어떤 사람은 분열이 편협한 mentality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합니다만은, 저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합니다. 교파 분열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가 무엇인가를 명백하게 밝히는 데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해요. 아, 그 적당히 좀 양보하지. 그 뭐 이렇게 좀 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자면, 사람 속이 좁아서, 편협해서 교회 분열이 생겼다고, 그런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저는 그 반대로 생각을 합니다. 교파 분열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무엇이 참으로 옳은 것인가? 라고 하는 것, 분명히 그 시비를 분명히 밝힌 데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두가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 말씀에 순종, 복종하려고 하는 자세로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끝까지 밝히고 순종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오히려 분열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안고, 불씨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여러가지 정치적인 요인, 이런 것들이 겹쳐서 그냥 분열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진리가 분명히 서 있었다고 하면, 그런 정치적인 꼬투리들, 그런 것들이 감히 거기 작용하지 못했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다양한 입장을 속에 그대로 안고 있으니, 어떤 기회만 되면 그런 것들이 표출되기 마련이고, 결국 갈라질 수밖에, 필연적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라고 생각이 됩니다. 한국 교회 현상도 이런 세계 교회의 난맥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 한가지 더 심각한 것은 이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미묘한 입장들 차이가 혼재하는 가운데서, 성경 말씀에 비추어 상황을 판단하고,, 그 바른 길을 제시할 준비가 과연 한국 교회는 돼 있는가? 말하자면 교회란 결국 목회자들, 우리 목사 장로들이 참으로 이런 미묘하고 복잡한 이런 신학적인 문제들, 또는 교회 삶에서 여러 상황들에 대해서 참으로 성경적으로 이런이런 결론을, 원리를 도출해 낼 수 있을 만큼 성경에 박식한가? 사실 어떤 신학적 문제를 내놓아도, 우리는 그 앞에 속수무책인 경우가 대부분이 아닌가? 그것에 대해서 성경의 원리를 따라서 시는 이렇게 비는 이렇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완벽한 어떤 그런 대답, 어떤 제시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그런 깊은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준비라도 우리가 충분히 되어 있는가? 한번 심각하게 자성해 보아야 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말씀만 더 한다고 하면,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여하튼 어떤 다양한 신학적 입장과 교회 삶의 복잡한 양상 있든지 간에, 이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바람직한 진로라고 하는 것은, 성경 말씀이 이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는가? 성경 말씀이 밝히는 진리를 따라서 오래 참고 관용하며, 그 진리 안에서 하나 되기를 추구하는, 이 자세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오늘 신학적인, 교회 난맥상을 헤쳐 가는, 적어도 해결 내지 헤쳐 나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절대적 권위로서의 성경, 이 성경 권위에 대해서 자꾸 포용적인 태도와 해이한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처럼 믿어 왔던 미국 내의 보수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보수 교회 내에서도, 제가 잘못 보았다면 제가 욕을 먹고, 제가 욕을 먹더라도 저는 참으로 기뻐할 것입니다. 아직 한국 보수 교회가 성경 말씀을 분명히 붙잡고 있다고 하는 그 사실을 확인만 할 수 있다면, 네가 한국 교회를 잘못 알아서 그런 경솔한 소리를 함부로 입밖에 내뱉는 것이라고 욕을 먹어도 저는 기뻐할 것이에요. 그러나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한국 보수 교회 내에서도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에 대한 태도가 점점 해이져가고 있지 않는가? 이것이 가장 염려스럽고, 우리 목회자들에게 특별히 심각하게 경계할 일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끝). 김성수 교수(합동신학대학원, 구약학)
구약 율법 해석은 이렇게(성경해석)/마5:48
구약 율법 해석은 이렇게(성경해석) 마5:48 지금까지 문법적 해석(글의 흐름을 타라). 역사적 해석(성경 당시로 돌 아가라). 성경적 해석(성경을 성경으로 풀어라). 성령적 해석(성령에 다 이알을 맞추라)을 성경해석의 4대 원리로 제시되었다. 이제 이 4대 원리를 전제로 하고 성경해석의 각론(각론)으로 들어가고 자 한다. 제일 먼저 구약율법의 해석을 다루고자 한다. 율법을 접근할 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율법과 복음과의 관계일 것이다. 흔히 율법은 "행해라, 그러면 산다"고 하고 복음은 "믿으라, 그러면 산 다"고 하여 율법과 복음이 행함과 믿음으로 대치관계에 있는 것으로 이 해되고 있다. 이런 오해에서 율법주의자와 반율법주의자가 생겨났다. 율 법주의자와 반율법주의 간의 긴장은 교회역사에서 뿐 아니라 신자 개개 인의 생활에서 반복되고 어떤 때는 순종을 강조한 나머지 "내가 율법주 의자가 아닌가?"고 자문하게 되고 또 어떤 때는 은혜를 강조한 나머지 "내가 반율법주의자가 아닌가?"고 자문하게도 된다. 위의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할 때 율법의 뿌리부터 잡아야 할 것 같다. 율법의 '뿌리'라는 말은 율법의 표준이 무엇이고 율법의 정신이 무엇이 고 율법의 자리가 무엇인가 하는 율법의 근본 의의를 가리킨다. 율법의 표준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 전하라"는 데 있다(마5:48). 이 말씀은 "너희는 온전하신 너희 천부(천 부)처럼 되라," 즉 "너희 하늘 아버지를 닮아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 서 본래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 닮은꼴"(Im age Dei)로 창조하셨는 데 이것이 율법에 표출되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 닮은꼴"이란 무엇인가? 온전한 사랑의 실천이 하나님 을 닮은 삶이다. 하나님에 대한 "다함"(마음과 뜻과 힘을 다함)의 사랑 과 이웃을 나처럼 대하는 사랑이 율법의 정신이다(마22:37-40). 이웃에 대한 사랑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는 데, 이것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네 이웃이 네게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 싶은 그것을 바로 네 이웃에게 행하라"는 황금률(Golden rule, 마7:12) 로 요약되어 있다. 하나님에 대한 "몽땅"(whole)의 사랑과 황금률이 율법의 정신이라면, 이 정신이 어디에 나타나야 하는가? 율법의 자리(locus)는 사랑의 마음 사랑의 말, 사랑의 행위를 다 포괄하는 인격 전체와 삶 전체이다. 마음 만의 사랑, 말만의 사랑, 행동만의 사랑이 아니라 전인격에서 우러나와 삶 전체에 표현되는 사랑이 율법이 말하는 사랑이다. 요컨대 율법의 표준은 하나님을 닮는 것이요, 율법의 정신은 "다함"의 사랑이요, 율법의 자리는 인격과 삶 전체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유 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의 표준을 하나님의 표준에서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의 표준으로 끌어내렸고, 사랑의 대상인 이웃을 원수로 제 외한 가까운 이웃으로 제한하였고, 율법의 자리를 인격과 삶 전체로부터 드러난 행동으로 국한시켰다. 그리하여 그들은 가장 철저하게 율법을 지 키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율법을 철두철미 왜곡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 달리 율법의 표준(하나 님의 표준), 율법의 정신(온전한 사랑), 율법의 자리(인격과 삶 전체)를 그대로 살리면,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예언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어째서 그런가? 그 이유를 아래에서 몇 가지로 설명하겠 다. 율법의 표준과 정신과 자리가 핵심적으로 표현된 것이 십계명이다. 십 계명이다. 십계명을 핵으로 해서 율법이 개개인에게 "이렇게 살아라"고 하는 것을 도덕법(moral law)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도덕법이 국가 속 에 구현될 때 그것은 국가법(civil law)으로 나타난다. 또 도덕법이나 국가법에 저촉된 죄인을 회복시키는 법이 의식법(ritual law)이다. 율 법은 십계명을 핵으로 하여 이렇게 도덕법, 국가법, 의식법으로 대별될 수 있다. 그러면 도덕법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예언하는가? 도 덕법은 하나님의 도덕적 성격을 밝힘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를 닮도록 명령하고 요구한다. 도덕법은 그 요구에 따를 경우 하나님의 승인과 축 복과 선언하고(롬7:10;갈3:12). 그 요구를 어길 경우 하나님의 정죄와 저주를 선언한다(갈3:10). 도덕법은 벌칙을 통해 죄를 억제하는 기능과 함께 죄를 폭로하고 죄를 짓도록 자극하는 기능도 있다(롬7:7-14;히4:12 ). 그러나 도덕법은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거나(justify) 의롭게 살 수 있는 힘(empower)을 주지 못한다. 이와같이 도덕법이 의롭다고 선언하고 의롭게 하는 능력은 없지만, 하나님의 절대요구 앞에 사람의 절대무능과 죄책을 지적함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자를 향하여 부르짖고 달려가 게 한다(갈3:24). 여기에 바로 도덕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예언 성이 있다. 도덕법은 이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로 하여금 과거 에 육체의 연약 때문에 이루지 못하던 하나님의 요구를 생명의 성령의 지배 하에서 이루도록 자극을 준다(롬8:2-3). 따라서 신자에게 도덕법이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도덕법은 그 요구가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도 록 자극하여 신자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image christi)이 새겨지고 성 장하게 한다. 이리하여 율법의 표준인 하나님 닮은꼴이 신자속에 회복되 는 것이다. 도덕법이 국가속에 제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국가법(civil law)이라고 했는데, 이 국가법이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가? 모세 당 시는 국가가 곧 교회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는 신정국가 였다. 이 때의 국가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름부음 받은 왕(메시야)으로 삼는 하나님 나라의 예표이다. 그 때의 국가법은 지정학적으로 제한된 신정국가의 법이므로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실현될 때는 그 일반원칙 이 새 언약의 내면화 원리(렘31:33-34)에 따라 실현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 취된 것이다. 도덕법이나 국가법의 범법자가 회복될 수 있는 길은 의식법에 따른 피 흘림을 통해서였다(히9:22). 구약시대에는 사람의 죄 때문에 짐승이 피 를 흘려 사죄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피를 흘리심으로써 그의 피로 그의 백성이 사죄받을 것을 예표한 것이다. 레위기의 제사제 도는 히브리서에 나타난 대제사장겸 단번에 영원한 속죄제물이 되신 예 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이상과 같이 율법의 표준인 하나님의 형상과 율법의 정신인 온전한 사 랑과 율법의 자리인 인격과 삶 전체-이런 율법의 요구가 도덕법과 국가 법과 의식법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였고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 성취되었다(마5:17;롬10:4). 그러므로 구약율법은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표면상으로 서로 다른 것 같 은 율법과 복음, 행함과 믿음, 이두 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지하수로 만나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희년사상/ 2002-11-08
구약성서에 나타난 희년사상 목 차 Ⅰ . 서 론 ----------------------------------------- A.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 B. 연구방법 및 절차 ------------------------------------- Ⅱ . 희년의 성서적 근거 --------------------------------------- A. 희년의 어원 ------------------------------------------- B. 희년의 성서적 내용 (레위기 25:8 - 55을 주해 중심으로) -- C. 희년과 연관된 성서적 내용 ----------------------------- Ⅲ . 희년의 사회적 의미 --------------------------------------- A. 토지무르기 -------------------------------------------- B. 가옥환원 ---------------------------------------------- C. 이식없는 대부 ----------------------------------------- D. 노예해방 ---------------------------------------------- Ⅳ . 희년의 신학적 의미 --------------------------------------- A. 야웨 하나님 - 희년의 선포자 --------------------------- B. 이스라엘 - 희년의 수혜자 ------------------------------ C. 예수 그리스도 - 희년의 성취자 ------------------------- Ⅴ . 결 론 ------------------------------------------ * 참 고 문 헌 --------------------------------------------- Ⅱ. 희년의 성서적 근거 구약성서 안에 전승된 이스라엘 전승들은 대개 고대 근동 지방에서 통용되었던 다양한 관습법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희년법은 신학적 성격에 있서서 고대 근동의 관습법들과는 전혀 다른 매우 특이한 성격을 띤 법이다. 즉 희년의 주요 내용인 채무의 면제와 노예 석방 및 토지의 새로운 분배에 대한 요구는 고대 근동 세계의 수많은 사회개혁 시도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나, 항상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이러한 사회개혁 요구를 제도화하려고 한 것은 오로지 희년제도 뿐이었다. 그러므로 희년제도 연구는 성서에서 시작하여, 성서가 희년제도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 우선된다 하겠다. 이에 필자는 본 장에서 희년제도에 대한 성서적 근거를 살펴보겠다. A. 희년의 어원 우리말의 ’희년’이란 영어의 ’Jubilee’를 번역한 것이고, Jubilee는 히브리어의 ’요벨’( :yobel)을 음역한 것이다. 문자적으로는 ’세낱 하요벨’( :수양의 뿔의 해), 이는 단순히 ’하요벨’( :수양의 뿔)의 하요벨’( )에서 유래하였다. 이러한 희년의 명칭이 붙게 된 이유는 이 독특한 50번째의 해가 ’요벨’의 나팔소리에 의해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 6장에서는 ’요벨’과 보통 나팔인 ’쏘파르’( )를 구분하고 있다. ’요벨’은 제사장만이 소지하여 불렀던 것이고, 가나안 정복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사용하던 나팔이었던 반면에, ’쏘파르’는 대부분의 백성이 갖고 다니며 불렀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전자에는 보다 큰 성결성과 초자연적인 효과가 부여 되었다. 이사야 27:13의 큰 나팔도 바벨론에게 정복당하여 분산되었던 이스라엘에게 새롭고 행복한 시대를 알려주는 ’요벨’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요벨’은 특별한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특별한 시기, 그리고 어떤 특별한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따라서 속죄일인 7월10일에 불리워짐으로 희년의 시작을 알리고, 온 땅의 모든 주민에게 자유를 선포했던 ’온 소리의 나팔’은 구체적으로 지적되지는 않았지만 레위기 25장10절 후반부에 암시된 바와 같이 ’요벨’ 임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희년이라는 말은 ’요벨’에서 유래되었다 하겠다. B. 희년의 성서적 내용 희년에 대한 성서의 내용은 레위기 25장 8 - 55절에 나타나 있다. 필자는 본문은 크게 희년제도의 규정인 8 - 22절과 희년제도의 구체적 내용인 23 - 55절로 구분하여 본문 주해식으로 살펴 보겠다. 1. 희년제도의 규정(8-22절) 여기서는 희년의 정확한 때를 계산하는 방법과 그 날의 기본 성격을 정의한 부분(8 - 12절), 그 희년에 취할 기본 행동(13 - 17절), 그리고 희년을 지킴으로 얻어지는 유익(18 - 22) 들을 다루고 있다. 8 - 12절 :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년이 일곱번인즉 안식년 일곱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 칠월 십일은 속 죄일이니 너는 나팔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 지며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 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 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 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 레위기 25장은 1 - 7절에 안식년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안식년과 희년사이에 깊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8 - 9절은 희년의 시기에 대한 정확한 날짜를 규정한다. 즉 7년에 한번씩 오는 안식년이 일곱번이 지난 49년째 7월 10일인 속죄일에 큰 나팔을 부는 것으로 희년이 선포되었다. 희년이 속죄일에 선포되었다는 것은 속죄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의 화해가 필요함을 암시한다. 10 - 11절에는 희년을 ’50년이 되는 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시작되는 해와 마지막 해를 동시에 함께 세는 방식에 의해서 오십년이 된것이다. 10절에 의하면 이 해는 ’거룩한 해’이며 ’드로르’( :자유 또는 해방)가 선포되었다. ’드로르’라는 단어는 아카디아어의 ’안두라루’(An-duraru:부채로 부터 해방)에서 온 차용어인데,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때에 따라서 왕이 이러한 면제령을 내리곤 하였다. 켈로그(Kellogg)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3가지면에서 드로르가 선포되었다. 첫째는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땅을 빼앗겼던 사람들에게 ’드로르’가 선포되어 그 땅을 돌려 받았다. 둘째는 모든 히브리인 노예에게 ’드로르’가 선포되어 희년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셋째는 땅에 ’드로르’가 선포됨으로 땅을 경작하지 않고 땅에 해방을 주었다. 이러한 자유의 규정은 그 땅에 사는 모든 주민, 즉 경작지를 소유한 정착민들에게 주어졌다. 이들은 희년이 되면 그 사이에 떨어져 있었을 자기들의 소유지와 지파로 돌아 가야 했다. 이들이 소유지와 지파로부터 떠나야 했던 이유가 흔히 부채때문이었으므로, ’부채로부터의 해방’은 ’귀환’의 전제가 되었으며, 그와 더불어 원래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질서의 복귀를 위한 전제 조건이었다. 13 - 17절 :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기업으로 돌아갈지라. 네 이 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든지 너희는 서로 속이 지말라. 희년후의 연수를 따라서 너는 이웃에게 살 것이 요. 그도 그 열매를 얻을 연수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인즉 연수가 많으면 너는 그 값을 많게 하고 연수가 적으면 너 는 그 값을 적게 할지니 곧 그가 그 열매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고 너희의 하나 님을 경외하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14절에는 땅을 사고 파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것, 즉 다른 사람의 곤궁한 처지를 악용하여 이익을 취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리고 15 - 16절에서는 희년이 되면 ’해방되는 것’을 고려하여 매매 가격을 정하는 문제가 논의되어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인간은 그것을 위탁받은 자로 여겼기 때문에 땅을 사고 파는 것이 없었고, 구매자가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땅을 경작하는 권리였다. 그러므로 소출을 거둘 수 있을 햇수에 따라, 희년까지의 햇수가 많이 남았으면 비쌌고, 적게 남았으면 값이 싸게 되었다. 18 - 22절 : ”너희는 내 법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그 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히 거할 것이라. 땅은 그 산 물을 내리니 너희가 배불리 먹고 거기 안전히 거하리라. 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 칠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 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내가 명 하여 제 육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삼년 쓰 기에 족하게 할지라. 너희가 제 팔년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곡식을 먹을 것이며 제 구년 곧 추수하기까지 묵은 곡식을 먹으리라.” 여기서는 희년을 지키는 것이 저들에게 손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큰 이익을 얻는 것임을 확신시켜 주고 있다. 약속의 내용은 첫째, 그들이 땅에서 안전히 거할 수 있고(18,19절), 둘째, 그들이 그 땅의 충분한 소출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19절) 특 20절 - 22절에는 율법을 내리시는 야웨가 율법을 받아 준수하는 자들과 토론을 하는 것 같은 문구가 나온다. 여기서 야웨는 안식년에 먹을 것이 없을 거라는 항의에 대해, 6년째 해에는 두곱의 소출을 베푸는 복을 내릴 것을 약속한다. 18 - 22절에는 희년에 대한 말씀과 안식년에 대한 말씀이 겹쳐 나오는데, 이는 희년이 7번째 안식년과 동일한 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21절에 야웨가 안식년에 먹을 것이 없을 거라는 항의에 대해 ”삼년 쓰기에 족할 소출”을 주신다는 의미는 처음과 마지막 해를 계산에 넣는 히브리인의 계산법하에서 이해할 수 있다. 2. 희년제도의 내용 (23 - 55절) 23 - 55절은 희년제도의 내용에 대해 크게 4부분으로 설명해 준다. 첫째는 ’토지무르기’에 대해서 23 -28절에서, 둘째는 ’가옥환원’에 대해서 29 - 34절에서,셋째는 ’이식없는 대부’에 대해서 35 - 38절에서, 넷째는 ’노예해방’에 대해서 39 - 55절에서 설명한다. a. 토지무르기 (23 - 28절) 23 - 28절 :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 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 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만일 그것을 무를 사 람이 없고 자기가 부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거든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지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23절의 서언은 다음에 열거되는 토지무르기 법령을 지배하는 근본 원리이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땅’은 신명기 26장 9절과 여호수아 21장 43절이 말하듯이 야웨께서 주신 것이고, 각 지파에게 야웨께서 분배하신 것이다. 즉 땅의 원(原)주인은 야웨이시고 이스라엘은 그 야웨의 땅에 몸 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므로 이스라엘인이 땅을 매매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한 이스라엘인이 빚을 져서 억지로 소유지를 팔아야 했을 경우에는 25절에 의하면 우선으로 ’기업무를자’( )가 나서야 했다. 이는 가까운 친척 중 하나가 그 땅을 산 사람에게 땅을 팔 때 치룬 액수를 물어주고 그 판 땅을 다시 되찾아서 그것을 그 자신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소유자에게 돌려 줌으로써 대가족이나 지파의 연대감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었다. 만일 그러한 ’기업무를자’가 없거나, 있다해도 그 자신이 그것을 되돌려 살만한 능력이 없을 경우에는 26 - 27절에 의하면 그 땅을 판 사람 자신이 나중에 그것에 필요한 액수를 조달할 능력이 되면 그 땅을 되돌려 사려고 노력할 수 있었다. 이 액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로 낮아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27절에 의하면 땅을 판 것이 아니라 해마다 나는 소출을 판 것이므로 다시 되돌려 살 때에는 지나간 햇수만큼의 가치를 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27절에 나와 있는대로 되돌려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희년이 되면 제 소유지로 복귀되었다. b. 가옥환원 (29 - 34절) 여기서는 가옥환원에 대한 희년제도의 내용을 다룸에 있어, 일반인의 가옥 (29 - 31절)과 레위인의 가옥 (32 - 34절)을 구분하여 말한다. 29 - 31절 : ”성벽에 있는 성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지 만 일년 안에 는 무를 수 있나니 곧 그 기한 안에 무르려니와 주년 내 에 무르지 못하면 그 성내 가옥은 산자의 소유로 확정되 어 대대로 영영히 그에게 속하고 희년에라도 돌려 보내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러나 성벽이 둘리지 아니한 촌락의 가옥은 나라의 전토 일례로 물려주기도 할 것이요. 희 년에 돌려 보내기도 할 것이니라.” 일반인의 경우 성벽 내에 있는 가옥과 성벽 밖에 있는 가옥이 구분되어 설명된다. 성벽 밖에 있는 가옥에는 희년법을 적용하여 희년이 되면 팔았던 가옥이 자동으로 복귀되도록 하였는데, 성벽 안에 있는 가옥은 1년 이내로 무르지 못하면 영원히 무르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대해 ’켈로그’(Kellogg)는 희년법이 목축이나 경작에 사용되는 땅에만 연관되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즉, 성벽 밖에 있는 집의 거주자들은 땅의 목자와 경작자이고, 그들의 집은 땅에 부수되는 필수품이며, 그들의 집이 없다면 그 땅도 사용 불가능하기 때문에 희년법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M.Noth는 이를 가나안의 도시법과 이스라엘의 토지법 사이의 대조라는 사회적 배경 하에서 설명한다. 즉 이스라엘인중 어떤 사람들은 가나안 정착 이전부터 벌써 가나안 도시에 살고 있었고, 거기서 그들의 가옥도 갖고 있었고, 자신들이 세운 성곽 도시까지 소유하고 농사를 짓고 살고 있었기에 그들에게도 고대 가나안의 도시법이 적용되었고 성벽 밖에 살던 사람에게는 희년법이 적용되었다. 32 - 34절 : ”레위 족속의 성읍 곧 그 기업의 성읍의 가옥은 레위 사 람이 언제든지 무를 수 있으나 레위 사람이 만약 무르지 아니하면 그 기업된 성읍의 판 가옥은 희년에 돌려 보낼 지니 대저 레위사람의 성읍의 가옥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 서 얻은 기업이 됨이니라. 그러나 그 성읍의 들의 사면 밭은 그의 영원한 기업이니 팔지 못할지니라.” 도시 안에 있는 가옥이라 할지라도 레위인이 소유한 가옥들에는 희년법이 적용되었다. 이것은 33절에서 지시하는대로 가나안 입주 당시 레위인들이 야웨로부터 분배받은 기업은 농토가 아니라 도시들이었기 때문이다. 34절에는 레위인이 도시 주택을 소유할 때 그 도시 구역으로 간주되는 ’들의 사면 밭’( )도 거기에 딸린 배당으로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밭은 전혀 사고 파는 것이 금지 되었다. 이 규정은 레위인의 소유를 보존하기 위한 관심사에서부터 내려진 것이다. c. 이식없는 대부 (35 - 38절) 35 - 38절 :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 는 그를 도와 객이나 우거하는 자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 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식을 취하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 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 에게 이식을 위하여 식물을 꾸이지 말라. 나는 너희 하 나님이 되려고 또는 가나안 땅으로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기서는 주로 동족끼리 서로 금전으로 도와줄 때는 이자나 장리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즉 동일한 고난의 경험을 공유했던 히브리인 형제끼리는 이식을 전제한 꾸어 주는 일과 빌리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남에게 무엇을 빌려 와야 할 때, 그는 자기의 씨족이나 동족의 범위 안에서 지원자를 찾아야 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빌려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꾸어 주는 것을 거절하였다. 왜냐하면 빌려간 자들이 자신들에게 부과된 임무들을 충실하게 지키지 않았으며, 또 반환할 능력이 되어도 갚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대금’이란 이자없이 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무이자 대출만을 계약서는 허용하고 있으며, 그것은 이스라엘 중에서만 시행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반 에 외국인에게는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이웃 백성들에게서는 모두 이자를 받으면서 대금하는 풍속이 획일적으로 통용되었다. 38절에는 그들이 계약의 하나님을 다시 강조하므로 이식없는 대부에 대한 명령을 확고히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처럼 동족에게 자비로와야 한다. d. 노예해방 (39 - 55절) 여기서는 노예된 자의 사면 또는 해방에 대한 희년제도를 다루면서 이스라엘 민족 안의 노예 (39 - 46절)와 이방인에게 팔려간 이스라엘의 노예 (47 - 55절)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39 - 46절 :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네게 몸을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군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너와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그 때에는 그와 그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 본족에게로 돌아가서 조상 의 기업을 회복하리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 여 낸 바 나의 품군인즉 종으로 팔리지 말 것이니라. 너 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너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너 의 종은 남녀를 무론하고 너의 사면 이방인 중에서 취할 지니 남녀 종은 이런 자 중에서 살 것이며 또 너희 중에 우거한 이방인의 자녀 중에서도 너희가 살 수 있고 또 그 들이 너희 중에서 살아서 너희 땅에서 가정을 이룬 그 중 에서도 그리할 수 있는즉 그들이 너희 소유자가 될지니 너 희는 그들을 너희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어 소유가 되게 할 것이라. 이방인 중에서는 너희가 영원한 종을 삼으려니 와 너희 동족 이스라엘 자손은 너희 피차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 여기서는 이스라엘 사람이 빚 때문에 자기 몸을 팔아야만 했던 경우를 다룬다. 그렇게 해서 그는 기본적으로 그를 산 사람의 소유물, 즉 노예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를 종처럼 대우해서는 안되며 ’품군’이나 ’식객’처럼 대우해야 했다. 즉 그들의 노동력을 요구할 수는 있었지만 그의 인격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디까지나 단지 ’가난하게 된 형제’ 불과할 뿐이고 (39절), 그들도 역시 야웨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야웨의 종들’(42,55절)일 뿐 ’인간의 종’은 아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어휘 자체도 노예신분을 강조하지 않는다. 노예의 주인은 가장의 의미를 지닌 ’아돈’( : 바깥어른)이라 불러지며, 소유주의 뜻을 가진 ’바알’( )이라 불리는 일이 없다. 즉 이스라엘의 주종 관계는 소유주와 노예 (상품인) 의 관계가 아니라 부자주의 (Paternalism)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스라엘인은 다른 민족에게서만 진짜 종을 사들일 수 있었다. 그 외에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몸 붙여 사는 ’식객들’의 자손중에서 종을 사들일 수 있었는데, 이 식객들도 역시 대개는 외국인들로서 이스라엘 영역에서 상인이나 수공업자로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47 - 55절 : ”너희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부요하게 되고 그 곁에 사 는 너희 동족은 빈한하게 됨으로 너희 중에 우거하는 그 이방인에게나 그 족속에게 몸이 팔렸으면 팔린 후에 그를 속량할 수 있나니 그 형제 중 누구든지 속할 것이요 그가 부요하게 되면 스스로 속하되 자기 몸이 팔린 해로부터 희년까지를 그 산자와 계산하여 그 연수를 따라서 그 몸 의 값을 정할 때에 그 사람을 섬긴 날을 그 사람에게 고 용된 날로 여길 것이라 만일 남은 해가 많으면 그 연수대 로 팔린 값에서 속하는 값을 그 사람에게 도로 주고 만일 희년까지 남은 해가 적으면 그 사람과 계산하여 그 연수 대로 속하는 그 값을 그에게 도로 줄지며 주인은 그를 매 년의 삯군과 같이 여기고 너의 목전에서 엄하게 부리지 못하리라. 그가 이같이 속하지 못하면 희년에 이르러 그와 그 자녀가 자유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품군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나의 품 군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기서는 궁색해진 한 이스라엘인이 이스라엘인들 가운데 사는 부유한 외국인에게 몸을 팔았을 경우를 다룬다. 이 경우 외국인 주인은 노예의 속죄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노예의 몸 값을 지불하고 살 수 있는 노예의 친척이 요구할 때, 또는 노예자신이 힘이 생겨 비용을 갚을 수 있을 때 그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 (48 -49절). 값을 치루지 못할 경우에는 문제가 되는 그 노예를 희년에는 자유롭게 풀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외국인에게 요구되었다. 50 - 52절에는 종의 몸 값을 물고 되돌려 살 때 희년까지 남아있는 햇수를 따져서 그 가격을 매기는 것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16, 17, 27절에 나오듯이 토지매매를 조정하는데 희년을 참작했던 것과 유비된다. 53절에는 노예를 혹사 (40,43,46절)하지 말고 인간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와 있는데, 이는 외국인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스라엘인인 종을 악하게 다루면 그것이 모욕적인 것이 된다는 암시와 더불어 나와 있다. 55절은 이스라엘인이 야웨의 종이지 사람들의 종이 아님을 다시 한번 단언함으로, 사람들의 노예가 되서는 안됨을 강조한다. c. 희년과 연관된 성서적 내용 희년은 안식년이 7번 지난 후 50년째 되던 해 7월 10일인 속죄일에 선포되었다. 그리고 희년의 복음은 이사야 61장 1 - 2절과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의 말씀인 누가복음 4장 18 - 19절과 연관되어 성서 전반에 흐르고 있다. 이에 필자는 여기서 희년과 연관된 성서적 내용을 안식년, 속죄일, 그리고 ’은혜의 해’ (사 61:1 - 2, 눅 4:18 - 19)로 구분하여 살펴 보겠다. 1. 안식년 (출 21:2 - 6, 23:10 - 11, 레 25:2 - 7, 신 15:1 - 18) 안식년(Sabbatical Year)은 7년을, 1주기로 할 때의 그 마지막 해, 곧 7년째 되는 해로써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시간 계산 제도였으며, 종교, 사회, 경제적 관습의 제도이기도 했다. 이것은 본래 ’제 7 년’(Seventh year)이라고 표현되었고 (출 23:11, 느 10:31), 신명기 기자에 의해 ’면제년’( : senat hasmita : 부채를 삭제하거나 면제해 주는 해)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레위기에서는 ’땅의 안식년’( : senat sabaton : 농업 활동을 중지하는 안식년)이라 도 불렀다. a. 출애굽기 21장 2 - 6절, 23장 10 - 11절 출애굽기 21장 2 - 6절의 종에 관한 법령에 따르면, 히브리인을 종으로 삼았들 경우 칠년이 되면 자유를 주어 내보내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때 주인은 종에게 어떤 보상을 해 줄 의무는 없다(2절). 만일 그가 그의 종으로 들어올 때 아내를 데리고 왔었으면 아내도 함께 데리고 나가게 해야 하며, 주인이 그 종을 장가들여 그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을 경우에는 그 아내와 자식들은 주인의 것으로서 남종은 자기 혼자만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종이 자유인이 되기를 싫어하면 귀바퀴에 구멍을 뚫어 영원히 종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6절). 출애굽기 23장 10 - 11절은 매 7년째 준수해야 할 농경지의 휴경을 설명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땅의 휴식’만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휴경지에 저절로 자라난 곡식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강조한다. 그것은 백성 중의 가난한 자들이 거두어 먹도록 밭 주인은 손대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을 지키도록 매어 있는 이들은 밭 주인이며 그 본래 강조는 토지 소산물에 대한 부자들의 독점을 견제하는 데 있다. 또한 땅을 놀린다는 것은 그 땅위에서 일하던 종들과 가축들의 휴식까지도 제공하는 것이다. b. 레위기 25장 2 - 7절 레위기 25장 3 - 5은 출애굽기 23장 10 - 11절과 완전히 일치한다. 둘 다 토지의 안식을 말하고 있다. 안식년에는 땅을 쉬게 해야 되므로 파종도 금지되었고, 추수도 금지되었다. 여기서는 ’땅의 휴식’의 동기가 종교적으로 나와 있다. 즉, 안식일이 되면 사람이 야웨 앞에서 쉬는 듯 안식년이 되면 땅이 야웨 앞에서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땅은 야웨의 것이다. 그러므로 야웨는 인간이 땅에서 휴식을 주지 않고 계속 파종하고 수확하여 땅을 쇠약하게 하는 것을 그대로 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이와 같이 땅을 묵히는 것은 땅으로 하여금 새 힘을 얻게 하여 보다 소출을 오래 내도록 하기 위함이며 사람들은 주인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심지어는 가축과 온갖 짐승들 마저도 땅이 내는 소출을 먹게 되는 혜택을 입게 되리라는 것이다(6 - 7절). c. 신명기 15장 1 - 18절 여기서는 7년째 되는 해를 면제년이라 칭하고 있다.(1절) 2 - 11절에는 빚의 면제에 대해 설명한다. 이 명령 역시 야웨의 이름으로 선포되고 있으며, 이 요청에 응해야 할 대상은 약속의 땅을 유산으로 받은 백성들이다. 이는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백성은 그 위에 몸붙여 사는 색객에 불과 한 것이라는 희년법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1절 - 18절에는 종에게 자유를 주는 규정이 있다. 동족인 히브리인이 남자건 여자건 종으로 팔려 왔거든 육년만 부리고 칠년째 되는 해에는 자유를 주어 내보내야 한다는 규정은 출애굽기 21장 2,5절의 것과 같다. 그러나 여기서는 종에게 자유를 주어 내보낼 때 빈손으로 내보내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양 떼와 타작마당에 거둔 것과 손틀에서 짜낸 것을 한 밑천 되게 마련해 주어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2. 속죄일 (레위기 16장) 희년이 속죄일에 선포되었다는 것은 희년과 속죄일과의 깊은 연관성을 암시한다. 속죄일이란 히브리어로 ’욤 하키푸림’( :27 - 28절, 25장 9절)이다. 유대교에서는 레위기 16장에서 시사해 주는 대로 7월 10일을 속죄일로 지켰다. 이 날은 성소에 있는 대제사장이 모든 이스라엘의 죄를 속하기 위해 지성소로 들어가는 날로 오늘날에는 ’욤 키푸르’( )로 알려져 있다. 신약에서는 이 날을 ’헤 네스테이아’(η νηστεια)라 불리워졌다. 이 날에 대한 다른 명칭으로는 ’금식의 절기’(필로)와 ’중대한 날’(미쉬나)등이다. 일년에 한번씩 지켜지는 이 속죄일은 모세의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유일한 금식일이다. 이 날에 지켜야 할 의식은 레위기 16장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 날에 대한 보충적인 규정들은 레위기 23장 26 - 32절, 민수기 29장 7 - 11절에서 발견된다.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레 16:29, 23:27, 29; 민 29:7)라는 말은 이 날이 금식일임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 날은 또한 ’큰 안식일’(레 16:31, 23:32)로써,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안식일을 준수해야 한다(민 29:7). 이 날이 지닌 복잡한 의식과 다양한 기원은 모두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하실 처소로 성전을 택하실 거룩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그의 보호 아래 거한다.’는 단일한 목적을 위한 것이다 (겔 43: 7 - 9, 48: 35). 속죄 염소의 피를 성소에 뿌리거나 광야로 추방하는 의식의 목적도 ’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성전을 더러운 죄에서 깨끗게 한다’는 것이다. 3. 은혜의 해 (이사야 61장 1 - 2절, 누가복음 4장 18 - 19)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사역 목적을 누가복음 4장 18 -19절에 밝히고 있다. 즉,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는데 이는 이사야의 예언(사 61:1 - 2)을 인용하신 것이다. 여기서 ’은혜의 해’란 레위기 25장에서 언급한 희년을 가리킨다. a. 이사야 61장 1 - 2절 본문의 표상은 레위기 25장에 있는 희년전승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백성들 가운데 공의를 수행하는 창조주와 주권자로 묘사하는 시편 146편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희년의 표상은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성령에 의해서 사신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통치’이며, 또 하나는 ’가난한 자에 대한 복음선포’이고, 마지막 하나는 여러가지 억압과 포로됨으로 부터의 ’해방’이다 (1,2절). 이표상의 핵심은 ’희망을 전혀 가질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에 의해 희망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즉, 나쁜 소식만을 듣고 살던 가난한 자들이 좋은 소식을 듣고, 갇혀있는 자가 풀려나며, 앞을 못보던 이가 눈을 뜸으로써 신체의 자유를 획득하고, 노예상태에 있거나 억눌린 자가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이사야의 선언은 포로된 자를 자유케하고 경제적 이유로 노예가 된 자를 해방시키는 선언이다. 또한 그 선언은 이스라엘과 그 백성 개개인에게 해방과 자유를 가져오는 사역에 헌신할 것을 촉구하는 부름이다. 마침내 이사야는 하나님이 그의 구원의 실현을 위하여 은혜롭게 정하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 사회 속에서 지정하신 ’해방의 해’이다. b. 누가복음 4장 18 - 19절 신약성서에서 희년의 표상이 가장 명백하게 반영되어 있는 본문은 누가복음 4장 18 - 19절이다. 이 구절은 누가복음의 주제를 나타내 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예수의 정체성과 그의 선교의 동기를 정의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선교활동의 본질을 밝혀주고 있다. 18절- 19절의 맥락인 4장 16 - 21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수는 광야에서 사단의 시험을 받은 후,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 오신다. 어느 안식일날 예수는 동네의 회당에서 성서를 낭독하신다. 낭독한 본문은 이사야 61장 1 - 2절 말씀으로 회당의 회중이 익히 잘 알고 있는 희망과 약속으로 가득찬 구절이었다. 다 읽으신 후 예수는 그 말씀이 이 자리에서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신다. 이로인해 예수는 회중으로부터 배척을 당하시게 된다. 예수는 그의 선교 서두에서 이사야의 선언을 인용하고 있다. 예수의 선교는 희년전승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예수는 ”이글이 오늘날 너희귀에 응하였느니라.”(4:21)고 선언한다. 이 말은 ’주의 은혜의 해’가 도래했다는 말이다. 즉, 희년의 복음이 예수와 그의 선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Ⅲ. 희년의 사회적 의미 희년은 노예와 토지와 가난한 자의 빚을 사면하고 해방시키는 위대한 해로 노예가 된 인간과, 빚 때문에 빼앗긴 땅과 빚 자체에 관해 모든 경제적 사면을 해 주었다. 그러므로 이 해는 기쁨과 사면의 해라고 불린다. 이 희년법은 토지 소유의 무한한 팽창을 금지하고, 잃었던 집을 되찾고, 무겁고 괴로운 부채에서 해방되고, 절망적인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을 향유하는 사회를 이룩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희년법은 자유와 평등을 향한 사회적 요소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인 법이다. 이에 본 장에서는 희년이 지닌 사회적 의미를 희년의 4가지 내용인 토지무르기, 가옥환원, 이식없는 대부, 노예해방 측면에서 살펴보겠다. A. 토지무르기 희년의 궁극적 의미는 해방이며 그 구체적인 것은 경제적 요인으로 인한 소유권 박탈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그중 토지에 관한 소유권 회복은 땅이 이스라엘의 삶의 터전이기 에 그 무엇보다 우선된다. 이에 여기서는 토지무르기의 사회적의미를 살펴보겠다. 먼저 배경적인 고찰로 이스라엘의 토지(땅) 개념을 살펴보고, 희년의 토지무르기가 이스라엘 공동체에 어떤 사회적 의미를 주었는지 고찰하겠다. 1. 이스라엘의 토지 구약성서는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두 발을 이 땅 위에 굳게 디디고 서서 이 땅의 삶을 그들 관심의 촛점으로 삼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폰 왈도우 (Von Waldow) 는 ”구약성서의 토지 개념이 계약 개념보다 구약성서에서 더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구약성서의 토지 신학론을 주장한다. a. 이스라엘 초기의 토지 이스라엘 민족 역사의 중요한 사건 - 가나안 정복, 왕국 출현, 바벨론 포로이송 - 들은 모두 땅과 연관된다. 땅에 대한 약속은 오경의 중요한 주제이다. 이것은 ”내가 장차 보여줄 땅”(창12:2)으로 가라고 아브라함에게 지시한 야웨의 약속으로부터 시작된다. 출애굽기 서두에 야곱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땅이 없어서 에집트인들에게 학대 받는 내용이 나오는데, 바로 그러한 때에도 야웨 하나님은 모세에게 땅의 약속을 해 주신다.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 에 이르려 하노라.” (출 3:8) 이처럼 땅에 대한 약속은 5경 전체를 꿰뚫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주제이다. 폰 라드 (Von Rad)는 구원사적인 입장에서 야웨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해 준 것을 야웨의 커다란 구원 행위라고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수아를 포함한 육경 전체가 하나의 단위를 이룬다고 보았다. 즉 아브라함에서 주어진 약속이 여호수아에게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신명기 26장에서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이 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신 26:9).이 신앙 고백은 농사의 첫 열매를 거두어 하나님께 바치는 감사 예배 중에 읊은 것이다. 그러므로 땅의 선물은 처음부터 이스라엘 예배에 중요한 몫을 차지한 것이다. 이처럼 야웨는 모든 토지의 주인이고 이스라엘은 그것을 위탁받은 자라는 이해는 이스라엘 초기부터 있어왔다. 특히 여호수아서 13장부터 21장의 ’토지 분배’ 내용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즉 토지는 하나님으로부터 유업으로 받은 것이기에 골고루 나누어 가져야 하고 이를 잘 관리해야한다는 의식아래 그들은 제비를 뽑아 토지를 분배하였고, 유목민들의 관습을 그대로 보존하려 했다. 토지의 소유권은 씨족이 갖고 있었으며, 토지를 관리하는 자는 그 땅을 외국인들에게 팔 권리가 없다는 유목민적 관습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착 이후에도 그대로 보존되었다. 그러나 모든 지파들에게 주어진 영토의 경계선은 명확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각 지파 사이의 관계가 좋을 때는 영토를 함께 사용하기도 했으나 그렇지 않을 때는 온갖 분쟁의 이유가 되었다. 이러한 전쟁에서 승리한 지파는 다른 지파의 토지를 약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활양식과 사회조직 안에서는 사회계층의 차이는 거의 있을 수 없었으며 더구나 빈부의 격차는 실제로 불가능하였다. 씨족 전체가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하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직은 그 씨족 내에서 개인 간의 빈부 격차는 없었다. 이와 같이 이 시기에는 아직 토지의 빈부 격차는 없었으며 모두가 분배받은 땅은 경작하던 평등한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b. 왕정시대와 그 이후의 토지 이집트에서는 모든 토지가 바로나 신전들의 소유였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왕과 성소들이 아마 광대한 토지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공동체들과 개인들도 일정한 토지에 대하여 소유권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런 토지에 대하여서는 왕도 소유자로부터 매입함으로써만 사용권을 발동할 수 있었다. 왕은 이런 식으로 구입한 토지들이나 자기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들을 통하여 자기의 영지를 구성하였다. 영지는 어느 개인에게 할양하여 주지만, 그가 마음대로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다는 조건 하에 주는 땅이요, 그는 이에 더하여 개인적으로 토지를 할양한 자에게 봉사할 책임을 지게 된다. 이런 봉건제도는 근동에 아주 만연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은 후기에 와서야 비로소 근동의 이러한 발전과 연결되었고, 중앙집권화된 국가가 된 것도 후기에 와서야 비로소 나타난 현상이었다.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시사한 사실도 왕이 백성들에게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도록 부려먹고 그들을 시켜서 자기의 농산물을 거두어들이게 할 것이며 백성들의 포도원들과 감람원들을 빼앗아 자기 하인들에게 넘겨줄 것이라는 경고였다. 이것은 사울 통치하에서 현실화되었다. 그가 왕이 되기 전에는 근소한 부모의 재산만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왕이 된 후 그는 밭과 포도원들을 자기의 하인들에게 분배할 수 있었으며 또 그가 죽을 때에는 상당한 재산을 남겨 놓았다. 그들은 처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가나안 사람들의 토지를 사들였으나, 후에는 처형된 자의 토지, 나라를 떠난 사람들이 남겨 놓은 토지, 예물로 들어오는 토지, 열매나는 토지의 징발등으로 이스라엘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토지를 관리하기 위해서 관리를 임명하였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과세를 부과했다. 반면에 이스라엘의 소작농들은 빈궁에 쫓긴 나머지 자기 조상의 토지를 매각하게 되었고, 이는 대지주 또는 왕에게 예속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땅을 왕들과 대지주들이 마음대로 다루었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은 그들의 땅을 바벨론에게 빼앗기게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스라엘 초기는 토지란 하나님께서 선물로 분배해 준 것이라는 이해 하에 평등한 사회였으나, 그 후 왕정이 시작되면서 왕과 대지주들이 토지를 더욱 많이 소유하였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뜻대로 사용하였다. 그 결과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었고, 종국에는 토지를 잃는 아픔을 당하게 되었다. 2.토지무르기의 의미 희년의 토지 이해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몸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며, 따라서 분배받은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팔 수 없으며 가난 때문에 팔았다해도 다시 되돌려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도로 찾을 힘이 없을 경우에는 희년에 자동적으로 원래의 소유자에게 돌아오게 되었다. 여기서는 토지무르기의 의미를 ”야웨의 소유로서의 토지”와 ”토지를 되돌려 사는 것”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겠다. a. 야웨의 소유로서의 토지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1)라는 시편 기자의 표현은 레위기 25장의 희년에 관한 규정인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 레 25: 23) 라는 땅에 대한 야웨의 소유권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이처럼 토지무르기의 의미는 토지에 관한 야웨의 소유권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성이다. 이스라엘은 야웨의 명령과 도움에 따라 가나안 땅을 정복했으므로 야웨를 그 땅에서 땅의 주인으로 섬기는 것은 당연했다. 이스라엘은 땅에 대한 아무런 권리 주장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생계와 생존과 안전은 모두 땅 주인인 야웨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었다. 이처럼 토지무르기는 땅이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음을 나타낸다. 땅은 어디까지나 유업이었다. 유업( )이란 말은 소유 재산, 상속 재산 등이란 의미로 야웨가 가나안을 이스라엘에서 약속으로 준 것, 각 부족들이 서로 분배받은 땅, 또는 선조에게 물려받은 상속 혹은 분깃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와같이 토지무르기란 야웨가 이 땅의 소유주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하나님의 소유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b. 토지를 되돌려 사는 것 레 25:25절은 파산하여 가족을 잃을 위기에 처하여 재산을 회복하려는 동족의 의무인 토지를 되돌려 사는 것에 대해 말해준다. 불(Buhl)은 저당물을 대신주는 사람이 가난한 자에게 그것을 되돌려 주기 위해서 부동산을 사는 것이 아니고 씨족 또는 공동체를 위해서 사는 것이라 한다. 이는”되돌려사는 것”은 가족 안정을 표현한 것이며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유산을 분배할 때 토지는 다른 동산과 같이 분배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장자에게만 전부를 주든가 또는 아들이 없을 경우 그 토지가 그의 딸에게 양도된 것, 딸이 자기 종족안에서만 결혼하도록 통제한 것, 또한 자식이 없는 과부가 자기 시동생의 아내가 되도록 규정한 결혼법등은 모두 그 가족의 토지가 다른 집안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이와같이 토지를 그의 가족이나 씨족이 되돌려 사는 것은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보호하고 개인의 사유 재산을 극대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B. 가옥 환원 1. 이스라엘의 가옥 개념 고대 이스라엘에 있어서 한 개인은 어떤 공동체안에 예속되어 있을 때만 생존이 가능했다. 이러한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대한 단위가 곧 가족( ) 이였다. 가족이 모여서 씨족이 되고, 씨족이 모여 지파가 되고, 지파가 모여 민족이 되었다. 여호수아 7장 16절 - 18절은 민족 - 지파 - 가족 - 개인이라는 사회구조의 계통을 분명히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서 가족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바이트’( ) 는 보통 두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는 가시적인 집인 ’가옥’을 의미했고, 다른 하나는 불가시적인 집인 ’가족’을 의미했다. 특별히 가족을 의미할 때는 ”아버지의 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것은 한 가족에 있어서 아버지가 책임을 진 주요 인물이라는 뜻이다. 또한 가족은 혈연공동체와 동시에 거주공동체를 통하여 결속된 모든 자들로 구성된다. ’가족’이란 ’한 집’을 가리키며, ’한 가정을 건설한다’는 것은 ’한 집을 세운다’는 표현으로 나타난다.(느 7:4) 가족에는 자녀들 뿐만 아니라 그 집에 함께 우거하는 자, 즉 남녀 종들과 그 집의 최고 어른의 보호하에 있는 실향자, 과부, 고아들을 포함한다. 이처럼 가정은 거의 모든 자들의 생활보장을 전담했고, 가정의 밖에서는 거의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으며, 더우기 가정이 없는 개인이란 생존의 수단이나 보호자가 없는 것과 같았다. 이스라엘인들이 처음 정착하고 토지를 분배받았을 때 그들은 대체로 사회적인 처지가 균등했다. 모든 부는 모든 가족에게 골고루 분배되었고, 모든 가족은 거의 균등한 집을 짓고 살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조 이후 일종의 관리 계급이 출현했고, 이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왕이 베푸는 호의를 바탕으로 온갖 이익을 누리며 막대한 토지와 호화스런 가옥을 지었다. 이러한 현상은 왕조말기에 더욱 확연히 나타나며 특별히 예언자들의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아모스는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궁들이 파멸되며 큰 궁들이 결판나리라” (암 3:15)라고 말함으로 백성들 사이에 불의한 재물을 축적하여 호화스런 주택을 짓은 자들을 경고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스라엘에 있어서 집이란 개인의 생존을 보장하고 보호처가 되는 가족의 기본적, 거처였다. 그러나 왕정이후 집이란 대지주와 왕들의 부의 축척의 수단이 되었다. 2. 가옥환원의 의미 가옥환원에 대한 희년의 적용은 토지 무르기와 기본적으로 흡사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성벽안과 밖을 구분하여 성밖의 가옥에만 희년법을 적용한 것과, 특별히 레위인들의 소유인 도시 가옥에 희년법을 적용한 것이 특이하다. 이는 가난한 도시 밖의 시골 사람들과 경제적 타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레위족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이 주어지면, 그곳에서는 결코 집을 팔지 말 것을 명하신다. 이는 집을 팔게 되면 그 가족은 파괴되고 노예로 전락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수 없이 집을 팔았을 경우 희년이 되면 모두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레위인의 기업과 도시 밖의 가난한 사람들의 가옥은 생존의 마지막 보루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분배받은 유산이었다. 그러므로 생을 출발할때 주어진 원 자본인 그 유산은 절대로 지켜져야 했다. 이와같이 희년에 가옥이 환원된 것은 힘이 없는 도시 밖의 가난한 자와 레위인들의 최소한의 기본적 삶을 보호하기 위함이요, 야웨로부터 물려받은 기본 유산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C. 이식없는 대부 1. 이스라엘의 대부 기원전 2천년기 초부터 셈족들 간에 공통된 관행이 되었던 이자를 부과하는 행위는 5경에 의해 위축되었고 정죄되었다. 그런 관습들은 씨족내 친족들 사이에서 이자없이 혹은 개인적인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에 있어서 위법행위는 빈번했고, 이런 범법행위들은 예언자들에 의해 격렬하게 정죄되었다. 에스겔과 느헤미야는 자기시대 사람들에게 돌이켜 율법을 엄격히 지키라고 요구했다. ”이자”는 히브리어로 ’네섹’( ;neshek), 문자적 의미로는 ’물기’를 나타내며, ’타르비트’( ;tarbit)는 문자적 의미로는 ’증가’를 나타낸다. 아마 처음에는 네섹이 모든 종류의 대부를 묘사한 것 같다(비교,신 23:20). 그러다가 후에 가서는 돈으로 빌려주는 것에 제한되었고 타르비트는 곡물의 대여를 표시했을 것이다. 고대 근동의 높은 이자율이 만연한 것과는 달리 이스라엘은 동족끼리 돈을 꾸거나 이식을 취하는 것을 금했다. 그러나 이자받기를 금하는 대상은 ’내 백성’(출 22:24)과 ’너희 동족’(레 25:35)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신명기에는 외국인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하였다. 이는 본래 동족의 가난한자를 위하여 대부를 하여야 하나, 상업적 목적으로 외국인에게 대부를 하는 것도 허용되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초기에는 공동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서로 무이자로 동족 간에 도와주었다. 그러나 왕정 이후에는 경제적 발전과 외국인들의 새로운 풍속들을 율법에 제시된 규정을 위반하였다. 시편 15:5에서는 여호와의 장막에 유할 자는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자를 해치 아니하는자”라고 하였다. 즉, 의인은 이자를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 제재도 무시되었고, 차용자에게 가혹하게 되어 그의 자녀를 노예로 삼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았다. 성전재건 후 느헤미야는 고리의 이자 때문에 유다의 가난한 자들이 집과 재산을 잃게 되었다고 말한다. 2. 이식없는 대부의 의미 레위기 25:35 - 38에서는 동족끼리 금전으로 도와줄 때는 이자나 장리를 취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반면에 신명기 15:1 - 6의 면제년에 대한 법규에서는 안식년에 채무자들의 빚이 탕감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법의 목적은 살기위해 자신을 팔 수 밖에 없는 극단적인 가난을 방어하는 것이다. 빚은 어떤 경우건, 특별히 가난한 사람에게는 짐이 된다. 그런데 이자가 붙여진다면 빚은 채무자에게 더욱 무거워진다. 따라서 희년법은 고리대금을 금지한다. 뿐만 아니라 동족에게 어떤 형태로든 이자를 취하는 것을 금지한다. 똑같은 구원을 경험했던 평등한 동족 사이에 고리대금업은 결국 가난한 자를 노예로 전락시키므로 신분의 계층화가 생겨나고, 그들의 소망인 평등사회 이념을 깨어지게 한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면제년법 ( 신 15:1 - 18)과 희년법 ( 레 25:35 -38)을 연결시킴으로써 ’사면의 해’에 가서는 이식은 물론 빌려준 자의 원금까지도 탕감, 소멸되게 해 버린다. 물론 이러한 경우에는 안식년이나 희년이 가까와지면 꾸어 주는 일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기므로, 안식년법은 오히려 그러한 기피 행위도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면제를 강조한 이유에 대해 맥켄지 ( R.A.F.Mackengie)는 ”안식년이 상업적인 실용규칙을 위해서 경직된 의미로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 우정 깊은 자선을 권면하는 인도주의적 의미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라고 도덕성을 강조한다. 이는 레위기 25:38에 나타난 출애굽 신학, 즉 이스라엘이 야웨의 인도하심으로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해방을 얻은 민족이므로 이스라엘도 역시 가난의 질곡 속에 있는 형제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고, 형제를 통해 이득을 얻기 보다는 그들을 돕는데 관심해야 한다는 것과 연결된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이식없는 대부와 대부의 면제에 대한 사회적 의미는 동족의 경제적 파산을 구제하므로 그들 사이의 공동체 의식을 더욱 견고케하기 위함이라 하겠다. D. 노예해방 1. 이스라엘의 노예제도 노예제도란 한마디로 사람이 사람을 소유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것은 고대 근동에 널리 통용되던 제도였으며 구약의 많은 부분도 노예에 관한 법을 다루고 있다. 노예는 엄격히 말해서 ’물건’이었다. 노예가 불구가 되거나 살해되었을 때 그 손실에 대한 보상은 상전이 받게 되어 있다. 노예 자신은 절대로 피해 당사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에베르’( : 종, 섬기는 자)는 본래적인 의미에서 ’노예’를 의미한다. 여기서 노예란 부자유하고 타인의 세력하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이 단어는 왕의 권력이 절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근거에서 왕의 하인들, 특히 왕의 용병들과 왕의 군인 장교들과, 고급 관리들과 왕에 대한 봉사의 의무로 인하여 여타의 사회적인 모든 구속력을 단절시킨 자들을 의미한다. 또한 이 개념은 의미의 확대를 통하여 겸손을 나타내는 단어도 된다. 이스라엘인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노예로 전락할 수 있었다. 첫째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진 경우이다. 곤경에 빠진 자가 노예로 전락하는 경우는 대부분 부채를 지불할 수 없게 되었거나 자신의 몸을 담보로 내어놓고 빚을 얻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중 부채를 지불하지 못하는 채무자를 강제로 데려다가 노예로 삼는 경우는 여러 자료를 통하여서도 증명된다. 예를 들면 아둘란 동굴에서 다윗에게 가세한 자들 가운데는 채권자에게서 도망한 채무불이행 채무자들이 다수 있었고, 어느 여인이 부채로 인하여 자기 두 아들이 채권자의 노예로 될 형편에서 엘리사가 나타나 그들을 위하여 기적을 행한 사건도 있다. 또한 이사야 50:1 에서 야웨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고 질문하신다. 포로후기에도 부모는 채무지불에 대한 담보물로서 자기의 아들과 딸을 저당잡힌다. 이 경우 빚을 갚지 못하여 저당잡힌 아들, 딸이 노예가 되었다. 이와같이 자유인이었던 이스라엘인이 경제적 어려움에 빠질 경우 노예로 전락하곤 하였다. 둘째는 도둑질을 하였으나 변상할 능력이 없을 경우이다. 여기서 도둑이 노예로 팔리도록 제정된 이유는 도적질한 것에 대한 벌이 아니라 재산손실에 대해 주인에게 보상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세째는 전쟁의 포로들의 경우이다. 전쟁포로들과, 어떤 경우에는 전쟁에서 패한 국가의 국민들이 큰 무리의 노예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고대근동의 전쟁사에 충분히 인정되고 있다. 전쟁포로들을 노예화하는 수법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서도 사용되었다. 이와같이 성서에도 이스라엘인이 노예가 되는 경우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나 성서의 법 규범은 제한적이기는 하나 노예의 인간성을 인정하고 있다. 상전이 종을 학대할 경우는 있겠으나, 매질을 해서 종이 영영 불구가 되면 사지를 잃게한 댓가로 종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만일 매질로 인해서 종이 즉사하면 상전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 더나아가 성서는 노예제도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노예해방을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출애굽기 21:2 - 6에 의하면 6년 동안의 노예생활이 지난 다음에 남자 노예들은 해방되어야 하고, 신명기 15:12 - 17에 의하면 남녀 노예들이 똑같이 6년동안의 노동을 한 다음에는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자유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면 일평생 노예로 머물게 되었다. 이러한 경우에는 주인이 집의 문기둥에 종의 귀를 대고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그 노예가 자기 집에 영구히 머물게 할 수 있었다. 레위기 25장에 의하면 희년이 되면 이스라엘의 모든 노예가 해방되었다. 희년에는 이스라엘의 노예들이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해방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스라엘인은 여러 경우에 노예로 전락될 수 있었으나 율법은 무제한적인 노예의 존재를 거부하며, 부분적이기는 하나 노예의 인간성을 인정하고 있다. 2. 노예해방의 의미 희년은 그 적용범위가 한 개인에 국한되지 않으며 그 파급 효과는 사회 전반에 걸치고 있다. 이는 안식년과 희년의 본래적인 성격이 개인적 차원의 인도주의 정신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특성을 지닌 사회적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인간 본연의 자유에로의 희구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희년의 노예해방은 고대근동이나 희랍의 노예제도에서는 살펴볼 수 없는, 이스라엘인인 형제와 동족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노예’라는 것을 있을 수 없다는 사상이다. 그러한 종 또는 노예상태는 단지 ’빈곤’이라는 것 때문에 생긴 하나의 결과이기 때문에 종으로 자신을 판형제라고 해서 ’종 부르듯 엄하게’다스려서는 안되고 단지 ’품꾼’이나 ’식객’으로만 대하라고 희년법은 명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디까지나 단지 ’가난하게 된 형제’에 불과 할 뿐이고, 그들도 역시 야웨 하나님께서 애굽으로부터 인도하여 낸 ’야웨의 종들’일 뿐 인간의 종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전에 노예의 굴레를 경험하면서 노예제도의 불합리성, 이에 대한 거부감들을 의식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즉, 노예 소유자가 인간을 완전소유하여 노동력을 혹사하고 나아가서 매매, 양도 심지어는 살상까지 임의로 할 수 있는 인신지배권을 가지고 최대한 그들의 가치실현의 대상으로 다룬 것이 노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이에 대한 반영은 가나안 정복 이후, 초기 이스라엘 ( 1250 - 1050 B.C )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평등사회 구조를 실현하려 했던 것이다. 희년의 노예해방은 자유를 갈구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동기를 법을 통해 실현시켜 주는 것이다. 인간존중의 사상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며,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역사 가운데 실현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노예를 부리는 주인의 개인적인 선택에 의존하지만 이것이 제도화되고 사회 전체적으로 파급될 때, 정의사회, ’샬롬 ( )공동체’는 이루어 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어디까지나 형제들로 구성된 백성이므로, 이 희년의 노예해방은 이스라엘 백성들 간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켜 주고, 하나님의 한 백성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Ⅳ. 희년의 신학적 의미 구약에 규정된 희년법은 단순히 ’인도주의’(Humanitarianism)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이신가?’라는 문제와 깊은 연관을 갖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에집트에서 노예살이를 경험할 때 야웨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해주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야웨의 종이었다. 만약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된다면, 이는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권리가 노예 소유주들에 의해서 침해 당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종을 억압할 수는 없다. 가옥과 토지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와같이 희년은 백성들에게 평등성을 회복시켜 주며 경제적 파산으로 몰락한 그들에게 자유와 새로운 삶의 기회를 준다. 뿐만 아니라 희년을 선포하신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며, 이 명령을 받아들여야 할 이스라엘은 어떤 공동체인가를 설명한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희년은 신학적 동기에서 출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본 장에서는 희년의 신학적 의미를 논함에 있어서, 희년의 선포자이신 야웨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며, 이 희년법을 받는 대상인 이스라엘은 어떤 공동체인가를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희년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희년의 성취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희년의 신학적 의미를 고찰해 보겠다. A. 야웨 하나님 - 희년의 선포자 짐멀리 (W. Zimmerli)는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 사상에 대해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모든 백성을 다스리시는 주인이시며, 억눌린 자의 부르짖음을 들이시고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시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하나님 사상은 희년법에도 나타나 있다. 희년법에 나타난 하나님 사상은 양면성이 있는데, 그것은 창조주와 구속주라는 것이다. 희년이 안식일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토지의 주인이 야웨라는 것은 하나님이 만물의 주이시며 창조주이심을 나타낸다. 또한 희년이 속죄일과 연관이 있으며 야웨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에집트에서 구해내신 것, 그리고 ’기업무를자’( )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하나님이 구속주이심을 보여준다. 이에 여기서는 희년의 선포자이신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속주로 살펴보겠다. 1. 창조주 하나님 희년법은 안식년에서 안식년은 안식일제도에서 유래되었다. 안 일에는 가족, 노예, 가축 모두가 일을 하지 않고 쉬었다. 즉, 안식일에는 모든 것들 -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녀, 고용자와 피고용자, 원주민과 이주민, 가축과 땅등 - 이 함께 안식했다. 이는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만믈을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모습대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신명기 10장 14절을 보면 ”하늘과 모든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이 본래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야웨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에 대한 소유권과 통치권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나타낸다. 야훼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기에 이에 대한 통치권과 소유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야웨 이해는 땅, 가옥, 사람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므로 희년에 모든 유업을 원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 토지를 쉬게한 것은 야웨가 그 유업의 주인이라는 ’모노 야웨이즘’(Mono - Yahwism) 에 부합된다. 초대 이스
구약신학
구약신학 1.창조주 하나님 창조신앙 침멀리(Zimmerli)는 "구약성서가 말하고 있는 소위 이집트에서의 구원이라는 역 사적인 사건이 가장 기본적인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이것을 기점으로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으며, 드디어 가나안 주변의 발전된 창조신화에 접한 이후에 창조주 하나님 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에 알게 된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지만 그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다음 그들 주변 본토인들이 가지고 있던 신들의 창조에 접한 이래 이스라엘의 독특한 창조론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폰라드(von Rad)는 이스라 엘의 창조론이 대두된 것은 주전 7세기나 6세기경이라고 보는데, 창조론이 이같 이 늦게 발전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이 체험한 이집트에서구원을 시켜준 역사의 주로서의 야웨와 창조주로서의 야웨가 동일인임을 시인하는 데는 많은 시 간이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나안 주변의 창조신화에 대해 처음에는 거부반응을 일으키다가 나중에서야 창조사건과 구원 역사를 야웨에게 결부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창조시편 시편 중에서 하나님이 자연을 창조하신 것을 예찬하는 시로서 제8편, 19편, 104 편등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들을 통칭 창조시라고 부른다. P의 신학 성서 비평가들에 의하면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4절 까지를 P문서라고 부른다. P문서는 제사학파의 신락자들이 바빌론 포로 기간중 J,E,D문서를 합쳐 5경을 편 집한 기본적인 문서라고 보고 있다. P신학자의 역사 구조는 무척 도식적이다. 그 는 제사장의 입장에서 계시된 야웨의 토라를 시대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P 신학자들이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를 그의 역사 구조 도식의 첫부분에 첨가시킨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만둘었나보기 보다는 안 식일 제도가 어떻게 나왔는가를 보여주는데 더 의의가 있다. 창세기 첫머리의 P신학자의 창조이야기가 역사적인 서술이라기 보다는 신학적인 해석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게 된다. 악트마이어(Achtemeier)는 구약성서에서 창세기 5장 3절 이외에 9장 6절에도 " 형상"이란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타락이 하나님의 형상을 없애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신이 인간의 형상대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 의 피조물로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지니며 이 세상을 다스릴 권한이 주어졌 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침멀리는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라는 단서는 인간 성(성)의 양면성을 밝힘 으로써 인간은 하나님의 독특성과 거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 다. 침멀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P신학자의 의도는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을 띠었 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모습을 가졌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여기서 P신학자의 의도는 인간이 하나님에게로부터 기원된 것이니까 결코 혼자서 충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 여주며 우주에서 인간은 결코 궁극적인 주권자가 될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P신학자는 인간이 항상 그의 창조주 앞에서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야 한 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P신학자는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창조주 P신학자는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창조주로서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시는 분이며 그는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사 세상을 다스리세 하시고 계약의 동반자로 삼으셨다는 것 이다. 우리는 P신학자에게서 고도로 발달한 유일신 사상의 신학과 창조신앙을 발 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상은 포로기의 체험을 통해 결정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J의 신학 예루살렘 궁중에서 활동한 야웨신학자는 부족 공동체 시대에 물려받은 이스라엘 전승을 정리하여 세상 창조로부터 가나안 입주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서술해 놓 았다. 예루살렘의 궁중에서 활동한 야웨신학자(Yahwist)는 부족 공동체 시대에 물려 받은 이스라엘 전승을 정리하여 세상 창조로 부터 가나안 입주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서술해 놓았다. 야웨 신학자는 출애굽을 시켜주신 하나님과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하나님, 그리고 태초에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이 모두 동일한 이스라엘 의 야웨 하나님임을 강조 하는 것이다. P의 기사가 창조 과정에 초점을 두었다면, J기사는 인간에 그 초점 을 둔 것이다. P신학자에게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웠고 모든 창조계획이 하나 님의 뜻대로 진행되어 그 창조계획이 아무런 과오더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J의 창조세계에는 커다란 과오가 생기게 되었다. 실락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죽음과 생명이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죽음인 것이다. 야웨신학자의 실락원 이야기는 인간 실존의 문제이며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고대 근동의 창조신화 여기에는 창조설화가 이스라엘의 민족 역사의 첫번째 사건으로 해석되어 지는 것이다. 고대 근동 세계의 윤회적인 역사관과는 달리 이스라엘 창조 설화는 직선 적인 역사와 관련이 되어졌다는 것이다. 지혜문학과 창조 지혜문학의 신학적인 의미는 자연 현상 속에 나타난 창조의 신비 속에서 하나님 의 계시를 찾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지혜문학이 묘사하는 창주의 모습은 질서 정연한 대우주를 흠 없이 그리고 아름답게 창조하신 분임을 볼 수 있게된다. P신학에서는 구원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체험이 있은 다음 여기에다 창조 사건 을 결부시켰지만, 지혜문학에서는 그와는 정반대로 창조가 먼저 있고 그로부터 역사위에 하나님의 계시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찾아보는 것이다. 구약성서 속에서 처음 발견한 야웨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창조는 신앙의 조문(조문)이라고 한 앤더슨의 말대로 우주 창조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이 아니라 신앙고백에서 우러난 창조신앙인 것이다. 과거의 창조는 대자연이 신이 될 수 없고 하나님만이 대자연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며, 현 재의 창조는 하나님이 나의 생명의 창조자이시며 내가 처한 삶의 현장인 역사의 주체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이고, 미래의 창조는 현재의 역사가 끝나는 날 하나님 의 영원한 통치가 시작되는 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것을 믿는 것이다. 이 런 의미에서 우리는 구약의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임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2.족장들에게 주어진 약속 이스라엘의 선택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에 앞서 출애굽 사건을 역사화시켜 주신 구원의 주를 고백하였으며, 이같은 신앙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 함이 야웨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메소포타미아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심 을 받았다는 데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선조 족장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 성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예 배 공동체 스스로의 고백인 것이다. 원역사 원역사의 이야기는 인간이 왜 축복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가를 보여주즈는 것이 다. 원역사는 온 인류를 다 망라하지만 아브라함에게 와서는 하나님의 다루심이 한 인간에게 국한되는 것이다. 약속 야웨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큰 민족이 되리라고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땅의 모등 가족들에게 전하는데 있다. 이스라엘 족장 설화의 특징은 우주 창조와 관련된 신화적인 요소를 지니지 않은 것에서 볼 수 있다. 프리젠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혈연 관계는 물론이려니와 하나님과 맺은 계약 때문에 하나의 종교적 공동체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축복 고대 근동사회에서의 축복은 즉시로 나타나는 것이다. 구약 신학의 축복의 개념 은 다분히 물질적이다. 베스터만은 야웨 신학자의 축복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야웨 기자의 신학에서는 축복이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된 역사적 개념으로 바꾸어진다. 축복의 마술적인 성격이 약간 수정되어, 야웨가 그의 백성을 다루시는 역사의 일부가 된 것이다. 또한 수직적인 측면에서 복과 구원을 연결시키고 또 수평적인 측면에서 공동체의 건강과 평화를 모두 복의 범주로 이해한다. 약속의 지연 야웨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은 미래로 지연이 된다. 아브라함으로 하 여금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는 약속은 주어졌으나 그 약속은 주어졌으나 그 약속 이 곧 실현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실성에 의존하는 것이다. 야웨의 약속은 이스라엘 국가 가 망한 다음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침멀리는 이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 다. "구약성서의 야웨의 백성은 특별한 의미에서 희망의 백성이 된 것이다." 아브라함 신앙의 시련 아브라함은 드디어 지연된 약속에 대한 시련을 당하게 된다. 성서기자는 아브 라함을 신앙의 모범으로 그리고 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완전히 내어 놓는 다음에야 다시 후손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3.하나님의 이름 성명 철학 우리가 철해 있는 현 시점에서 구약을 보면서 우리는 구약의 하나님이 야웨이고 그분은 유일무이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 사람들도 사람의 이름이 그의 혼(혼)인 "네페쉬"와 같은 것이라고 보았 다. 고대 이스라엘의 이름이란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나 물건의 존재와 본질을 나타 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가시덤불 속의 하나님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는 구약성서 전체를 통해 계시되었다는 것이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가시덤불 속의 하나님 현현은 가시적인 놀라운 자연 현상보다는 대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야웨 신학자가 야웨 경배를 원역사에까지 소급시킨 것은 야웨가 온 인류의 하나 님이라는 신학적 보편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인 간의 창조주이시며 또 우주를 지으신 분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족장들의 하나님 이들 족장들의 하나님은 어느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부족을 보호하며 부족 의 책임자와 개인적인 관련을 맺은 신으로 이해되었다. 이같은 나그네들의 하나 님인 족장의 하나님 성격이 후일 야훼 신과의 동화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 족장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샤다이 신을 모시고 와서 가나안에 정착한 다음에는 가나안 신전의 최고 신 엘(El)과 샤다이가 합쳐져 엘 샤다이 신이 되었 다고 본다.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 야웨라는 이름이 갖는 두가지의 측면이 있다. 그것은 야웨라는 애매모호한 이름 은 하나님 자신의 일부를 가리우신다는 면과 또 하나는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한 다는 측면이 있다. 야웨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고유명사로서 그 하나님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야코브(Jacob)는 "나는 나다"라고 하는 야웨 이름의 뜻은 결국 야웨가 백성들과 함께 임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야웨의 이같은 임재 는 다른 우상의 무존재와 대립이 되며 야웨만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드라이네스(Dryness)는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셨다는 것이 첫째,하나님 은 어떤 물질적인 형태 없이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보여 주며, 둘째,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생활에 직접 관여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요약하 고 있다. 구약성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밝히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이름을 접근해 오며 상호 관계의 길을 수립할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성명 신학 차일즈는(Childs)는 역사의 현장에 자신을 계시한 이 사건은 신앙공동체로 하여 금 암흑 가운데서 미래로 도약할 것을 요구하는 대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끝까 지 계시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루둑의이름은 50가지인 비해 야웨의 이름은 단 하나이다. 바빌론 신의 정체는 알수 없기에 그 많은 이름을 불 러 보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 자신이 역사 속에 계심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상을 보고 명상하는 것은 예배자로 하여금 수동적인 영성의 즐거움에 도취하게 하며 사회적 책임을 등한히 하게 한다. 그러나 거기에 비해 야웨의 이름을 듣는다는 것은 삶 전체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미스코테 (Miskotte)는 고대 근동의 다른 신들은 모두 침목을 지키지만 야웨만이 역사의 현장 안에 그의 말씀을 선포한다고 말한다. 하늘 위에 계시는 그분은 오늘도 지 상에 있는 그의 이름을 통하여 그의 백성과 교재의 길을 터놓고 계신다. 4.바다에서의 구원 "내 백성을 보내라"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역상에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오경 뿐아니라 구약성서의 다른 부분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는 주제이다. 유리 바다 유리바다는 모세의 갈대 바다와 같은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물에거 구원을 받은 것처럼 드리스도인 역시 침례를 통해 물에서 구원받았고 이것이 곧 예수 그 리스도 붜부활의 의미와 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출애굽 전승의 발전 크라우스(Kraus)는 길갈에서 출애굽-정복 전승을 기리는 제의축제가 거행되었 다고 추측한다(수 3-4장). 이것은 법궤를 메고 요단강을 건너는 행군을 가짐으로 써 "갈대 바다"를 건너 이집트에서 나온 것을 다시금 회상하며 길갈 성소에서 계 약 갱신제도를 가졌다는 것이다. P신학자는 바다 사건을 이집트 구원의 중심에두 려고 애를 썼다. 그리하여 P는 고대 신화의 이미지와 요단강 도강의 영양을 받아 바다 구원 사건을 발전시키면서 여기에 유월절 주제와 연결을 지어놓은 것이다. P전승 이후인 역대기 사가 작품에서는 바다 사건이 출애굽 사건과 완전히 결합 되어 있다. 신화적인 요소의 가미는 순금에다 하금을 섞어 더 튼튼하게 만드는 것과도 같다고 할 것이다. 출애굽 사건의 역사성 출애굽 사거은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자신의 고백인 만큼 그 역사성에 대한 객관 적인 증빙 자료는 드물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 체류한 일에 대하여서는 이집트 자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 채류하다가 탈출했다는 자료는 없다. 히브리 사람들이 이집트에 체류했다는 간접적인 증거는 초기 이스라엘의 이름에 이집트식 이름이 많다는 것이다. 출애굽 전승의 새로운 의미 창조전승을 통한 신화적 요소는 야웨의 창조력을 엿보이게 하며 이스라엘의 바 다 구원 체험을 더 획기적인 사건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5.시내산 계시 그리스도인과 시내산 시내산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가 그 자신을 계시하신 곳이다. 신애산에서 자 신을 계시하긴 하나님은 곧 구약성서의 하나님이며 그 분은 이스라엘 벡성에게 하나님의 법을 주신 무서운 고의의 하나님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불트만은 구약성서는 어두움을 밝히는 촛불 역할을 했으나 신약의 예수 그리스 도는 태양과 같다고 말한다. 시내산 계시 모세가 전에 하나님 산에서 자기 혼자 체험한 바를 이제는 온 백성이 다 같이 체험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이 야웨의 계명을 준수 하기만 하면 이스라엘은 야 웨의 소유가 되며 뭇 민족들 가운데서 야웨을 섬기는 사제직을 맡게 되는 것이 다.여기에 이스라엘 선택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특권이 아닌 봉사를 위한 의무 인 것이다. 십계명의 기원과 배경 출애굽기 본문중의 십계명 기사는 시내산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사건과 또 그 하 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체결하신 사건 중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십계명에 대한 기원은 이스라엘 밖에서 찾는 것보다는 이스라엘 자체 내에서찾 아보려는 경향이 짙게 되었다. 십계명의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 역사중 그 어느 시기에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 지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한 다음 광야에서 새로운 생활 지 침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다분히 모세 자신갖는 하나님 이해에 따 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십계명 서론 십계명의 이 서론을 고대 조약의 역사적인 서언과 결부시키는 이들이 있다. 그 러나 역사적 서언이기에는 그것은 너무나도 짧은 것이다. 이 구절은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제 2계명에서는 이스라엘에서 우상을 만들 수 없다고 못박은 것은 하나님은 살 아계시는 분이시 때 정체적인 형상으로 제한시킬 수 없다고 본 데 있다. 이 스라엘이 알게 된 하나님은 인간 역사 속에 깊이 개입하시어 출애굽의 구원사건 을 이룩해 주신 분인데 그분을 어떻게 하늘, 땅, 지하세계 그 어느 피조물의 모 습으로도 나타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폰라드는 이스라엘이 이해하는 역사의 하 나님은 우상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즉 애매하며 변화성이 많은 역사속에서 이스라엘을 미래로 인도해 나가시는 하나님은 결코 고정된 형상 으로 제한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다. 해릴슨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 나님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제의의 어떤 것도 그분을 나타낼 수 없고 단지 살아 있는 인간만이 그를 대표할 수 있다고 본다 제 4계명에서는 하나님이 창조의 과업을 마치시고 쉬셨으니까 그의 백성도 그 날에는 쉴 특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날은 하나님이 하신 사업을 명상 하며 인간 삶의 의미를 반성해 보는 귀중한 때로 쓸 수가 있는 것이다. 다섯째 계명부터 열번째까지는 주로 사회 및 인간 가족 상호 관계를 규정짓는 것이다. 첫째에서 넷째를 신과 인간과의 수직적인 계명이라면, 다섯째에서 열번째까지는 평면적인 관계를 다루는 것이다. 한 사회가 노약자를 돌보아주듯이, 자녀들은 그 부모를 공경함으로써만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크리스토 프 바르트는 이 계명이 단순히 부모 공경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 는 이들, 즉 가난안 사람, 억압받는 자, 과부와 고아, 나그네까지 돌보라는 의미 로 확대 해석하여 이 계명은 그들을 단지 동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한 사 회 구성원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스라엘의 법 이해 이스라엘은 십계명을 윤리 행동 강령을 규정하는 도덕적인 법으로 이해하지 않 고, 이스라엘 역사의 한 특수 지점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기 위해 계시하신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폰라드는 십계명이란 야웨께 속한 사람 이 따라가야 할 넓은 삶의 자리에 서 있는 몇 개의 노정표들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한다. 토라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하는 하나님의 전체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도하며 이끌어나가기는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토라 는 결코 고정된 법전은 아니다. 시대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하님의 백성을 대 하는 것은 달라질 수가 있다.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그들 을 어떻게 인도하시느냐 하는 것이 곧 토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폰라드 는 토라의 삶을 정황(Sitz im Leben)은 고정된 제의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구약성서에서 계약을 맺는다는 표현은 "계약을 자르다"로 나타내고 있다. 히브 리어의 berith는 아카지안어의 biritu(쇠고랑)에서 왔다고 본다. 계약을 맺는다 는 것은 쇠고랑을 함께 참으로서 계약 당사자간에 대한 의무를 설명하는 것이다. 시내 전승과 출애굽 전승 시내산 계시를 살펴 보면서 한가지 느끼는 것은 구약의 하나님 법이란 것을 이 스라엘의 구체적 공동체의 계약적 삶과 구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동안 그리스도인이 신약적 견지에서 구약의 법만 보고 그 법의 구체적 시혜의 대상자 인 이스라엘 공동체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구약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법이라고 오해를 했던 것이다. 시내산의 법은 이스라엘의 야웨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선민으로삼고 그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주신 사랑의 선물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은 그들의 신앙으로 이 법을 받고 계약관계를 수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이 진노하는 하나님이며 또 공의로운 하나님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이스라엘 예배 공동체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체험을 텅해 이집트 의 종살이에서 구원해 주신 다음에 그들에게 법을 주신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고 백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6.광야의 기적 광야의 랑데뷰 야웨가 이스라엘을 처음 만난 곳은 시내 사막이다. 야웨와 이스라엘과의 광야 에서의 랑데뷰는 광야가 그들이 처음 만났던 곳이며 그들의 사랑이 처음 싹텄던 곳이다. 광야에서의 불평 우리는 광야가 갖는 신학적인 의미를 두 가지 측면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하나 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광야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했던 불평의 장소라는 측면이고, 또 하나는 근정적인 측면에서 사람이 못 사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40 년간을 지탱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새롭게 꺼닫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광야에서의 기적 이스라엘의 야웨 하나님은 광야에서 그들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셨다. 만나 기사는 결국 하나의 자연적인 사건을 야웨의 일상적인 돌보심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스마트(Smart)는 "그것들은 자연적인 사건이며 또 동시에 초자연적 사건이지만 자연적 역사 환경이나 결과에서 결코 분리된 것은 아니다" 하고 말한다. 광야의 기적은 인간은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앤더슨(Anderson)은 신앙인은 하나님이 직접 임재하는 표시를 찾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만나 기사 같은 것도 실상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자연적 인 현상일지라도 그성을 신앙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하나님 임재의 표시로 받아 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광야의 의미 탈몬은 이 광야 모티프를 새롭게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이 농경 문화권 속에 각 종 위험과 유혹의 시련을 당하는 그 삶의 현장, 즉 실존적인 삶의 정황에 하나님 은 농경 문화의 자연의 신이 아닌 역사적 신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광야 체험은 그들 매일매일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성에 부딪쳐 온 것이다. 그들은 가나안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광야를 거쳐야 했으며, 이곳은 그들에 게 많은 깨우침을 준 곳이다. 브루거만은 그리스도교인의 생활 역시 거짓된 이집 트의 안전을 버리고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위험천만한 광야의 삶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버리고 가나안 복지의 참 자유를 얻는 길인 것이다.
구약신학/ 사도행전
구약신학/ 사도행전 현대신학의 끝없는 유행을 따라가는 것은 비경제적이다. 우리는 구약 신학 시간이지만 사도행전, 갈라디아서를 선택하여 취급하고자 한다. 이것은 흔히 성경신학적이라고 하는 방법이다. 교의학의 특징은 - 성경신학과 대조되는 입장에서 - 성경의 진리가 가지고 있는 논리의 체계이다. 반면 성경신학은 성경의 역사성을 중시 하는 신학이다. 역사성이란 예전부터 있어 왔다. 종교개혁까지는 이 의 미가 단순했으나 요즘에는 이 역사적이란 말이 다양해졌다. 심지어 자 유주의자들도 스스로 역사적-문법적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18세기 계몽 주의 이후 19세기 역사주의의 등장과 함께 역사 비평학이 발생하였다. 20세기초반 Barth에 와서 일종의 타협을 볼 때까지 이 방법은 맹위를 떨쳤다. Trelther가 가장 유명한 대표자이다. 그에 의하면 초자연적인 것들은 역사를 떠나서 되었다. 그래서 성경 자체가 말하는 역사와 학자 들의 역사는 전혀 다른 것이되어 버렸다. 1학년 때 배운 내용과 이 과목과의 가교를 좀 세우자. 종래에는 단순 하던 역사개념이 지금은 얼마나 복잡해졌는가? 역사의 장이 무엇인가? 역사의 시공성 : 시공은 하나님이 창조한 땅의 질서의 독특한 실제 영 역이다. 럿셀이 질문한 것처럼 공간이 Nothing이냐, 아니면 어떤 용기 냐? 어떤 용기이다. 또 시간성은 낮과 밤, 계절들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의 영역은 두 가지이다. 하늘과 땅. 여기서 하늘은 물리적 공간 이 아니다. 땅과는 다른 영역이다. 하늘 영역도 피조된 것이다. 골 1:16 그런데 이 두 영역은 구분되기는 하나 단절되어 있는 것은 아니 다. 오히려 땅의 영역은 하늘에 지배된다. 주기도문에 나타난대로, 천 사의 회의(욥 1장, 미가야). 인간의 눈에는 영이 안 보인다. 그러나 하 나님께서 원하시면 이 장벽은 허물어진다. 천사를 보내어 체험의 형태 로 감각하게 한다. 계시도 주신다. 보통 역사라 할 때는 이 땅의 영역 에서 일어나는 것을 총칭하여 말한다. 두 영역 중에 더 실제의 영역은 하늘의 영역이나 성경은 이 땅의 사 건들에 아주 관심이 많다. 롬 5:8. 여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혹자는 이 두 영역이 근본적으로 단절되어 있고 역사에는 천사 등이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역사의 주체는 누구냐? 이는 두 실제의 영역과 관계 깊다. 대개는 가 시적 영역을 보며 인간을 역사 주체로 본다. 그러나 성경은 역사를 하 나님의 말씀 실현의 장으로 본다. 이것이 예정교리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그의 뜻대로 원하시는대로 역사하시는 분이 다. 그러면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것은 오랜 질문이다. 인간은 로 보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택의 자유\'와 \'선택의 능력\'은 다른 말로 취급된다. 인간에게 선 택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범죄는 강요와는 다른 것이다. 필연성은 없 으나 자발적 선택으로 범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 간의 의지의 관계는 신비이다. 한마디로 모른다.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인간은 제한되기는 했으나 자유 로운 역사의 주체이기도 하다. 칼빈이 예정교리를 말하며 한 동일한 행 동 안에 하나님과 인간과 사탄이 같이 역사한다고 했다. 이 둘을 나눠 버릴 때 자연신론이 되어 버린다. 변증법 신학도 이 틀을 벗어나지 못 한다. 실존주의는 인간을 던져진 존재로 본다. 역사와 그리스도 / 성경은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이 성경 이 그리스도 증언의 책이라고 하셨다(요 5:39). 이 의미는 전 역사는 그리스도에 집결된다는 것이다. 신구약의 관계 / 가장 중요한, 가장 논란이 많은 문제이다. 사도행전 에서 베드로 설교, 스데반 설교, 바울 설교 등의 공통점이 유대인을 대 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구약 언약 백성에게 설교했다는 것 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한 사도가 언약 백성에게 설교하는 것에 서 신구약의 관계를 잘 알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오늘은 딤전 1장을 좀 취급하고자 한다. 우리가 구약성경에서 찾아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1:4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무익한 사변을 제시할 뿐인 자로 말한 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 한 것은 경계하기 위함인데 그 대상은 첫째로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것, 즉 이단이다. 는 와 를 다 꾸밀 수 있다. 이 둘은| | 한 의미를 나 타낼 수 있다. 즉 족보와 신화는 족보의 신화라는 의미이다. 는 스토리, 우화, 동화, 전설, 신화 등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다. 12절 이하는 11절까지를 뒷받침하기 위한 바울의 개인 체험이므로 3-11의 내용이 핵심이다. 3-11은 잘못된 교훈에 대한 경계이다. 누가복음에 예수님께 질문했던 한 율법사는 서기관과 비슷했다. 서기관은 대개 바리새파로써 당시 독특한 계급을 형성하는 성경학자였다. 물론 성경 외의 문헌은 완전히 의지할 수 없다. 어릴 때 에 입문하여 40세에 안수받는다. 기능상 오늘날 목사와 매우 비슷함.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사례를 받지 말고 직업을 가지도록 되어있다. 바울 사도도 장막 만드는 업을 가졌는데 바 로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율법사는 그 당시 굉장한 존경 을 받았다. 사도행전에서 가말리엘을 율법사라고 부른다. 율법사는 서 기관보다 더 높은, 랍비 중의 랍비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사변으로 흐르는 것은 율법의 선생이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바울이 한때 였다고 하는 사실이다. 12절에서 그의 경험을 말하면서 그가 11절까지 관심의 대상 이 율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율법은 좁게는 계명, 넓게는 구약 전 체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관심의 대상은 구약성경, 구약역사까지이다. 다시말하면 \'구약의 바른 의미가 무엇인가\'이다. 그러면 여기 족보에 관한 신화가 무엇을 가리키는가? 초대 교부 때부 터 이견이 있어 왔다. 특히 이레니우스 터툴리안은 이것이 영지주의적 이단을 염두에 두고한 말씀이라고 주장하여 왔다. 영지주의의 세계관 의 특징은 근본적으로 이원론이다. 실제영역, 물질계 영역, 이들은 신 개념에서도 이원 론을 주장한다. 참 하나님과 창조신, 아이온 중 최고의 아이온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에 속하므로 악한 물질을 입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가현설을 주장한다. 우주생성 신화는 노스틱 가르침일 것이다. 이 노스틱은 혼합주의적이고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대표자는 시몬 마구스(사 도행전에서 베드로에게 책망을 들은 자)이다. 그는 음양 이론자이다. 니골라(계)당도 이런 류의 하나이다. 이들은 육신을 학대하는 반율법 주의자들이며 문란했다. 어떤 노스틱 자는 엄격하나 금욕주의이며 혹자 는 문란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본문이 bifocal이 되어 버린다. 문맥 에서 전체는 구약 역사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신화와 족보가 구약에 대해서 유대적 랍비들의 배경을 가진다고 주장하는 자는 암브로시우스 이다. 그는 구약 역사에 대한 번잡한 해석을 염두에 두고 있다. 구약은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는 복잡한 생성과정을 유추해 내는 태도를 말하 고 있다. 어쨌던 문맥 속의 이단은 노스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4절 은 무엇을 말하는가? 신화와 족보에 참여하면 하나님의 경륜을 제시하 지 못한다는 것이다. 본질을 두고 맞지않는 시각을 추구하는 태도를 가 리켜 라고 한다. 는 \'무익한 사변\'이라고 번역함 이 적합하다.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추구하기보다는\"에서 우리가 구약에서 참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임을 알 수 있는데 그것 은 하나님의 경륜이다. \" \"의 뜻은 무엇인가? 상당히 애매하다. D사본(베자사본:칼빈 제자인 베자가 소유했다가 기증한 것)에는 가 라고 되어 있다. 이러면 믿음 안에서 세우는 건덕 정도로 해석된다(칼빈 주 석에서 를 사용한다). 그러나 대부분 학자는 그대로 를 받는다. 는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잘 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경륜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경륜은 \'그 시행\'이란 뜻을 포함한다. 그 시행은 또한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할 때 창세로부터 비밀었는데 지금 계시된 것이 다. 그것은 바로 복음, 그리스도이다. 이것은 지난 2년간 강의해 온 바 성경 곳곳에서 암시하는 것들에 대한 결론이다. 4절에서 신화, 족보에 대한 착념은 이런 하나님의 경륜을 제시하지 못하고 무익하다고 말하고 있다. (5,6절)경계의 목적은 이런 것인데 벗 어나서 쓸데없는 것들에 떨어졌다. (7절)그 원인은 자기가 말하는 것도 모르면서 율법 선생이 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 을 암시하고 있다. 율법의 학자가 되려고하면 하나님의 목적을 제시하 기 보다 말장난을 하는 것으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 우리가 성경에 어 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율법의 선생이 되려고 하는 동기가 그렇게 단순치는 않다. (5절)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사랑과 상치된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7절에서는 율법은 의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12절 이하에서 한 때 바울 자신이 큰 죄인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았음을 말하 고 있다. 율법주의가 얼마나 무익한가를 말하고 있다.
구약신학의 새 지평과 상생의 실천 (1)
구약신학의 새 지평과 상생의 실천 (1) 1. 들어가는 말 본 논문/1/은 구약성서 창세기 16장의 "하갈과 사래" 이야기에 대한 한 해석이다. 성격상, 또는 방법론적으로 본 논문의 목적은 "정신적 분단상황" /2/이라고 불리우는, 오늘 우리 한반도 정황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구약신 학적 치유의 가능성을 점치는데 있다. 본 논문은 엄밀히 말해서 신구약성서 의 증언에서 상생(상생)과 화해, 정의와 평등, 구속과 해방이라는 주제의 정당성(validity)을 찾고, 그것이 21세기를 10 년도 채 못남기고 있는 오늘 우리들에게 얼마나 보편타당한 메시지가 될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긴 작업 (신학/해석학)에 대한 서론(prolegomena)일 뿐이다. 필자를 비롯해서 오늘 이 땅의 신학도가 "신학하는 자리"(locus theologicus)는 남과 북이, 진보와 보수가, 아시아인의 심성과 서구 과학 기술지배의 이데올로기가, 가난과 부가, 이질적인 종파와 종파가, 서로 다 른 모습의 교회와 교회가 함께 공존, 서로 대립, 갈등, 긴장을 불러 일으키 고 있는 "분단의 상황"이다. 필자는 오늘의 한반도에 사는 우리가 목도하고 체험하는 이 갈등과 대립의 정황을 아픔이 아닌 신학적 과제로 품으려고 한 다. 갈등과 대립이라는 상극(상극)적 대립을 넘어서는 성서적 신학의 증언 을 구약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또는 주제)의 영역으로 열어보고자 하는 것 이다. 본 논문은 구약신학의 사적 고찰(history of research)에 그 목적이 있지 않다./3/ 구약신학의 방법론에 관한 논의도 본 논문의 중심과제가 아니 다./4/ 본 논문은 구약신학의 본질/내용으로서 "상생의 실천"/5/이라는 주 제를 다루어 보고자 하는 한 서론적 시도이다. 창 16장의 주석은 이러한 목 적에 종사하고 있다. 2. 창 16장 개관 : 두 여인이 꾸미는 이야기 창 16장/6/은 본문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양식/형식과 내용/주제의 전개에 서 크게 두 개의 단락(Unit)으로 나뉘어진다. 편집자의 설명이라고 여겨지 는 vv.1,15 - 16과 본론으로 여겨지는 하갈 이야기(vv.2 - 14)가 그것이다. 이때 하갈 이야기는 그 주제의 전개에서 다시 두 개의 소단락으로 나뉘어 지게 된다. 즉 창 16장은 편집자가 밝히는 한 짤막한 서설(v.1)(서설 :exposition)로 시작되어 두 개의 에피소우드로 짜여진 하갈 이야기 (vv.2-6,7- 14)로 이어진 후, 에필로그(epilogue)인 편집자의 서술 (vv.15-16)로 마감하는 구조를 지닌다. 하갈의 이야기 자체는 사래에 맞선 사래의 몸종 하갈에 관한 설화 (vv.2-6)로 시작된다. 이 설화는 가나안 땅 아브람의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래와 하갈의 갈등이야기이다. 이 갈등 이야기가 사래를 피해 도망가는, 가나안 땅 아브람의 집을 탈출하는 하갈의 엑소도스(vv.7-14)라는 또 하나 의 이야기로 발전한다. 여러 성서학자들의 창 16장 읽기도 이러한 구조를 소개하고 있다. 즉 첫 번째 단락(vv.2 - 16)은 여주인 사래에 의해서 압박받는 몸종(sipha) 하갈 의 고통을, 그리고 두번째 단락(vv.7-14)은 압제 당하고 있는 하갈에게 아 들의 탄생을 예고해 주는 야웨 하나님의 연민을 말하고 있다고 본다./7/ 하 갈은 사래의 집을 뛰쳐 나왔지만, 그녀는 광야에서 "하갈"이라는 자신의 이 름을 불러주는 야웨의 사자를 만났으며, 자신에게 어머니가 됨(motherhood) 을 약속해 주는 야웨 사자의 은총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몸종을 둘러싸고 여주인인 사래가 저지르는 횡포에 하갈이 도망 가게 되었지만, 야웨의 사자가 이를 가로막고 그녀를 다시 사래의 속박 (bondage)의 품으로 되돌아 가게 하신다는 창 16장 이야기의 대단원이 드러 난다. 이때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의 주인공 하갈이 이집트 여인(misrit)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에 맞선 또 하나의 인 물은 바로 이스라엘 여인이라는 점이다. 이들 여인들--이집트인과 이스라엘인--사이의 갈등이 가나안 땅에서 벌어 진다(vv.2-6). 이집트 여인이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여인 사래에게 박해 를 받는다. 하갈은 박해를 못 이겨서 광야로 뛰쳐 나간다. 이 광야란 수르 (sur, v. 7b) 곧 가나안과 이집트 사이에 놓여있는 거친 땅이다. 이것은 하 갈의 탈출이 가나안 땅에서 남쪽으로 가는 길로 접어 들어섰음을 시사한다. 그녀는 박해를 못견뎌 고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광야 길에서 이집트인 하갈은 야웨의 사자(mal'ak yhwh, v.7a)를 만난 다./8/ 아니 야웨의 사자에 의해서 발길이 붙잡힌다(v.7). 이 이야기의 한 복판에 하갈에게 질문하시는, 명령하시는, 그리고 약속하시는 야웨의 음성 이 있다(vv.8-12). 하갈은 이에 답한다(v.13). 하갈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 이 난다. 그 다음은 추가적인 설명이다. 하갈이 야웨의 사자를 만난 곳을 "브엘라해로이"(be'er lahay roi, v. 14a)라 부르고, 수르 광야의 어느 샘이 왜 "브엘라해로이"라 불리우게 되었 는지를 밝히는 원인론적(aetiological)인 설명이 첨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v. 14)만으로는 하갈이 야웨의 명령(v.9)을 따랐는지를 알기가 어렵 다. 그러기에 성서 본문의 최종편집자는 여기에 에필로그(epilogue)를 붙이 게 된다. 그러므로 이 에필로그(vv.15-16)를 편집자(P)가 족보를 전하는 형식을 따 라서 이야기를 마감했다거나,/9/ 이스마엘 탄생을 보도하는 후기(후기) 나,/10/ 가부장적 색채로 채색된 하갈 이야기의 편집적 후기(후기)/11/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이 귀절은 하갈이 광야로 도망가다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 왔음을 암시한다. 즉 고향 이집트를 향해 가는 이집트인의 탈출기가 억압의 장소 가나안 땅 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음을 독자들로 하여금 추측케 한다. 가나안 땅에서 수르 광야로, 수르 광야에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걸어가야만 했던 하갈! 다 시말해 본문을 지배하고 있는 설화를 사건 현장(topos)을 중심으로 재구성 할 때, 하갈의 엑소도스는 가나안 땅에서의 사건(vv.2-6), 이집트로 가는 길(수르)에서 생긴 사건(vv.7-14), 그리고 다시 가나안 땅에서 일어난 일 (vv.15-16)이라는 구조를 지닌다. 이 구조 속에 가나안 땅에서 발생한 이스라엘 여인(사래)과 이집트 여인 (하갈) 사이의 갈등 이야기가, 그리고 수르 광야에서 생긴 이집트 여인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 사이의 만남이 소개된다. 그리고 "이스마엘 탄생 보도"라는 형식의 에필로그로 하갈이 다시 가나안 땅에 돌아와 살게 되었음 을 시사한다. 이때 에필로그는 이야기의 서막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 다. 즉 v.15a("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았다")는 서술은 v.2a에 실린 사래 의 항변("야웨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과 대조를 이룬다. v.2a의 사래는 야웨의 이름을 들먹이면서도 야웨의 뜻에 복종하기를 거부하 는 이스라엘 여인이다. 그러나 v.15a의 하갈은 지금까지 야웨를 몰랐지만, 한 번 그분을 만난 이후로 그분의 뜻에 자신를 복종시켜 가나안 땅에 돌아 가 아브람의 아들을 낳고 있는 여인이다. 미완성으로 그친 이집트 여인 하갈의 가나안 땅 엑소도스, 아니 사래의 집을 뛰쳐 나온 하갈로 다시 사래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하갈의 방랑--바 로 이 이야기의 한 복판에 "아기를 배지 못하는 여인"(창 16장의 경우 그녀 는 이스라엘의 여인 사래이다)과 "아기를 쑥쑥 잘 낳는 여인"(창 16장에서 는 이집트 여인 하갈이 여기에 속한다) 사이의 대립과 긴장이 펼쳐지고 있 는 것이다. 3. 창 16장의 전통적 해석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창 16장의 하갈의 이야기를 고대 근동지방의 관습과 법령이라는 배경에서 읽어왔다./12/ 사래가 몸종 하갈을 남편의 아이를 낳 아줄 여인으로 아브람에게 내어준 행위는 고대 함무라비 법전(the Code of Hammurabi)이나 또는 누지 문헌(Nuzi Texts)에 기록되어 있는 주전 2000-1500년경의 고대 중동지방의 풍속이라는 것이다./13/ 이러한 시각에서 는 창 16장에 묘사된 이야기란 창세기 아브라함 전승의 역사성 (historicity)을 반영하는 자료로 이해하게 된다. 이와는 달리 창 16장의 하갈 이야기를 이스마엘 족속(Ishmaelites)의 기 원을 밝히는, 한 부족의 기원을 규명하는 사담(사담 : aetiological tribal story)으로 이해코자 하는 시도가 있어 왔다./14/ 이런 유형론적인 시각이 관심하는 것은 창 16장 본문의 말미에 등장하는 이스마엘 탄생 예고에 관한 기사(창 16: 13-14)이다. 하지만 하갈 이야기 전체를 하나의 기원론 (aetiology)으로만 단정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창 16장 전부가 부족의 기원 을 밝히는 원인론적인 설화가 아니라, 창 16장의 이야기 속에 하나의 원인 론적인 기사가 부록처럼 첨가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용상으로 볼 때, 우리들의 본문은 사래와 하갈이라는 두 여인이 서로 대립하면서 꾸미는 이야기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래와 하갈의 대립 에서, 족장 설화를 비롯한 구약성서 여기저기에 수록된 여인들 사이의 대 립, 즉 "아기를 배지 못하는 여인"(infertile woman)과 "아기를 쑥쑥 잘 낳 는 여인"(fertile woman)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읽어왔다./15/ 이때 부각되 는 주제는 전자에 속하는 어떤 여인이 후자에 속한 여인으로부터 당하는 설 움과 한(한)이다. 이런 시각에서 사래는 지금까지 성서 독자들의 동정과 위 로를 받아왔다. 신학적으로 말할 때에 지금까지의 창 16장 해석은 크게 두 개의 흐름으로 양분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구속사 신학"의 입장에서 풀이한 창 16장의 케리그마요, 다른 하나는 "여성 신학"의 관점에서 서술한 창 16 장의 재해석이다. 우선 구속사 신학의 맥락에서 본문을 대해 왔던 학자들 은 창 16장에서 읽어야 될 성서 편집자의 의도가 "약속 성취의 지연"에 있 다고 보아 왔다./16/ 즉 아브람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되리라고 약속하신 야웨 하나님의 언약 (창 12:1-3)이 왜 그가 가나안 땅에 거한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이루어지 지 않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면 서도 정작 사래의 태를 닫아 놓으신(창 16:2) 하나님 역사(역사)의 파라독 스! 본문은 이러한 역설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동 참하는 자들에게 "기다림의 신앙"을 역설코자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구속사 신학의 맥락에서 창 16장을 대할 때 가장 크게 문제시 되었던 것--그것은 사래의 태가 닫혀 있었다는 본문의 증언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비교 창 15:4)는 어떤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여 기에서 약속의 성취가 지연되자 인간적인 대안(human alternative)으로 하 나님의 약속에 맞서려 했던 인간 아브람의 태도가 본문해석의 대상이 된 다./17/ 다시 말해 창 16장의 성서기자는 은총에 의한 삶을 살아야 될 자들 에게 있을 유혹--인간의 의도, 계획, 관습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보 려는--에 대한 어떤 경고를 하고 있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람과 사래에게는 긍정(yes)이었을런지 모르지만 하나님에게는 부정(no)이 된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 에서 부루기만(W. Brueggemann)은 창 16장이 약속/은총의 아들 이삭의 탄생 과 인간의지/율법의 아들 이스마엘의 탄생이라는 두 개의 신앙 유형(type) 을 전하는 텍스트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것은 창 16장의 읽기에서 갈 4:21-31의 사도 바울의 음성을 들으려는 시도와 무관하지 않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스마엘은 은총이 아닌 율법, 하 나님의 섭리가 아닌 인간의 필요, 하나님의 자유가 아닌 인간의 강제에 불 과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만약 하갈/이스마엘과 사래/이삭의 대립이 라는 두 개의 신학적 모형이 성립된다면, 율법의 자식 대(대) 은총의 자녀 라는 이분법적 대립 구조에서 하갈은 여전히 버려져야 될 은총 밖의 여인일 뿐이다./18/ 하지만 최근에 등장한 여성신학의 창 16장 읽기는 이와는 다르게 오늘의 본문 창 16장이 박해자의 관점에서 씌여졌음을 파헤치고자 한다. 즉 하갈 을, 이용당하고, 학대받고, 쫓겨난 경험을 한 성서 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인으로 보고자 한다. 이를테면 트리블(Phyllis Trible)은 창 16장이 묘사 하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인 사이의 대결이라는 설화상의 구조에서, 이 두 여인이 서로 같지 않은 처지의 여인임을 읽는 데에 주안점을 둔 다./19/ 전자는 학대자요 후자는 박해받는 자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다. 이때 하갈이 당하는 학대란 바로 가부장적 제도(patriarchy)에서 당하게 되었던 한 여인의 고난이다. 하갈은 가부장적 사회 제도에 희생당한 희생물이며, 성서본문의 편집자에게는 바로 이런 희생자를 고발하는 시각이 있다는 것이 다. 사실 창 16장 본문은 아브람이라는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인의 이야기 라는 형식을 지니고 있다./20/ 여기에서 한편은 자유인이요 결혼한 여인이며, 부유한 이스라엘의 주부인 사래요, 다른 한편은 노예이자 가난한 여인이며, 자신의 성(성)에 대해서 아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이집트 족속의 딸 하갈이다. 이러한 두 여인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대립 관계를 본문의 해석에서 재구성해 낼 수 있 다. 이때 16:2a의 본문, "야웨께서 내 자녀의 생산을 막으셨으니 나의 여종에 게 들어가라"/21/는, 사래가 아브람에게 내뱉는 명령은 자신의 불임(불임) 을 "야웨가 하신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야웨에 맞서서 자기 자식을 만들 어 보고자 하는 사래의 당돌함을 고발하고 있는 표현이다. 사래의 생각이 당대의 관습을 따른 것이냐 아니냐하는 질문은 본문이 제기하는 문제의 촛 점이 아니다.
구약신학의 새 지평과 상생의 실천 (2)
구약신학의 새 지평과 상생의 실천 (2) 본문의 촛점은 사래의 당당함! 힘있는 여인의 모습이다. 이 힘있는 여인 사래의 계획이 "내가 혹시 그녀(하갈)로 인하여 (나의 모자람을) 세우게 될 까 하노라"(I shall be built up from her; bo-na' el-siphati 'ulay 'ibaneh mimenna)는 말로 보충되고 있다는 것(16:2a 후반부)/22/은 하갈을 이용하여 자기의 모자람을, 부족함을, 여가장(여가장,matriarch)으로서의 체면을 채우겠다는 사래의 당찬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사래의 명령에 하 갈은 도구로 이용된다. 주인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아니 주인의 체면을 세 워주는 도구로 이용된다. 하갈은 여성이었지만 자신의 성(성,sexuality)에 대해서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다. 본문의 서론에서 보였던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인 사 이의 대조가 노예를 이용하는 주인의 이야기로, 힘없는 자를 학대하는 힘있 는 자의 이야기로 발전한다. 여성신학의 성서읽기라는 관점에서 본문을 들 여다 볼 때 오늘의 본문에서 문제시되는 것--그것은 하갈이 부와 지위와 처 지에서 힘없는 여인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의 본문에서 하갈은 힘없는 여인에서 이용당하는 여인으로, 이용당하 는 여인에서 고통당하는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녀가 자신이 속한 사회 구조에, 그 구조의 힘의 윤리에 순응했다는 것 밖 에 없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본문 16:7-14을 읽을 때, 사래의 집을 뛰쳐 나가는 하갈의 엑소도스는 주어진 사회에서 약자이기에 천대받는 사람들의 원통함을 고발하는 메시지가 된다. 그리고 그같은 하갈의 엑소도스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연민에서, 본문은 억울한 민중들의 하소연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증언하는 메시지가 된다. 그 렇지만 창 16장의 본문의 구성이 박해에서 도망으로, 도망에서 다시 박해로 되돌아오는 순환의 모습을 띄고 있다는 트리블의 지적/23/은 창 16장의 본 문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쩔 수 없이 가부장적 사회 제도에 의해서 여전히 조종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선에서 머물고 있다. "사래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서 고통을 받을 것"(16:9)을 명령하시는 야웨의 사자의 목소리나, 여인이 난 자식이건만 모성(motherhood)을 밝히기 보다는 부성(fatherhood)을 밝히는 것에 충실한 편집적 추가문(vv.15-16)의 결론이 그같은 트리블의 불평을 타당한 것으로 여기게끔 만든다. 하갈은 가 부장적 사회제도에 의해서 희생당한 희생양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창 16장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설 득력과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의 질문이 있다. 과연 창 16장 의 하갈이야기가 아브라함 설화의 역사성 만을 전하는 것일까? 왜 이스마엘 족속이란 공동체가 역사 속에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밝히고자 씌여진 설화로 만 보아야 할까? 아기 못 낳는 여인 사래를 멸시하는 하갈의 방자함을, 그 러기에 아기를 잉태한 몸종에 의해서 겪게 되는 사래의 고뇌와 수모를 전하 고 있는 것일까? 기다림이라는 주제는, 그리고 그 기다림의 성취라는 주제 는 구약신학의 중심사조를 형성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창 16장의 이야기가 기다릴 수 없는 상황에서라도 이를 악물 고 기다릴 것을 권고하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파라독스를 전하는 것일 까? 그럴 경우 창 16장의 주인공은 아브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창 16장이 비록 아브라함 설화군(군)에 있지만, 창 16장의 이야기 그 자체의 주인공은 하갈이라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즉 하갈이라는 여인은 실상 기다림의 약속과는 전혀 무관한 여인이다. 그렇다면 창 16장의 이야기의 핵심에 아브람이 아닌 하갈이 놓여지고 있 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성서 편집자의 목소리는 어떤 것일까? 여성 신학의 창 16장 읽기가 본문 해석의 지평을 아브람이 아닌 하갈로 옮 겨놓고 있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그러나 과연 창 16장의 본문이 힘있는 여인과 힘없는 여인, 박해하는 사람과 박해받는 사람 사이의 대결 구도만을 전하고 있는가? 흥미로운 것은 구속사적 신학의 창 16장 읽기가 사래의 불 임(또는 사래의 불임으로 상징되는 선민 아브람의 고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면, 여성신학의 창 16장 읽기는 하갈의 고통(또는 하갈의 억압받음으 로 상징되는 힘없는 자의 고난)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가 사래의 아픔을 해석의 주제로 삼고 있다면 후자는 하갈의 아픔을 해석의 모티브로 삼고 있다. 즉 관점은 다르다 해도 창 16장의 구속사적 해 석이나 여성신학적 해석 모두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계층, 집단, 인간들 사 이에서 어느 한 계층만의 구속과 해방을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 다. 구속사적 관점이 아브람과 사래의 측면, 즉 갈등을 일으키는 편에 서서 본문을 읽어간 패러다임이라면, 여성신학적 관점은 하갈의 측면, 즉 갈등을 당하는 자의 편에 서서 본문을 읽어간 패러다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때 구속사적 패러다임의 극단이 이중예정론적 사조로 발전되어 갔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구속사가 이스라엘 편에서는 구속이지만, 가나안/애굽인들 에게는 억압이 될 수 있는 문제를 야기시켜 놓고 말았다면, 여성신학적 패 러다임은 이러한 구속사적 일변도의 성서해석에서 억압당하고 있었던 자들 에게도 하나님 사랑의 보편성이 역사(역사)했었음을 들추어 내고 있는 강점 을 보인다. 그러나 여성신학적 성서해석에서도 역시 어느 한쪽 편 만의 해방을 추구 하고 있는 듯한 성서해석의 당파성을 보인다. 여기에 우리의 질문이 있다. 창 16장이 사래만의 이야기가 아닌, 하갈만의 이야기도 아닌, 사래와 하갈 을 모두 이야기의 주제로 삼는 이야기일 수는 없는 것일까? 4. 창 16:1-16의 주석/24/--하갈과 사래의 상생(상생) A. 우선 가나안 땅 아브람의 집에서 일고 있는 사래와 하갈의 갈등 이야 기(vv.2- 6)를 살펴보자. 본문은 사래의 짓거리(vv. 2-4a)와 이의 결과로 일어나는 탄원(vv.4b-6)으로 구성된다. 사래의 짓거리, 하갈의 몸놀림이 본 문 전면에 부각되는 반면, 아브람의 태도와 말은 퍽이나 수동적이다. 본문 전면에 부각되는 것은 사래의 궁리(v.2)와 사래의 행동(vv.3-4a)이며, 이런 사래의 동작의 결과 야기된 하갈의 몸짓(v.4b)과 그에 대한 사래의 탄원 (vv.5-6)이 다음으로 부각된다. 본문은 궁리(a) - 행동(b) - 몸짓(b') - 탄원(a')으로, 즉 각 소단락이 교차대귀적(chiasmus :a-b-b'-a')으로 연결되며, 이경우 "궁리와 행동" (vv.2-4a)은 "몸짓과 탄원"(vv.4b-6)을 유발시킨 원인을 제공한다. 특이한 것은 사래의 말과 탄원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이 대단히 수동적이라는 점이 다. 이같은 수동적인 아브람의 반응 속에 하갈이 당하게 된 일의 결과 - 하 갈의 임신(v.4a)과 하갈의 박대(v.6b) -가 삽입되어 있다. 첫번째 단락 (vv.2-4a)에서 사래는 명령(v.2b)하고 아브람은 듣는다(v.2a). 그녀는 하갈을 집어서(v.3a, laqah) 남편에게 준다(v.3b). 그랬더니 아브 람은 하갈과 성관계를 갖는다. 그러자 하갈이 임신한다(v.4a). 본문에서의 말과 행동의 전개가 아주 신속히 움직이고 있음에 주목하라. 두번째 단락 (vv.4b-6)은 하갈의 몸짓으로 시작한다(v.4b). 하갈의 몸짓은 곧 사래의 탄 원(complaint, "당신과 나 사이에 야웨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는 표현 은 곧 재판정에서 피고가 탄원하는 양식이다!)으로 이어진다(vv.5-6). 이에 아브람은 또 다시 피동적이다(v.6a). 그 결과 하갈은 박해받다가 그만 사래의 낯을 피해 도망가고 만다(v. 6b). 본문의 구조에서 놓쳐서는 안될 요점 - 그것은 전반부에서는 사래의 동작이 하갈의 임신으로 끝나고, 후반부에서는 사래의 탄원이 하갈의 박해 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오늘의 본문의 각 단락 말미에는 짤막한, 그러나 아주 강력한 진술이 있다. 하갈이 임신하였다(v. 4a). 그리고 하갈 이 도망갔다(v. 6b). 사래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벌어지는 하갈의 임신과 도망! 이때 사래는 이 모든 장면의 주체이며, 하갈은 객체일 뿐이다. 음모하고 박해하는 자는 사래 - 그녀는 이스라엘의 조상이다 - 이며, 임 신당하고 도망가는 자는 하갈 곧 이집트의 딸이다. 사려깊은 독자라면 이 이야기가 출 1장 이하에 소개된 이스라엘의 엑소도스와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으리라. 거기 출애굽기 이야기에서는 음모하고 박해하는 자가 이집트 사람들이며, 임신하고 도망가는 자는 이스라엘 족속들이다. 또 오늘의 본문에서는 이집트 여인 하갈이 이스라엘 사람 사래의 노예로 살고 있지만 거기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인들의 노예로 살고 있다. 이제 도망자 하갈과 야웨의 사자와의 이야기(vv.7-14)를 살펴보자. 사래 와 하갈의 얽히고 섦힘(vv.2-6)이 하갈의 엑소도스의 동기라면, 하갈과 야 웨의 사자 사이의 이야기는 하갈의 엑소도스 그 자체를 서술한다. 이 이야 기의 무대는 이제 가나안 땅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무대는 가나안 땅에서 수르 광야(v.7b)로, 곧 이집트로 가는 남방 길로 옮겨진다. 이 본문은 서술 형식상 제 3자(편집자)의 서술(vv.7,14)과 하갈과 야웨의 사자 사이의 대화를 옮긴 형식의 서술(vv.8-13)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서술 양식들은 하갈과 야웨의 사자의 만남을 보도하는 서론적 설명으로, 그 리고 그런 만남의 결과로 일어났던 반응을 서술하는 결어 형식으로 본문의 이야기 전개 속에 정교히 삽입되어 있다. 하갈의 엑소도스에 어떤 일이 일 어났다. 그녀의 엑소도스가 야웨의 사자와의 만남으로 이어진 것이다(v.7). 그러기에 (본문의 전면에) 이 야웨 사자와 하갈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 는가가 부각된다. 이때 야웨의 사자는 질문하시고("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 으며 어디로 가느냐", v.8a), 명령하시고("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 하에 복종하라", v.9), 축복하시는 (자손의 번성과 이스마엘의 탄생 예고 : vv.10-12)분이시다. 정신없이 퍼붓는 이 야웨의 사자의 말씀 앞에 인간은 오직 들을 뿐이다(cf. v.8b의 하갈의 대답). 인간의 반응은 야웨의 축복 선 언이 끝난 다음에 등장한다. 하갈의 반응은 야웨 하나님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으로(v.13), 그리고 추 가 반응인듯한 또 하나(편집자)의 반응은 그 역사적인 만남의 장소에 이름 을 붙여주는 것(v.14)으로 나타난다. "당신은 들으시는 신(신)이십니다 (v.13a, 'ata 'el rai)! 그리고 이 곳은 '브엘라해로이'(be'er lahay ro'i; the well of one who sees and lives, v.14a)입니다." 성서 본문(창 12 - 25장)을 거듭 읽어보라! 사래는 결코 야웨의 말씀을 직접 들은 적이 없다. 그녀와 야웨의 만남은 아브람을 통해서 만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이 이집 트 여인 하갈은 야웨를 직접 만난 여인이다. 그러고도 살아난 여인이다. 그 리고 야웨에게 별명을 지어 준 최초의 여인이다. 바로 여기에서 하갈은 더 이상 박해받는 자가 아인다. 도망하는 자가 아니다. 그녀는 야웨의 이름을, 그 이름이 상징하는 야웨의 속성을 선언하는 자로 변신한다. 당신은 나를, 박해받는 자를, 아니 이집트 여인을 보고 계시는 분이십니 다! 무엇이 본문 설화의 이같은 반전(반전), 아니 급전(급전)을 유도하고 있는가? 무엇이 하갈로 하여금 도망자가 아닌 야웨의 본질을 경험하는 자로 바꾸고 있는가? 무엇이 이 하갈이라는 이집트 여인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를 만나게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질문, 명 령, 축복, 혹은 약속의 형식으로 말씀하시는 야웨 사자의 말씀(vv.8-12)이 다. 그중에서도 도망가는 자 하갈의 발걸음을 막으시고, "너있던 곳으로 '돌 아가라(v.9a subi)', 그리고 네 여주인의 수하에 복종하라(v.9b)"고 하시는 야웨의 명령이다. 왜 하갈에게 돌아가라고 하시는가? 사래의 하갈 박해가 정당했다는 뜻인가? 하갈의 뱃 속에 생명이 자라고 있기에, 그 태어날 생명 이, 아니 대책없는 임산부가 광야를 배회하다가 죽을 것을 야웨가 염려했다 는 것인가(cf. 창 21: 16)? 도대체 무엇때문에 야웨는 하갈에게 사래의 수 하로 돌아가라고 하시는가? 이 질문은 성서의 독자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이 다. 이 수수께끼에 대한 한 해석에 도망자 하갈 이야기가 이집트 여인을 부 르시는 야웨의 이야기로 반전(반전)되는 해결이 있다. B.왜 야웨의 사자가 하갈더러 억압의 땅 사래의 수하(수하)로 되돌아가라 (v.9)고 명령하시는가? 이 질문은 창 16장 전체의 해석에서 우리가 풀어야 할 신학적 수수께끼이다. 왜 창 16장 본문은 그 구도를 "가나안 땅에서의 사래와 하갈"(vv.2-6)-- "수르 광야로 간 하갈"(vv.7-14) -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간 하갈"(vv.15-16)이라는 순환 구조를 지니고 있는가? 이같은 순환구조가 의미하는 본문 저자/편집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앞에 서 언급했듯이 하갈 이야기의 두번째 에피소우드(vv.7-14)는 하갈의 엑소도 스, 하갈의 탈출이다. 수르로 가는 광야 길의 어느 샘터에서 하갈은 여호와 의 사자를 만난다, 아니 샘터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기다리고 계셨다가 그곳 에 이른 하갈을 만나고 있다고 보고 싶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 고, 하나님이 연민을 가지시고, 도망자 하갈을 만나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하나님이 축복의 기득권자 이스라엘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샘터에서 기다리고 있던 대상-- 그녀는 축복의 기득권에서 제외 된 것 같았던 이방 여인이었다. 하나님이 이방 여인, 이집트 사람을 기다리 고 만나셨다니! 여기에 성서 기자의 예언자적 호소가 있다. 이스라엘이 하 나님의 백성이지, 하나님이 이스라엘 만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 님을 민족적 배타주의 속에 가두어 놓지 말라는 것이다. 이때 하나님의 사자가 하갈에게 퍼붓는 질문과 명령, 약속에 귀를 기울이 라!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v.8a).이것 은 질문이다. 하갈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인식케 하는 질문 이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v.9). 이것은 명령 이다. "돌아가라"(subi)와 "너 스스로를 사래의 수하에 두라"(wehit `anni) 로 읽혀져야 될 명령이다. "네가 아들을 낳으리라. 그 이름을 이스마엘 - 하나님이 들으셨다 -로 하라"(vv. 11-12). 이것은 약속이다. 자녀 탄생 예고의 양식으로 전달된 축복의 선언이다.이 자녀의 이름은 이 스마엘 -- 하나님이 (고통을) 들으심-- 이다. 하갈의 한(한)이 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갈의 아픔을 해소시키는 것 만으로 그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하갈 들 으심"은 그가 하갈에게 요구한 또 하나의 명령문을 뒷받침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v.8a의 질문에 하갈이 대답한 말이 무엇이었는가?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꾸."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v.9). 고난받는 현장으로 다시 가라는 명령이다! 아니 그 고난의 구조 속에서 다시 살라는 명령이다! 이해못할 하나님의 명령이다. 무슨 뜻 인가? 고난받는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라니? 이것이 무슨 소리일까? 하갈이 이제 곧 아기를 낳을 임산부이기에 태어날 생명을 위해서 돌아가라는 명령 인가?
구약신학의 새 지평과 상생의 실천 (3)
구약신학의 새 지평과 상생의 실천 (3) 여기에서 우리는 v.9의 히브리어 본문에 수록된 히브리어 동사, 특별히 v.9b에 "복종하라"(hith`anni)고 옮겨져 있는 동사의 형태에 주위를 기울이 고자 한다./25/ 우리말에 "복종하라"고 되어있는 히브리어는 "낮아지다, 천 해지다"(`ana)라는 동사의 재귀형(hithpael)으로 쓰여져 있는 명령형이다. 직역하면 "너 스스로를 낮아지게 하라"(to humble yourself)이다. 곧 히브리어 본문의 의미는 단순한 복종, 굴욕이 아닌, 스스로를 남의 수 하에 두게하는 자원하는 복종이다. 다시 말해 하갈이 스스로를 사래의 손 밑에서 낮아지게 하라는 명령인 것이다. v.9a의 "돌아가라"는 명령이 v.9b 의 이같은 해석에서, 하갈로 하여금 사래의 집으로 돌아가 더불어 같이 살 도록 노력하라는 말씀으로 들리게 된다. 그리고 이런 명령의 컨텍스트에서 후손의 탄생의 약속이 선포(vv.10,11-12)되고 있는 것이다. 구약 성서를 읽을 때에 "돌아가라"(sub)는 명령은 특히 예언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이다./26/ "하나님께로 돌아가라". 이는 곧 하나님과 더불어 의 삶을, 하나님의 뜻과의 공존의 삶을 부르짖었던 예언자들의 사상적 어조 였다. 오늘의 본문 "하갈아 돌아가라"는 말은 어려운 과제이긴 해도 하갈로 대표되는 그 어떤 집단과 사래로 대표되는 그 어떤 집단 사이의 공존(공존) 을, "더불어 사는 삶"을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이 "돌아가라"는 명령이 "(너 스스로를) 사래의 수하에서 낮아지게 하라" 는 다음의 명령에 의해서 보충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이 말을 듣는 독자들이 이스라엘 사람인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 므로 이 말은 이집트인으로 이스라엘 사회에 들어가 살라고 하기 이전에,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로 이집트인들과 더불어 함께 살라는 하 나님의 간접 명령인 것이다. 하갈을 버려서는 안된다. 하갈과 사래는 더불 어, 같이 살아야 되는 것이다. 여기에 사래와 하갈 사이의 갈등, 긴장의 상극적 대립을 넘어서서 사래와 하갈 사이의 조화와 공존, 화합과 평등으로 존재할 사회를 구현시키고자 했 던 성서기자의 예언자적 통찰이 있다. 본문에 정의 , 평등, 공존이라는 말 은 씌여져 있지 않지만, 사래(그는 본문의 최초 독자/ 청중이다)로 하여금 하갈과 더불어 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서, 갈등하는 계층 사이 에서 대립, 증오, 투쟁, 파괴가 아닌, 상생, 화해, 평등과 정의를 기조로 한 어떤 삶의 자리를 건설하실 것을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꿈을 듣는다. 야웨 하나님은 인류의 공존을 희망하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의 꿈꾸던 메시야 왕국이라는 것은 이런 공동사회(공동사회)의 구현이다./27/ 야웨의 통치 아래 모든 백성이 모여 사는 것. 그 때에 야웨께서는 "나의 백성 이집 트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라고 말씀 하신다(사 19:24 - 25). 우리 사회는 개혁을 바라고 있다. 통일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개혁과 통일이 화해(화해)를 부정하는 성격의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더불어 살기를, 서로 같이 살기(상생)를 포기하는 성격의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더불어 살기 운동" - 잘 살기가 아니라 "더불어 살기 운동!" 진통 하는 오늘의 대학과 노사 현장에,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정치권에, 문화, 경제, 사회 일반에, 그리고 나아가 민족과 민족, 이익과 이익으로 갈리운 이 지구 공동체에, 종교에 이런 "더불어 살라"는 야웨의 명령이 들려야 한 다. 질문, 명령, 축복 선언에 이어 하갈의 대답이 나온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v.13). 이 하갈의 표현 은 "나같은 사람까지도 당신이 보고 계셨다니, 나 같이 연약하고, 이용당하 고, 고통받았던 처지의 여인까지도 당신이 보고 계셨다니 ..."라는 감탄사 로 들린다. "나는 당신이 족장들, 히브리인들, 부한 사람들, 편한 사람들만 보고 계신 줄 알았더니, 당신은 노예, 이집트인,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고 계셨군요"라는 감탄사로 들린다. 성서 기자는 하갈의 이런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이 연약한 사람들, 고통당 하는 처지의 사람들, 비이스라엘인을 결코 저버리지 않는 분임을 깨닫게 만 든다. 하나님의 보편성, 하나님의 자비성, 하나님의 연민이 하갈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리고 있는 것이다. 힘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그런 분 이 아니셨음을 깨닫게 하는 증언이다. 하나님은 익명으로, 소리없이, 그러 나 줄기차게 하갈을 보고, 감찰하고 계셨더라는 말이다. 하갈이 그런 하나 님을 지금 만나고 있는 것이다. 광야의 이름모를 샘에서, 고통 당하는 자의 여정에서 발견한 어느 샘에 서, 하갈은 이제 눈을 뜨게 된다. 지금까지 그녀의 눈에는, 누르는 자 대 (대) 눌리는 자만 보였을지도 모른다. 임신한 여인 대(대) 아기 없는 여인 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이집트인인 자기를 보고 계셨 던, 보고 계시는, 그리고 앞으로도 보고 계실 하나님을 보고 있다! 이 고통 의 자리에서 만난 하나님 때문에, 이름모를 샘에 이름이 지어진다. 이 샘은 "브엘라해로이"다! 나를 돌보시는 생존자(생존자)의 우물이다! 이스라엘인들로 이집트인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이 성서 기자의 도전!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행진이 가는 그 마지막 고 난의 길(via dololoza)을 구레네 사람 시몬이 감당하게 되었다(마 27:32)는 복음서 기자의 증언에 대한 전조이다. 이방인이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갈보 리 언덕을 올라갔다는 것, 그것은 분명 탈민족주의(탈민족주의), 탈종교주 의(탈종교주의)를 부르짖었던 고대 이스라엘 성서기자의 당찬 열매이다. 야 웨는 우리 모두의 목소리를 들으시는 분인 것이다. 야웨를 야웨되게 하라! 5. 맺음말 : 창 16장이 증언하는 상극(상극)으로부터의 해방과 상생(상 생)의 실천 창 16장 본문의 주석 작업이 드러낸 본문의 세계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 웨의 세계가 사래의 아픔만이 아닌, 그리고 하갈의 고통만도 아닌, 사래와 하갈 모두의 아픔을 치유하시려는 상생적 드라마이다. 창 16장 본문의 주석 은 사래는 하갈에 대해서, 하갈은 사래에 대해서 서로 대립, 갈등, 긴장하 는 상극의 삶을 살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하갈은 사래의 품을 뛰쳐 나오려고 했지만 (창 16장은 이것을 구체화시킨 다), 사래도 하갈을 쫓아버리고자 시도하지만(이 경우의 구체화가 창 21장 이다),수르 광야에 지켜 서 계셨던 야웨의 사자는 하갈의 발걸음을 다시 사 래가 있는 곳 -- 가나안 땅-- 으로 되돌려 보내는 드라마를 연출하신다. 창 16장의 주석에서 우리가 크게 관심을 기울여야 될 본문-- 그것은 자식을 주 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면서도 "사래의 생산을 허락치 않으시고 있다"(v.2)는 약속의 지연이 아니다. 하갈의 한(한)을 들으시고 자식의 탄생으로 한맺힘을 풀어주시려는 하나 님 앞에, "당신은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v.13)이라고 탄성을 지르는, 불 의, 부당한 일에 희생 당한 이들의 구원에 관심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께 대한 고백도 아니다. 우리가 창 16장의 읽기에서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될 장면은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로 가기 위해 수르 광야길을 걸어 가던 하갈의 발걸음을 막으시고, 그를 다시 여주인 사래의 품으로 가게 하 며, "네 스스로를 주인의 복종 밑에 두라"(v.9)고 말하는 야웨 사자의 수수 께끼 같은 명령에 있다. 이것은 창 16장의 하나님이 사래만을 웃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닌, 하갈의 울음만을 들으시는 하나님도 아닌, 학대와 탈출이라는 상극적 관계 속에 놓 여 있는 사래와 하갈 모두의 조화(대립이 아니다!)를 꿈꾸시는 야웨임을 계 시한다. 거기에 창 16장의 해석에서 아브람과 사래 중심의 구원 역사만을 보았던, 또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편드시는 하나님 만을 보았던 우리의 전통 적인 시각을 재검토할 이유가 있다. 창 16장은 하갈의 이야기이지만, 하갈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래와의 관계속에 있는 하갈의 이야기인 것이 다. 하갈과 사래의 어우러짐의 실천을 꿈꾸고 있는 창 16장의 저자가 설파하 는 진정한 해방이란 상극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이것은 하갈과 사래, 모두를 갈등의 세계로부터 이끌어내는 샬롬의 세계이다. 사래 집을 뛰쳐 나왔다고 해서 하갈의 아픔이 치유되지 않는다. 가나안 땅을 박차고 나왔다고 해서 해방이 온 것은 아니다. 하갈의 고통이 사래와의 관계에서 비롯되었음을 기 억할 때, 하갈이 사래와 더불어 지내는 조화, 공존, 화합의 실천이 있는 곳 에만 하갈의 아픔은 치유될 수 있다. 가나안 땅으로부터의 탈출(사래의 수하로부터의 해방)은 미완성의 해방이 다. 사래에 대한 상극적 대립으로부터의 치유! 거기에 성서기자가 관심하는 진정한 해방이 있다. 그것은 사래에게도 마찬가지이다(창 21:1-7, 8-21은 이같은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상 론할 것이다). 하갈을 내쫓아 버린다고 해서 상극의 모순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다. 사래가 하갈과 더불어 지내고자 하는 노력에 의해서만, 이스마엘을 먼저 잉태한 하갈에 대한 사래의 증오와 시기가 완전히 해소될 수 있다. 여기에 하갈의 아픔을 들으시는(이스마엘), 하갈의 생존을 돌아보시는(브엘라해로 이), 그리고 사래의 고통마저도 웃음(이삭)으로 해소하게 하시는(창 21:6) 하나님 역사(역사)의 신비가 있다. 상생의 실천을 하갈 편에서 읽게 되면 그것은 관계의 회복이다. 그러나 그것을 사래 편에서 읽게 되면 상생의 실 천은 관계의 평등성의 구축이다. 즉 창 16장이 시사하는 상극의 해방과 상 생의 실천 구도는 구약의 주된 테마인 정의(justice)와 공법 (righteousness)의 문제와도 대화할 수 있다. 누가 누구에게 상생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는가? 창 16장 본문의 표면적 서술은 상생을 실천해야 될 당사자로 하갈을 지적한다. 야웨의 사자가 하갈 에게 "고향으로 도망가지 말고 너 살던 곳 가나안으로 되돌아갈 것"을 명령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창 16장 본문의 저자/ 편집자가 누구인지, 이 본문을 최초로 들은/ 읽은 독자/청중이 누구였는지를 상기할 필요가 있 다. 창 16장 본문의 저자 -- 이를테면 야웨문서기자(J)-- 의 연대, 시대 결정 에는 학자들 사이에 이론(이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가 어느 시대의 사람이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창 16장 본문의 저자/ 편집자는 이스라엘 사 람이요, 이 본문을 듣는/ 읽는 최초의 청중/ 독자는 사래로 대변되는 이스 라엘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본문은 이집트인 하갈로 이스라엘인 사래와 더불어 살라는 명령으로 들리기보다는,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야웨께서 이스라엘인과 이집트인 의 공존을 기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우치고자 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 님 편에서의 경고로 들린다. 상생의 질서를 야웨께서 그토록 고대하고 계심 을 이스라엘 독자들로 먼저 깨닫게 함으로써, 힘있는자 먼저, 선택받은 자 먼저, 약속의 공동체 안에 있는 자 먼저, 힘없는 자에 대한, 은총의 울타리 밖에 있는 자에 대한 상생의 실천을 실시하라는 야웨의 지상명령을 듣게한 다는 것이다. 선택이란 책임성이요 의무이지 결코 특권은 아니다. 창 16장의 저자/ 편 집자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먼저 상생의 실천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 다. 이제 결론을 말한다. 창16장, 그것은 폭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본문 (Text of Terror)이 아니다(폭력의 본문이라는 용어는 트리블의 것이다). 창 16장, 그것은 상생의 실천을 권고하는 본문(Text of co-living)이다. < 주 > 1. 이 글은 필자가 계간 {세계의 신학}(통권 11호,1991년 여름),120-143 에 발표했던 "하갈의 엑소도스(창16:1-6)"에 대한 수정보완이다. 원래 이 글은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서 본문의 주석에 목적이 있었다. 이 글을 세계신학연구원의 제 1회 청암기념학술강연회(1991년 11월 4-8일, 감리교여 선교회관) 강연 원고로 수정하면서 필자는 창 16장 본문 해석에 대한 구약 신학적 반성을 특별히 보완하였다. 2. "정신적 분단 상황"이란 용어는 박종천의 것이다(박종천, {상생의 신 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1],14-19, 21-23, 38-44). 박종천에 의하면 "정신적 분단 상황"이란 남 북한의 이념적 분단만이 아닌, 동 서, 종교, 문화의 이념적 갈등이 "마성적으로 작용하는 격변 상황"을 총체적으로 일컫 는 명칭이다. 필자는 이 용어를 "다원주의"(pluralism)라는 개념을 보완하 는 것으로 이해하며 사용한다. 다원주의가 서로 다른 것들끼리의 공존을 시 사하는 명사적 개념이라면, 분단 상황이란 이념, 집단, 계층 간의 갈등과 모순의 상극적 변증법이 진행되고 있는 동사적 개념을 시사하는 것으로 여 겨지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한반도의 상황은 단순한 다원주의가 아닌, 정 신적 분단상황이라고 봄이 더 정당하다고 여겨질, 그런 상황에 해당한다. 3. 구약 신학의 사적 고찰을 위해서는 다음의 책을 참조하라.George W.Coats, " Theology of the Hebrew Bible", The Hebrew Bible and Its Modern Interpreters, eds. by D.A. Knight and G.M. Tucker (Philadelphia: Fortress/Chico, California: Scholars Press, 1985), 239-262; H.G. Reventlow, Problems of Old Testament Theology in the Twentieth Century(Engl.trans. Philadelphia: Fortress,1985). 4. 필자는 구약신학의 방법론 문제와 관련하여 크니림(Rolf P. Knierim) 의 입장을 따른다. Rolf P. Knierim ,"The Task of Old Testament Theolog y", Horizone in Biblical Theology 6: 1 (1984),25-57; 6:2(1984), 91-128; idem. "Biblical Exeyesis, Theology and Hermeneutic" Lectures at the Semana Wesleyana Seminary in Sao Paulo, Brazil (1989, May)(이 책은 Eerdmans 출판사에 의해서 곧 간행될 예정이다); Tai-il Wang, "Old Testament Theology : Its Task and Methodology ", {신학과 세계} 21 (1990년 가을), 329 - 363.
구약신학의 새 지평과 상생의 실천 (4)
구약신학의 새 지평과 상생의 실천 (4) 5. "상생"이라는, 상극을 넘어서는 생명의 보전 (해원상생)이라는, 한반 도 민중종교의 언어를 신학적 은유(metaphor)로 사용하기 시작한 자는 토착 화 신학 제 2세대라 불리우는 감신대 소장 학자들이다. 특히 홍정수, {베짜 는 하나님: 이단자를 위한 한국신학}(서울:조명 문화사, 1991), 345 - 380; 박종천, {상생의 신학},13-19, 317-340을 보라. 필자의 관심은 여기에서 단 순히 이 상생 개념의 성서적 전거를 논하는 데에 있지 않다. 필자의 주장은 "상생"이 보다 성서적 개념임을 밝혀내는 데 있다. 6. 창 16장과 21장(21:8-21)은 이야기의 내용상 중복된다. 창 16장(J)과 창 21:8 - 21(E)에서 동일한 전승의 반복을 읽어내려는 노력은 일찍부터 있 었다. 예를 들어 S.R. Driver, The Book of Genesis(New York : Edwin S. Gorham, 1904), 180-184, 209-213; Sean E. McEvenue, "A Composition of Narrative Styles in the Hagar Stories", Semeia 3(Missoula, Mont. : Scholars Press, 1975), 64-80; cf. John Van Seters, Abraham in History and tradition(New Haven, Conn. : Yale Univ. Press, 1975), 192-202 ; 김 이곤, "응답의 신 야웨", {신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다}(서울 : 한국신학연 구소, 1980), 65ff. 그렇지만 필자는 이 두개의 하갈이야기를 동일한 소재 에 대한 두 전승의 반복이라고만 단정하지 않는다. 이 두 이야기는 이러한 최종 형태의 본문을 있게 한 편집자의 의도에서 서로 다르다. 7.예를 들면 G. von Rad, Genesis, 191-197 ; Westermann, Genesis 12-36,(Engl. trans. Minneapolis: Augsbrug,1985), 236; G.W. Coats, Genesis,FOTL.volI (Michigan:Eerdmans,1983),129 ; N.W. Sarna, Genesis, the JPS Torah Commentary(Philadelphia/New York/Jerusalem : The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89), 118 - 122 ; P. Trible, Texts of Terror, OBT( Philadelphia:Fortress,1984),10-18. 8. 야웨의 사자에 대해서는 Westermann, Genesis 12 - 36, 242-243 참조 9. Westermann, Genesis 12-36,249. 10.George W. Coats, Genesis , 131-132. 11.Phyllis Trible, Text of Terror, 18 - 19. 12.H. Gunkel, Genesis, HAT. 1902(Reprint : Gottingen : Von den hoeck and Ruprecht, 1964), 183-193, 226-233; G. von Rad, Genesis, 191; E.A.Speiser, Genesis, 3rd ed., AB(New York : Doubleday & Company, 1982), 119-120; John H. Otwell, And Sarah Laughed : The Status of Woman in the Old Testament(Philadelphia : The Westerminster Press, 1977), 102-103; cf. John Van Seters, "The Problem of Childlessness in Near Eastern Law and Patriarchs of Israel", JBL(1968) : 401-408 ; idem, Abraham in History and Tradition, 68-71, 192-208. 13. ANET(146 - 147)는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옮기고 있 다.sec. 146. "어떤 가부장(Seignior)이 한 여사제(hierodule, naditum : naditum이란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으나 결코 자식을 낳아서는 안되는 계층 에 속한 여성 제사장을 의미한다;필자주) 와 결혼하였다. 그 여인은 자신의 하녀를 자기 남편에게 주었다. 이때 그 하녀가 아들을 잉태하였을 경우, 만약 그녀가 자기가 아들을 밴 까닭에 그녀의 여주인과 대등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면, 그의 여주인은 그 녀를 팔지 못한다. 그 여주인은 그녀에게 [노예의] 표시를 찍거나, 그녀를 종들과 대등하게 여겨야 한다." sec.147. "만약 그녀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 그녀의 여주인은 그 하녀를 팔아 버려도 된다." ANET에 수록된 이 함무라비 법전은 고대 바빌론 제국 함무라비 왕조(1800 - 1600 BCE)의 법령이다. 이 법을 창 16장의 기사와 평 행한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창 16장의 사래는 "결혼은 할 수 있으나 어머니가 되는 것을 금지당했던 여사제(hierodule)"가 아닌 까닭이다. 스파 이저(Speiser)는 여기에서 창 16장의 이야기와 보다 유사한 자료로 주전 15 세기 경으로 여겨지는 다음과 같은 누지(Nuzi)문헌의 결혼 관습을 소개한 다. 셴니마(Shennima)란 남자가 길림니누(Gilimninu)라는 여인과 결혼하였다. "이때 길림니누가 자식을 생산할 경우, 셴니마는 또 다른 부인을 취할 수 없다. 그러나 길림니누가 자식을 낳지 못한다면, 길린니누는 룰루(Lullu)지 역에서 한 여인을 택해서 셴니마에게 첩으로 주어야 한다(룰루 지역에서 택 한 여인이란 곧 여자 노예를 의미한다: 필자주). 이때 태어난 자식에 대한 권리는 전적으로 길림니누가 맡는다"(Speiser, Genesis, 120 ; cf. Van Seters, Abraham in History and Tradition, 69-71). 14. 그 대표적인 학자가 궁켈(H. Gunkel)이다. H.Gunkel, Genesis : C. Westermann, Genesis 12 - 36, 234-235. 많은 학자들,이를테면 벤첸(A. Bentzen), 노트(M. Noth), 폰 라트(G.von Rad), 침멀리(W. Zimmerli) 등은 창 16장에 원인론적 사담의 모티브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15. 창 16장의 이야기에서 이같은 주제 -- 두 여인 사이의 갈등 -- 를 읽 어내는 대표적인 학자가 베스터만(C. Westermann)이다. 그는 족장 설화에서 두 개의 갈등군(군)을 읽는다. 하나는 "여인들끼리의 갈등"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남자들끼리의 갈등"이다. 전자에는 아브라함 설화가, 후자에는 야 곱 - 에서 설화가 해당된다고 본다. 베스터만은 나아가 갈등의 모티브(창 16: 2-6)에 아기 탄생의 모티브(창 16: 7-14)가 첨가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Westermann, Genesis 12 - 36, 235, 236-237. 최근에 비교 미드라쉬적인 주석 방법에서도 이 문제를 이런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Mary Callaway, Sing, O Baren One: A Study in Comparative Midrash(Atlanta : Scholahs Press, 1986), 13 - 33. 16. 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폰 라드이다. 폰 라드는 이런 "약속 성취의 지 연"에서 성서 독자들이 지녀야 될 신앙적인 태도 -- 즉 기다릴 수 없는 상 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분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를 갈파한다. G. von Rad, Genesis, 191, 196 - 197. W. Brueggemann, Genesis. Interpretation , A bible Commontary for Teaching and Preaching(Atlanta : John Knox Press, 1982), 150-153. 국내 학자의 경우 김이곤,"응답의 신 야웨[창 16장, 21장]",{신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다: 창 세기의 현대적 이해}(서울:한국신학연구소,1980), 65-73이 이 입장을 계승 하고 있다. 17. W.Brueggemann, Genesis, 150-153. 18. W.Brueggemann, Genesis, 184. 19. Phyllis Trible, Texts of Terror, 9-35. 트리블은 두 개의 하갈 설 화, 즉 창 16: 1 - 16; 21: 9 - 21 사이에는 내용상, 구조상 이야기의 구성 (plot)이 서로 평행하고 있음을 본다. 하지만 그녀는 창 16장의 구성이 순 환적이라면, 즉 노예 상태의 삶 - 도망 - 다시 노예 상태로라는 구조 속에 았는 것이라면, 창 21장의 그것은 직선적으로 노예 상태 - 추방 - 집 없는 처지의 삶으로 종결된다고 보고 있다. 국내 학자의 경우 민영진, {하나님의 기쁨, 사람의 희망}(서울: 삼민사, 1991), 64-69이 여성신학적인 성서읽기 를 반영한 창16장 해석을 설교문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20. 창 16: 1a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래, 아브람의 아내,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wesaray 'eset 'abram l'o' yalda lo)이 문장은 주어 가 동사 앞에 놓인 문장으로, 흔히 보는 히브리 문장(동사 + 주어)의 형식 에서 보면 동사와 주어의 순서가 뒤집힌 어순(inverted order)을 보인다. 16:1a의 뒤이어서 나오는 16:1b는 반면에 명사절(nominal phrase)이다.즉 "그러나 그녀에게는 에집트인 몸종(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은 하갈 (이었다)"이다(welah sipha misrit wusemah hagal). 즉 창16장:1의 문장은 사래로 시작하여 하갈로 끝난다. 21. 우리말 개역 번역의 16:2a("여호와꼐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 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는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한다. "야 웨께서 나의 생산을 막으셨으니 나의 여종에게로 들어가라"(hinneh-na' `asarani yhwh milledet bo'-na' el-siphati). 램딘(Thomas O. Lambdin)은 창 16:2a의 히브리 본문이 지닌 hinneh - na와 na의 구조에 대해서 설명한 다. 접미어 hinneh - na와 na가 한 문장안에서 같이 사용될 경우, 전자는 명 령형, 상황을 서술하는 기능을 한다.(삿 19:1; cf,창19:19;왕하2:19) 즉 전 자는 후자로 시작되는 명령형 문장의 배경 설명에 쓰인다. Thomas O. Lambdin, Introduction to Biblical Hebrew(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71), 170-171. 이 두 단어 사이에는 논리적인 순서(logical sequence)가 깔려 있다. 전 통적으로는 접미어 na와 연결된, 화자(화자)의 의지를 나타내는 명령형 동 사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청컨대"(please)라는 말로 시작되는 명령형 문장 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hinneh -na가 붙은 문장이 na와 연결된 명령형을 유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서술하는 기능을 하기에, 또는 후자가 전자로 서술된 상황 때문에 생긴 명령을 선포하는 기능을 하기에, 우리말 번역시에 사용된 "원컨대"라는 표현은 생략되어야 한다. (Bruce K. Waltke, M, O'Connor, An Introduction to Biblical Hebrew Syntax [Einona Lake. Indiana : Eisenbrauns, 1990], 578-579).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사래의 말이 "명령형"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명령의 동기가 야웨께서 사래 자신의 자녀 생산을 막으셨다/ 허락지 아 니 하셨다고 밝히고 있는 점이다. 이 둘 사이에는 논리적인 순서가 있다. 하나님의 사래의 생산(생산)을 허락지 않으심이라는 상황이 그녀가 남편을 명령하게 된 동기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지 않으심! 이에 논리적으로 맞서는 여인 사래의 생각! 우리는 hinneh - na와 na로 표현된 본문의 문장 에서 이런 의미를 읽는다. 22. 16:2. 우리말 번역에 있는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 노라"('ulay 'ibaneh mimmenna)는 "내가 혹시 그녀로 인하여 세위지게 될까 ('ibaneh)하노라"라는 말의 의역이다. 베스터만의 지적한대로, 이 표현 (ibaneh)은 "자식"(ben)이라는 단어에서 파생한 동사 형태(우리말 개역 번 역은 이 경우를 따르고 있다)이거나, 또는 "세우다"/"건설하다"(bana)라는 동사의 니팔형(수동태)으로 볼수 있다. Westermann, Genesis, 12-36, 239. 많은 학자들이 후자의 경우를 따르고 있다. 필자도 후자의 경우를 취한다. I shall be built up from her이다. 이런 표현은 당시 족장 시대의 사회적 관습을 반영하고 있다. 즉 그 시대 여인들은 남편에게 자식을 낳아주는 경 우에만 한 가족의 일원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cf.창 30:3). 23. P.Trible, Texts of Terror, 10 24. 창 16:1 - 16의 주석에 대해서는 왕대일 "하갈의 엑소도스"(창 16:1-16), {계간 세계의 신학}, 통권 11호(1991. 여름), 120-130에 실린 구조분석을 참조하라. 25. 많은 학자들은 야웨의 명령, "돌아가라...복종하라"(v.9)를 편집자에 의한 추가, 또는 보충 설명으로 여겨왔다. 즉 창 21장의 이야기 - 그 이야 기에는 하갈과 이스마엘, 그리고 아브람과 사라가 같이 있다 - 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하갈이 반드시 사래에게로 되돌아갔어야만 했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v. 9의 명령을 이런 편집상의 연결을 이루기 위해서 편집자가 첨가 해 놓은 구절이라고 본다(Wellhausen, Zimmerli). 베스터만도 이 구절을 편 집자의 추가로 본다. 다만 그 동기를 다르게 보고 있다. 그에 의하면, 하갈의 도망을 야웨의 사자가 막은 것은 사래의 계획(v.2)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사래가 하갈을 통해서 자신의 처지를 온전히 세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 나 필자의 생각은 이와는 다르다. 과연 v.9을 편집자의 추가로만 돌릴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창 16장의 구조에서 드러나듯이 v.9이 단순한 편집자의 부기가 아니라, 질문(v.8) - 명령(v.9) - 축복선언(vv.10-12)으로 이어지는 야웨의 말씀 그 자체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은 도망자 하갈더러 왜 "(사래에게로) 돌아가서 (subi), (그녀의 수하에) 복종하라(wehit anni)"고 말씀하시고 있는가에 있 다. 이때 "복종하라"는 명령은 `ana동사의 히트파엘(hithpael)형의 명령형 이다. 직역하면 "너 스스로를 그녀의 손 밑에서 천하게 하라." 또는 "그녀 의 손 밑에서 겸손하라"(humble yourself under her hands!)이다. 모든 번역들, 이를테면 KJV(submit thyself under her hand), RSV(submit to her), NEB(sumit to her ill - treatment), 개역(그 수하에 복종하라)등 은 본문의 이런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 즉 하갈이 스스로를 사래의 손 밑에서 낮아지는 생활을 하라는 명령인 것이다. 여기에서 v.9의 명령이 하갈로 하여금 사래의 집으로 돌아가 더불어 같이 살도록 노력하라 는 말씀으로 들리게 된다. 26. 예를 들어 "하나님께로 돌아가라"는 예언자들의 권고는 호 6:1;7:10;14:3;렘 3:7; 왕상 8:33,48등에서 발견된다. 반면 "하나님께로부 터 돌아섰다"(예:배교하였다)는 표현도 sub이란 동사를 가지고 나타난다. 예를들어 민 14:43; 삼상 15:11; 왕상 9:6; 렘 3:19 등. 27. 하갈에게 "돌아가라"고 하신 야웨의 명령에서 이스라엘 만의 메시야 왕국이 아닌, 인류의 공존(공존)을 구현(구현)하라는 신(신)의 선교(선교) 를 읽는 눈은 김이곤, {신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다},70을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