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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고 샘플 5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시는 하나님/출15:22-27/김성광 목사)
작성자 : 운영자(kylggc@hanmail.net)  작성일 : 2009-04-18   조회수 : 2877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시는 하나님/출15:22-27/김성광 목사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시는 하나님
출15:22-27
김성광 목사





A. 서 론

1. 쓴물, 단물

여러분 과연 ‘쓴물’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사는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전혀 고통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사업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더 나아가 마음속의 미움, 원한, 절망, 좌절, 열등의식으로 인해 여러 가지 고통을 받습니다. 이런 고통이 바로 쓴물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쓴물을 단물로 바꾸지 않고 살아 간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고통 가운데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고통의 쓴물이 축복의 단물이 되는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기적을 체험한 자들에게 새로운 은혜와 축복을 덧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는 고통에도 섭리가 있습니다. 『신국(City of God)』이라는 역사 철학책을 쓴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 354∼430)은 ‘고통과 섭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다. 악한 사람은 똑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독하지만 선한 사람은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찬양한다. 모든 사람이 무슨 고통을 당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당하느냐가 문제다. 똑같은 미풍이 불지만 오물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거룩한 기름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긴다.”
이렇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믿음의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고통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또한 고통 그 자체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은 “동산지기의 가위는 나무에게 유익하다. 마찬가지로 고통은 인생에게 유익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순간적으로는 아프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잘라내고 다듬어지고나면 꽃도 피고 열매도 많이 맺는 아름다운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고통은 우리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주고, 교만한 사람을 깨뜨려서 겸손하게 만들고, 잘못된 인생길을 바로 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고통은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겠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성공한 사람, 칭찬받는 훌륭한 인물들을 보면 그들에게도 수많은 고통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고통을 잘 극복하고 인내함을 통해서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영화배우, 게리 쿠퍼(1901∼1961)에 대한 글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쿠퍼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 만화 그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질을 인정받지 못하자 무대 뒤에서 배우들의 대사 읽어주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대사를 잘 못 읽는 바람에 공연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에게 즉시 감봉처분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이 실패가 결국 그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쿠퍼의 처지를 알게 된 감독은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가 엑스트라로 일하도록 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열심히 노력한 결과 그의 명성이 점점 빛나기 시작했고, 결국은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두 번씩이나 받는 유명한 배우가 된 것입니다.
한 번 안됐다고 낙심하지 말고, 두 번, 세 번, 네 번, 칠전팔기 끝까지 노력하고 인내함을 통해서 자기의 주어진 재능을 개발하고 그것을 통해서 인생에 여러 경험을 쌓고 마지막에 가서 승리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단코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러시아의 시인 알렉산더 푸쉬킨(1799∼1837)이 이런 시를 썼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심장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우울한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 버리나, 지나가 버린 것은 그리울 것이리라.’
지나고 나면 다 그립고, 추억이 됩니다. 지금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현재의 삶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과거도 있었고, 더 나아가서 미래에도 있다는 것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또 톨스토이(1828∼1910)는 ‘고통은 생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인간의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될 중대한 조건이다’라고 했습니다. 고통은 성공의 조건입니다. 행복의 조건입니다. 승리의 조건입니다. 인간이 성숙하고 자라가는 조건은 고통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고통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것,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당하는 고통, 이것도 지나고 나면 큰 교훈이 되고 축복이 됩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더 잘 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오늘 봉독한 성경말씀의 배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복지를 향해 가는 도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광야에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을 찾다 겨우 샘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물은 써서 마실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홍해를 가르신 기적의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금방 좌절하고 낙담했습니다. 당장 기갈을 해소할 물이 없다고 해서 모세를 원망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은 원망죄에 빠졌으나 모세는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쓴 마라를 바라본 것이 아닙니다. 쓴 물을 본 것이 아니라 민족을 구원하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샘물 속에 넣으라고 지시하셨고, 그대로 하니까 물이 달아졌습니다. 모두 모여서 그 물을 마시고 길을 떠나 물과 나무가 풍부한 엘림에 도착하여 평안한 안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땅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도 마라의 쓴물처럼 고난과 역경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고통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원망, 불평에 쉽게 빠져드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할 때 인생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시고, 평안과 안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고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B.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하나님
1. 마라에 이르렀더니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였다
- 인생의 쓴물, 고난, 좌절, 실패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출 15:22∼23)
첫째 ‘마라에 이르렀더니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였다’(출 15:23)고 했습니다. ‘마라’란 무슨 뜻입니까? ‘마라’는 ‘쓰다, 고통스럽고, 괴롭고, 근심스럽고, 슬프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상황에 빠지자,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열가지 재앙을 피하게 하신 하나님, 홍해수를 가르게 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순간적으로 그들은 물이 쓰다고 낙심하고 절망속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와 같이 마라가 있습니다. 쓸때가 있습니다. 낙담할 수가 있고 절망할 수가 있습니다. 가정생활도, 직장생활도, 자녀 교육에도 마라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인생의 끝장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환난을 당할 때 어떻게 그 환난을 극복하겠습니까? 불신앙의 세상 사람들은 고난에 대해서 낙담하고 원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즐거워하는 것’ 입니다.
로마서 5장 3절에 사도 바울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4장 12∼1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환난 당할 때에 인내하는 연단을 통해서 신앙이 성숙되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소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즐거움을 믿음안에서 다시 찾으시기 바랍니다.
독일의 유명한 시인 괴테(1749∼1832)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통이 남기고 간 뒷맛을 맛보아라. 고난이 지나가면 반드시 단맛이 스며든다.’ 독일의 작곡가 베토벤(1770∼1827)도 ‘고뇌를 철저히 맛보고 극복했을 때 환희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시인도 음악가도 우리에게 위대한 인생의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고통과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가지 과정을 격어야 합니다. 첫째, 고통이 두렵다고 자꾸 피하고 도망가지 말고, ‘이 고통은 피할 수가 없구나.’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두 번째, 고통에 대해서 참고 견뎌야 합니다. 셋째, ‘고통은 나에게 유익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고통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나 다 고통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차 은혜받고, 축복받고, 승리하려는 사람은 때로는 고통의 과정을 겪습니다. 등산을 해 본 사람은 압니다. 높은 정상에 올라가려면 깊은 계곡을 경험하고 올라갑니다. 성공과 승리와 행복은 고통을 극복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날의 만년필 같은 모세관 작용을 사용해서 잉크를 공급하는 원리는 19세기 미국의 보험 판매원 루이스 워터먼의 연구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보험 판매원 루이스 워터먼은 큰 계약을 성사시키려고 가방에서 잉크 병과 펜을 꺼냈습니다. 계약서를 고객 앞으로 내밀며 사인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고객이 계약서를 잉크로 더럽히는 바람에 계약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계약서의 여분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할 수 없이 회사에 돌아가 계약서를 챙겨서 다시 고객을 찾아갔는데 그 사이 다른 사람과 계약을 끝낸 상태였습니다.
화가 난 워터먼은 그날부터 잉크가 쏟아지지 않는 펜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다가 드디어 그는 잉크가 쏟아지지 않는 만년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한 순간의 고통과 실수가 우리에게 더 큰 은혜와 축복이 될 수 있고, 기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결코 원망하거나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2. 백성이 원망하였다.
- 원망, 불평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출 15:24)
둘째로 마라의 쓴물을 만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조금 전에는 모세를 가리켜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라고 칭찬하고 존경하고 잘 했는데, 이제는 마실 물이 없다고 싹 돌아서서 그에게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에게 원망한 것은 결국 모세를 세우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3일 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가 갈라지고 애굽의 군대를 멸하시는 하나님의 큰 능력을 체험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잊어버리고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우리를 애굽에서 불러내서 광야에서 굶주리고 목말라 죽게 하려는가?’ 그들은 엄청난 죄를 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원망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민수기 21장 5절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하고 원망, 불평했습니다.
그러자 6절에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뱀도 보통 뱀이 아니라, 가장 독이 많은 불뱀을 나타나게 하셔서 불평하는 자들을 뱀에 죽게 했습니다. 원망죄는 뱀을 부르고, 뱀에 물려서 죽게 만듭니다. 원망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 일으키고, 원망죄는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함을 통해서 뱀에 물려 죽은 사람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원망합니까?
잠언 19장 3절에 솔로몬은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사람이 원망합니다. 무슨 섭리와 뜻이 있는지 장차 무슨 일이 다가올지 미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원망죄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원망하지 않습니다. 원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이 원망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5장 9절에도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에 원망하는 사람의 결과가 많이 나옵니다. 원망하므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원망함으로 하나님의 기업을 상실하고(민 14:29∼30), 하나님 앞에 벌을 받았습니다(애 3:39). 멸망을 당했습니다(고전 10:10). 심판을 당합니다(약 5:9). 그에게 화가 미친다고 했습니다(유 1:11).
그러나 원망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바로 감사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나무에 피는 꽃이고, 불행은 불평의 나무에 돋히는 독버섯과 같습니다. 여러분 고생한다고 해서 원망하지 마십시오. 대개 고생한 사람이 큰 일을 합니다. 고생 끝에 목적을 달성해야 고마운 마음도 느낄수 있는 것입니다. 추위에 떨어본 사람이 태양의 고마움을 느낌니다. 굶주림에 시달린 사람이 밥 한 그릇의 고마움을 더 잘 압니다. 갈증의 고통을 겪은 사람이 시원한 물 한 그릇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인정에 굶주린 사람이 사랑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이 금식할 때의 냉수 한 그릇 입니다. 금식할 때 냉수를 한잔 들이키면 얼마나 시원한지 모릅니다. 물 한 모금 마실 때 하나님 앞에 ‘하나님 이 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기도를 올립니다. 냉수 놓고 감사하는 사람은 이것보다 더 큰 것, 더 많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공장에 공원으로 일하는 한 청년이 있었는데, 이 청년은 고아였습니다. 정붙일 데도 없었던 차에 전도를 받아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오니까 말씀에 은혜도 받고 사람들도 그를 친절히 대해 주었습니다. 그는 너무너무 좋아서 ‘왜 이렇게 좋은 교회를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가? 몰라서 그렇지. 내가 이것을 사람들에게 전도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설교를 종이에 적어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를 퇴근하면 전도지를 가지고 버스 정류장으로, 골목으로 다니며 보는 사람마다 전도를 하였습니다.
한 번은 길에서 목사님이 그 청년을 만났는데, 무슨 종이를 열심히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뭔가 유심히 봤더니 목사님의 설교를 빽빽이 적은 쪽지를 나눠주며 전도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청년의 그런 모습을 보고 이 청년의 앞날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을 아는 회계사 사무실에 직원으로 취직을 시켰습니다.
회계사 사무실에 취직한 이 청년은 일을 배우면서 틈틈이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그는 그 사무실의 사무장이 되고 시험에 합격해서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면서 성실하게 생활한 결과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후에는 잃어버린 가족들도 다 만나게 되는 축복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3.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 기도와 응답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출 15:25a)
세 번째 백성들은 원망했으나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고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냐 원망이냐 둘중에서 하나를 택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원망을 택하지만 축복받는 사람은 바로 기도를 택합니다. 여기에 모세의 위대한 점이 있습니다. 모세도 굶주리고 모세도 목말랐지만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즉시 응답해 주셨습니다. 한 나무를 지시하시고 물에 던져 넣으면 쓴물이 단물로 변할 것이라는 응답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지시하신 나무를 물에 던지자, 단번에 마라의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도할 때,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시편 34편 6절에 다윗은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고 했습니다. 이 ‘곤고한 자’가 누구입니까? poor man,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 배고픈 사람, 비천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입니다. 고통받는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통에서 구원받기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문제가 많아 걱정하면서도 계속 근심만 하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근심에 싸여 잠도 오지 않고 음식도 먹을 수 없을 때 원망불평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때가 바로 기도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그때 벌떡 일어나서 새벽에 기도하러 나오시기 바랍니다. 철야기도도 나오십시오. 금식하며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응답하여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야고보서 5장 13절 말씀에도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고난을 당해도 자신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 불평하거나 자기를 핍박하는 자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말고 주의 강림을 기다리며 인내하고 오히려 고난을 이기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계속해서 14절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장로, 집사, 권사의 직분을 주셨습니까? 기도하기 위해서, 특히 병든사람, 고통당하는 사람, 고난당하는 사람을 위해서 중보하며 기도하라고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당할 때 합심으로 기도하여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기도하여 응답을 받은 실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 밤새도록 기도해서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창 32:24∼25).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태양을 멈추게 하고(수 10:12∼13), 기드온은 기도함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했고(삿 6:36∼40), 한나는 서원기도함을 통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삼상 1:19∼20). 솔로몬은 일천번제 드려 기도하고 지혜를 얻고(왕상 3:7∼9),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왕상 18:42∼45), 히스기야 왕은 죽을 병에 걸려 기도함으로 병에서 고침받고 구원받았습니다(왕하 20:5∼6). 에스더는 민족을 위해 기도하여 민족이 생명을 보존받고(에 8:15∼17), 과부도 재판장에게 간절히 간구함을 통해서 문제 해결을 받고(눅 18:2∼5),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눅 22:42∼44).
하루에 몇시간씩 TV는 보면서 바쁘다고 핑계대고 단 한시간, 단 삼십분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도하지 않으니까 응답이 없고, 응답이 없으니까 축복이 없습니다. 신앙에 뿌리도 열매도 없습니다. 여러분, 잃어버린 기도를 찾아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데도 갈 데가 없이 막연할 때 나는 여러 번 무릎을 꿇게 됩니다. 나의 지혜와 주위의 모든 것이 감당하기에 너무 벅찰 때 나는 기도에 의지합니다.’
대통령도 기도하는 대통령이 정치를 잘합니다. ‘하나님, 대통령도, 장관도, 국회의원들도 기도하게 만들어 주시고, 회사 사장들도 기도하게 하시고 이 민족에 기도의 운동이 일어나서 민족이 구원받게하여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불길이 일어나야 합니다.

4. 말씀에 순종하면 치료해 주신다
- 순종과 기적, 치료하시는 하나님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5b∼26)
네 번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기적과 치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시험하시고, 연단하시기 위해서 마라의 쓴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신 사건을 통해서 귀중한 교훈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와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쓴물을 단물로 바꾸듯이 몸과 영혼의 모든 질병에서 치료하시고, 돌보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질병에서 치료받아 건강하게 해 주시고, 인생의 환란과 문제들을 치료하셔서 기쁨과 행복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듣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말고, 듣고 실천을 해야 됩니다. 몸으로 주님을 섬기고 물질로 섬기고, 시간으로 섬기고, 봉사, 충성, 헌신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나님을 섬길때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대로 성취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5장 14절 이하에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아람 왕국의 군대장관이었으나,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돈과 명예와 권세가 있었으나, 썩고 냄새나는 그의 육신을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여종의 말을 듣고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 갔습니다. 엘리사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 그러면 네 살이 깨끗하리라.”
요단강은 깨끗한 강이 아닙니다. 흙탕물 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화가 났습니다.
“아니, 이왕 씻으려면 깨끗한 강에 들어 가라고 하지 이 흙탕물에 들어가라고? 내가 아는 더 좋은 강이 많은데.”
그러나 종들이 말했습니다.
“장군님, 요단강에 일곱 번 목욕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한번 해 보십시오.”
그는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고 그 종들의 말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문제는 순종입니다. 요단강에 무슨 효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그는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순종하지 못해서 축복받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해서 하나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나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떠서 연회장에 갖다 주어라.”
갖다 주니까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맹물을 떠다 주었는데, 포도주가 됐습니다. 순종이 이러한 기적을 가져온 것입니다.
순종은 모든 축복의 열쇠가 됩니다. 순종하는 자 질병에 걸리지 않고(출 15:26), 천대까지 은혜를 받으며(출 20:6; 신 6:10), 물질의 축복(신 15:5), 자손의 축복(신 4:40), 형통의 축복(신 29:9), 가정의 축복(왕상 11:38), 기도응답의 축복(요일 3:22)을 얻게 됩니다.
교회에서 전도왕으로 뽑힐만큼 열심인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이 딸은 삶에 대한 열정과 야망이 큰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역경과 실패가 다가오자 야망이 컸던 만큼 좌절과 자존심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염세주의에 빠져 내세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교회 가세요. 나는 절에 가겠습니다.’
종교는 자유라고 생각하고 그는 자기 어머니와 반대로 절에 가서 불도를 닦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열심히 불도를 닦고 살라고 발버둥을 치고 애를 써도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병들고 말았습니다. 병명은 유방암이었습니다. 그는 유방의 뭉클거리는 것을 붙잡고 ‘내가 병에 걸려도 싸지, 죄값을 받았어. 우상숭배하니까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으니까 벌을 받았어.’하고 스스로를 자책했습니다.
‘내 죄의 대가야. 나는 당연히 죽어야 해. 나는 죽을 수밖에 없어’
마지막 유방암 말기에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병원에서는 5%의 가능성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가족들은 포기할 수 없어서 수술을 하려고 병원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입원실에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가 그 딸을 붙들고 간절히 말합니다.
‘너 죽으면 나도 죽어!’
어머니의 그 말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말이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죽어 마땅하고 나는 죄값을 받지만, 나 죽으면 어머니도 죽는다.’
그래서 비로소 이 여자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어머니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홀로 되시어 지금까지 고생하고 사시는데, 내가 어머니께 제대로 효도도 하지 못했는데, 어머니는 나 죽으면 어머니도 죽는답니다. 어머니를 위해서 나를 살려 주십시오. 나를 위해서 살려주지 마시고 어머니를 위해서 살려 주십시오.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그는 수술대에 올라서 눈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수술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동안에 간절히 기도하는데 갑자기 시뻘건 손이 나타나더니 가슴을 감싸안고 쥐어짜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온 몸이 짜릿해서 보니까 몸이 불에 타는 냄새가 났습니다. 지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이 시원해 졌습니다.
그리고는 의사가 수술을 하러 들어왔습니다. 이 여인은 ‘선생님, 마지막 부탁이 있습니다. 내 몸 다시 한 번 검진해 주세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의사가 화를 내며 ‘암이 온 몸에 쫙 퍼졌는데 무슨 검진이오?’하고 짜증을 냈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재검진을 요청했습니다. 다시 검진한 결과 몸에 암이 싹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의사도 의아해 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자신에게 나타났던 일을 얘기 했습니다. 의사는 황당무개했지만 ‘어쨌든 당신은 수술할 필요가 없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3시간만에 병원에서 퇴원했습니다.
이 마지막 극한 상황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죄를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이 여자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쓴물을 단물로 바꾸신 하나님이십니다.
C.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평안과 안식의 삶을
사는 성도가 되자.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출 15:27)
조금 전만 해도 물이 없어서 굶주려 원망 불평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고 율법과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난 다음에 그들은 아름다운 오아시스 나무 주변에 장막을 치게 되었습니다. 연단과 시련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풍족한 축복을 주십니다. 넘치는 축복을 주십니다. 감당치 못하는 축복과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3편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자는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시련과 역경을 능히 극복할 뿐 아니라, 엘림과 같은 풍성하고 평안한 안식을 얻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고난당할 때에 불평하지 말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러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평안과 안식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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