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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엘리트/ 대상27:1-22/ 석기현 목사/ 2013-10-03
작성자 : 황인순 /석기현목사  작성일 : 2013-10-03   조회수 : 837

이스라엘의 엘리트

대상27:1-22



 

제가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에 목사 안수와 동시에 선교사 파송을 받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 임직식에서 원로목사님께서 저와 또 함께 안수를 받았던 선교사에게 권면을 해 주시는 순서를 맡으셨는데, 디도서의 말씀을 가지고 해 주셨습니다.

디도서는 목회 서신의 일부로서 오늘날의 목사들이 자신의 직분을 가지고 주의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을 가르쳐 주는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그 디도서 전체를 통해 요약해 볼 수 있는 세 가지 목회 지침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로 '말씀 증거'이며, 둘째로 '행실의 모범'이며, 셋째가 '교회 행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목사는 뭐니 뭐니 해도 일단 성경 말씀을 잘 가르치고 전해야 하며, 또한 그 가르치는 사실에 대하여 먼저 자기 자신이 생활을 통하여 그대로 모범을 보여야 그 말씀 증거가 은혜롭고 능력 있게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뿐 아니라 목사는 바로 그 성경의 원리에 따라 교회의 조직을 질서 있게 세우고 또한 그 조직들을 중심으로 직분자들을 잘 활용하는 '교회 행정'의 능력 역시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권면이었습니다.

그 권면은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저의 목사로서의 사명 수행에 좌우명이 되었으며, 특히 그 세 번째 목회 지침은 날이 갈수록 더 현실적으로 와 닿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목사로 안수를 받게 되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 말씀 선포에 대한 열정이나 신행일치의 경건생활, 이 두 가지는 모두 다 어느 정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다스리는 행정적 능력이 첫 두 가지에 비해서는 목사마다 많은 차이가 있고, 결국 바로 그 차이가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특히 목회에 성공하신 선배 목사님들을 볼 때마다 절실히 느끼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뿐 아니라 국가라는 사회적 공동체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바로 다윗 왕 역시 나라의 공적 조직을 체계적으로 이룩하고 또한 그것들을 중심으로 적절한 인재들을 잘 활용함으로써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완벽한 신정국가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그러한 다윗 왕과 함께 이스라엘을 부국강병으로 이끌었던 '족장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유사' 등 국가의 엘리트들이 어떤 자들이었으며 그들이 어떻게 조직되어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내용입니다.

이 시간 집사회 헌신예배를 함께 드리면서 우리 경향교회 역시 현재보다 더 부흥하고 성장하는 신앙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우리 교회의 장립집사님들께서 과연 어떤 영적 엘리트들이 되어야 할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모든 성도로 하여금 교회 일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자'(leader)들이 바로 교회의 엘리트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바로 '군대의 장관'들이 그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본문 1절부터 7절에 기록하기를 "1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족장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을 섬기는 유사들이 그 인수대로 반차가 나누이니 각 반열이 이만 사천 명씩이라 일년 동안 달마다 체번하여 들어가며 나왔으니 2정월 첫반의 반장은 삽디엘의 아들 야소브암이요 그 반열에 이만 사천 명이라 3저는 베레스의 자손으로서 정월반의 모든 장관의 두목이 되었고 4이월반의 반장은 아호아 사람 도대요 또 미글롯이 그 반의 주장이 되었으니 그 반열에 이만 사천 명이요 5삼월 군대의 셋째 장관은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요 그 반열에 이만 사천 명이라 6이 브나야는 삼십 인 중에 용사요 삼십 인 위에 있으며 그 반열 중에 그 아들 암미사밧이 있으며 7사월 넷째 장관은 요압의 아우 아사헬이요 그 다음은 그 아들 스바댜니 그 반열에 이만 사천 명이요"라고 했습니다.

 

이하 8절로 15절까지의 본문에 보면 나머지 "오월"부터 "십이월"까지 각 반열의 장관들의 명단이 연이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이스라엘의 군대 조직입니다.

이스라엘의 군대는 각 반차마다 2만 4천 명의 병사들로 조직되었으며, 그런 반차가 도합 열두 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각개 반차에 "반장" 또는 "장관"이라 불리는 대장이 임명 되어 그 각 반차에 속한 군대를 통솔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을 주기로 하여 "달마다 체번하여" 즉 매달 한 반차씩 복무하면서 국방을 맡았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예비군 편성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이십 세 이상의 모든 남자는 병역의 의무를 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를 상비군으로 두지는 않고 평소에는 자기 개인의 생업에 종사하도록 하면서, 일 년에 한 달씩만 돌아가면서 군인으로 복무하게 함으로써 나라를 지키게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일반 병사들은 전직군인이 아닌 평민들이었지만, 그 각 군대 반차의 장관들만큼은 당연히 전문 군인이어야만 했습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장관들의 명단을 보면 그것을 금세 알 수 있는데, 그 대부분의 이름들이 다 '다윗의 30인 용사'의 명단에도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바로 이런 군대장관들의 지휘 계통을 따라서 전 이스라엘 장정들은 그처럼 조직적이고도 효과적인 군대 체계를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즉 모든 국민이 평상시에는 국가 산업 발전에 그 힘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유사시에는 국방의 의무 또한 다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이스라엘이 국방을 위해 전 국민 동원 체제를 이상적으로 잘 조직해 두고 적절히 운용하고 있는 것 역시 어쩌면 이 다윗이 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군대장관들은 그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나라를 위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과 노력을 다하여 봉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아주 요긴한 엘리트 지도자들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서 무엇을 해 줄 것인가 묻지 말고 국민 각자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시오."라는 저 유명한 케네디 대통령의 말은 다윗이 이스라엘을 이끌어 갔던 원칙과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즉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위해 빠짐없이 잘 쓰일 수 있을 때 국가발전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개인의 행복도 따라올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속한 모든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빠짐없이 교회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조직에 소속이 되고 그 결과 각자가 교회 일을 위해 구체적으로 쓰일 수 있을 때에 교회 전체는 활기차게 돌아가고 그 개인 성도들 역시 교회생활을 통한 은혜와 축복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일하지 않는 교인들을 일할 수 있도록 이끌지 않고 가만 내버려 두거나 혹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일거리를 찾을 수 없게 되어 있는 교회는 결코 성장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본질적인 성격 중에 하나가 '그리스도의 몸' 즉 살아 움직이며 활동하여 일을 해내는 '유기체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의 장립집사들께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봉사직분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교회를 섬겨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주일학교를 위시하여 찬양대, 각 전도회와 연합회 등 모든 교회의 조직들은 근본적으로 '서로 교제하고 같이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힘을 합하고 함께 일하기' 위해 결성되어 있는 단체들입니다.

그리고 바로 장립집사님들이 그 모든 조직들 구석구석에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매사에 앞장서서 일하는 '장관'들이 되어야만 그런 봉사기관들이 중구난방으로 가지 않고 일사불란한 유기체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장정들이 각 반차의 장관들을 중심으로 나라를 위해 각자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국가의 번영을 이룩했듯이, 우리 경향교회의 장립집사님들께서도 이처럼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를 중심으로 주님께서 각자에게 맡겨 주신 봉사의 직무에 충성할 수 있도록 앞에서 지도하며 본을 보이는 요긴한 영적 엘리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교회 안의 각 성도를 빠짐없이 '보살펴 주는 자'(carer)들이 또한 교회의 엘리트입니다.

 

이스라엘의 각 지파를 관할했던 '관장'들이 여기에 해당되었습니다.

16절 이하 22절까지의 말씀에 "16이스라엘 지파를 관할하는 자는 이러하니라 르우벤 사람의 관장은 시그리의 아들 엘리에셀이요 시므온 사람의 관장은 마아가의 아들 스바댜요 17레위 사람의 관장은 그무엘의 아들 하사뱌요 아론 자손의 관장은 사독이요 18유다의 관장은 다윗의 형 엘리후요 잇사갈의 관장은 미가엘의 아들 오므리요 19스불론의 관장은 오바댜의 아들 이스마야요 납달리의 관장은 아스리엘의 아들 여레못이요 20에브라임 자손의 관장은 아사시야의 아들 호세아요 므낫세 반 지파의 관장은 브다야의 아들 요엘이요 21길르앗에 있는 므낫세 반 지파의 관장은 스가랴의 아들 잇도요 베냐민의 관장은 아브넬의 아들 야아시엘이요 22단의 관장은 여로함의 아들 아사렐이니 이스라엘 지파의 관장이 이러하며"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 언급되어 있는 것은 각 지파를 "관할하는 자", 즉 각 지파의 "관장"들의 명단입니다.

이 '관장'이란 다시 말하자면 각 지파의 대표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 나왔던 국방의 지도자들이었던 장관들과는 달리 평상시의 행정업무의 지도자들에 해당됩니다.

 

우선 여기 나타나는 지파의 이름들은 우리가 잘 아는 열두 지파, 즉 야곱의 열두 아들들에 따른 지파의 분류가 아니라 조금 바뀌어져 있습니다.

갓과 아셀 지파가 빠져 있고, 그 대신에 요셉 지파가 에브라임과 두 무리의 므낫세 지파로 나뉘어져 있으며 아론 지파가 특별히 분리되어 추가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체 지파의 수효는 총 열셋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 당시 이스라엘의 지파들의 실제적인 상황들을 고려하여 가장 현실적인 지파 분류를 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이 분류가 그냥 명목을 따른 열두 지파가 아니라, 실제로 그 지파의 관장들이 자기네 지파 내의 모든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이런 관장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 속한 모든 개인들은 자기네들의 의사를 쉽게 반영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또한 이스라엘에 속한 한 국민으로서의 족보가 확실해지는 동시에 그 권리를 충분히 행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 나타나는 이 지파 분류와 관장 임명은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백성이 빠짐없이 국가를 통하여 보호받을 수 있게 해 주기 위한 행정체계였던 것이었습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교인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잘 보살핌을 받아야, 또한 한 명도 빠짐없이 주의 일에 잘 쓰이는 일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모든 교인이 교회를 위하여 섬길 수 있도록 만드는 조직이 필요한 동시에, 그 교인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돌볼 수 있는 조직 역시 꼭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보살핌'은 근본적으로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각 교구와 구역을 통해 실천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우리 장립집사님들께서 꼭 감당해 주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바로 '구제'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성도를 개인적으로 돕는 구제는 물론 모든 성도에게 공히 주어진 의무이기는 하지만, 특히 집사의 직분에서 가장 강조되는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매년 한 번씩 집사회 총회에 참석할 때에나 신임 임원들과 인사하는 자리에서 '경향교회의 모든 장립집사님들은 일 년에 최소한 한 번 이상씩은 자기 주변에 있는 약한 성도에게 구제의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일깨워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것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는 개인적 구제'입니다.

만약 경향의 모든 장립집사님들께서 제가 당부한 대로 한 사람이 일 년에 딱 한 명씩에게만 구제를 해도 그 결과는 엄청날 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도움을 받은 성도는 그 집사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우리 교회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구제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교구에서는 담당 교역자들 또한 크게 격려와 고무를 받고 약한 교우들을 위해 그런 집사님들보다 더 많은 사랑을 베풀면서 사역을 하게 될 것이고, 교구 전체의 화목과 단합 역시 절로 뜨거워지고 강력해질 것이 아니겠습니까?

 

잘 아시다시피 목사 혼자 모든 교인들을 다 보살펴 주는 carer가 될 수는 없으며, 교구담당 교역자라 할지라도 어떤 때에는 각 교인들의 개인적인 형편을 깜빡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 우리 장립집사님들께서 그런 약한 교우들을 기억해 주고 그들의 어려운 형편을 걱정해 주면서 자신의 사랑과 정성을 구제로써 표현해 주면, 그것은 실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관장들의 관리를 통하여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경향의 장립집사님들 역시 이 큰 '하나님의 집' 안의 수많은 경향가족들 중에 혹 잊히고 소외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연약한 성도' 한 명을 찾아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따뜻한 carer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석기현 목사(경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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