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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 악을 이깁시다/ 롬12:19-21/ 강영래 목사/ 교회설립주일설교/ 1999-03-07(Let's Overcome Evil with Good!/ Romans 12:19-21
작성자 : 강영래 목사  작성일 : 2010-04-06   조회수 : 3235
선으로 악을 이깁시다/ 롬12:19-21/ 강영래 목사/ 교회설립주일설교/ 1999-03-07(Let's Overcome Evil with Good!/ Romans 12:19-21/ Rev. John Young Lae Kang/ Church Establishment Sunday Sermon/ 1999-03-07)

선으로 악을 이깁시다
롬12:19-21



I. 서론

오늘은 우리 주님의영광교회가 처음으로 이 세상에 창립되는 날입니다. 우리 주님의영광교회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하시려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준비하셔서 이제 오늘 마침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시는 크신 은혜에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처음으로 창립 예배에 이렇게 참석해 주신 교역자와 성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롬12:19-21 말씀을 중심으로 “선으로 악을 이깁시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 시간 여러분과 제가 다 같이 성령으로 감동받고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와 평강과 축복을 충만히 받는 귀한 예배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은, 첫째로 하나님과의 평화이고, 둘째는 사람들과의 화평을 이루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고, 우리의 이웃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어가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신자들은 마땅히 화평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려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마5:9에서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평을 이루게 되면, 우리 마음에 평안이 임하게 되고, 기도와 간구에 신속하게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화평이 깨지게 되면 마음이 편치 못하고, 기도도 막히게 됩니다. 기도가 막히면 결국은 응답도 막히고,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도 막히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평이 없는 곳에는 반드시 마귀가 도사리고 있다가 그 마수를 뻗쳐 오게 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잠17:1에서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肉饍)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4:26-27에서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평과 평화의 필요성은 가정에서도,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직장에서도, 어디에서도 가장 강조되어야 할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영광교회에 모이신 사랑하는 교역자와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여러 분 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와 친구 간에, 동료와 이웃 간에 서로 대립하고 있지는 않은가 살펴보시고, 서로 간에 화평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II. 본론

1. 첫째로,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직접 해결하시도록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 드리도록 합시다.

오늘 본문 말씀인 롬12:19에서는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과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그것을 나의 힘으로만 해결하려 하면 좋지 않은 부작용이 생기게 되므로,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 내어놓고 간절히 기도해서 우리가 친히 그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말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직접 그 문제를 해결하시도록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 드려야 하겠습니다.

롬12:19에서는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말씀하시고,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5:27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심판하는 권세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우리 주님만이 세상을 심판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 그 심판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빌2:3에는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20:28에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같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서로 섬기는 자세로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섬긴다(serve)’라는 말은, 상대방을 자기 자신보다 더 못하다고 보고, 얕잡아 보지 말고, 무시하지 말고, 자기보다 더 높이 보고, 더 낫게 여기며 그를 위해 일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은 자기 우월주의에 빠져 있어서, 상대방을 깔보고, 무시하고, 낮추어 보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 상대방을 비판하고, 모함하고, 허물을 들추어내는 잘못된 습관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삶이 아니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잠3:34에서는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라고 말씀하시며 그런 거만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비웃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11:2에서는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또, 잠18:12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22:4에서는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29:23에서는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잠16:18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7:1에서는 우리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하셨고, 마7:5에서는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1:29에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선생도 빌2:3에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나음을 낫게 여기고”라고 말했고,

야고보 사도도 약4:6에서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라고 말했으며, 베드로 사도도 벧전5:5에서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으므로’(롬 3:10-12) 우리는 심판 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심판하는 권세는 죄가 전혀 없으신 우리 주님에게만 있으니 우리는 누구를 심판해서도 안 되며, 또 함부로 남을 판단하는 교만을 나타내서도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원수를 자기가 친히 갚으려 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심판 날에 주님께서 갚아 주실 줄을 믿고 다만 주님께 부탁하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이웃에 대하여 우리 자신들의 마음과 감정을 조절하고 제어합시다.

롬12:20에서 “내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웃에 대하여 우리 자신들의 마음과 감정을 조절하고 제어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감정이 치솟아 오르는 일이 생기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은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잠12:16에서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잠 15:1에서는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22:8에서는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잠4:23에서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14:29에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잠15:13에서는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16:32에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17:22에서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5:39-42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5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10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수용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마음과 생각과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오로지 이해와 포용과 수용 속에 나아가면, 다툼이나 원망, 탄식이 나오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롬12:21의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는 상대가 악으로 나올 때 악으로 되받아칠 것이 아니라, 그런데도 선으로 말해 주고 선으로 행하면 능히 악을 이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가 악을 행할 때 감정이 격해져서 순간적으로 다투거나 미워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우리의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잠시 제어할 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순간적인 실수로 인하여 후회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통하여 항상 승리하시는 삶을 살아가시는 우리 주님의영광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 것일까요?

다윗왕처럼 훌륭한 사람도 자기의 심령과 마음의 감정을 온전히 제어하지 못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다윗왕이 자기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피난을 가고 있을 때 사울 왕의 집 족속 중 시므이라는 사람이 피난 가는 다윗 일행을 따라오면서 계속 다윗을 저주하면서 티끌을 날리고 돌을 던졌습니다.

한 나라의 왕에게 이렇게 행동하였으니 죽어 마땅한 일이었으나, 다윗은 자기가 잘못해서 지금 하나님 앞에 징계와 연단을 받는 처지임을 알았기 때문에 시므이의 행동이 괘씸했지만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을 완전히 용서해 주고 하나님께 맡기지 못했습니다. 압살롬의 난이 평정되고 다윗왕이 다시 궁궐로 복귀하였을 때도 그것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차마 자기가 용서하라고 해 놓고 자기가 한 말을 다시 뒤집을 수가 없어서 차마 그를 벌하지는 못했지만, 왕상2:9에 보니까 그는 죽을 앞두고도 그 시므이의 행사가 괘씸하여서 죽기 전에 그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겨서 결국 그를 죽이게 합니다.

왕상2:8-9을 보니까,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돌아올 때)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로 내려가게 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묵은 감정의 앙금을 씻어내지 못하고 나타낸 사건인데, 다윗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시므이는 악을 쌓은 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악으로 하나님께서 멸망시킬 자이었습니다. 다윗이 가만두었더라도 그는 어차피 하나님의 심판을 당했을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오늘 로마서 본문을 통하여 다윗왕처럼 시므이를 직접 벌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모든 심판을 맡기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원수를 직접 갚지 말고, 하나님께 부탁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오늘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을 끝내 실행하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을 수가 있으나, 참으로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악을 선으로 이길 수 있는 주님의영광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또 한 예를 들어보면, 사울 왕의 경우입니다. 그는 시기와 질투로 인하여 악하고 추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백성들이 사울이 적을 천천을 죽였다면, 다윗은 만만을 죽였다고 하니까, 사울 왕은 마음속에 다윗에 대한 시기가 일어나서 마음속에 악이 발동되어 감정이 격화되어서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결국, 삼상31:1 이하를 보면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자기의 세 아들, 즉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사울 자신도 전쟁터에서 자기의 칼로 자결하게 되고 마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울 왕도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오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비극을 당하게 되고 만 것입니다.

다윗과 사울의 경우와 같이 성경 곳곳을 보면 자신들이 직접 심판하고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 심판을 맡겼을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정의로 심판하신 예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경우도 바로 그런 예가 되겠습니다. 구약 성경 에스더를 읽어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바사 제국의 총리대신으로 하만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마치 신(神)이라도 되는 듯이 다 자기에게 다 엎드려 큰절을 하는데, 모르드개라고 하는 사람만은 뻣뻣하여서 자기에게 절을 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모르드개는 유대인으로 유대인의 종교 때문에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심히 노하여 모르드개를 비롯한 모든 유대인을 몰살시킬 흉계를 꾸며서 왕의 조서까지 받아내었습니다.

이제 유대인들이 다 몰살당할 위기를 당하여서 모르드개와 마침 유대인으로서 바사국의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되어 있던 에스더가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이 일을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였습니다.

하만이 악으로 그들을 치려고 했지만, 그들은 악을 악으로 갚으려 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께 그 심판을 부탁했습니다.

에스더 왕비는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가서 침착하고도 지혜롭게 이 일을 탄원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심판해 주셔서 오히려 하만이 심판을 받고 죽임을 당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고 자기 집에 세워 놓은 높은 나무에 오히려 자기가 달려 죽게 되었고, 유대인들을 진멸하려던 자들이 오히려 진멸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심판해 달라고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심판해 주셨던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행12:1-13에 나와 있는 사건을 살펴보면, 에돔 족속이었던 헤롯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교회를 핍박하면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 사도를 칼로 쳐 죽이고, 또 베드로 사도를 붙잡아 옥에 가두었으나 예루살렘 교회는 도무지 그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오직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해 달라고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천사를 베드로가 갇혀 있는 옥중으로 보내 주셔서 두 병사 사이에서 쇠사슬에 매어 누워 자고 있던 베드로를 깨워서 쇠사슬을 풀어 주고 두 병사를 깊이 잠들게 해서 몰래 옥 밖으로 내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3. 셋째로, 우리는 우리 이웃의 악한 도전을 선으로 이기도록 합시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때로는 부부간에도, 형제간에도, 교인 간에도 감정 대립이 되었을 때 참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하고 자기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함으로 인해 악으로 악을 갚아서 엄청난 오해와 다툼을 불러일으키고 심하면 서로 원수를 맺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족 간이든, 이웃 간이든, 직장 동료 간이든 간에 상대방이 나에게 해를 끼칠 때 서로 감정적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선으로 악을 갚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형통케 하시며, 머리가 되게 하시고, 높이 들리게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잠14:22에서는 “악을 도모하는 자는 그릇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잠15:3에서는 “여호와의 눈은 어디에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잠19:17에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이렇게 진리를 쫓아서 진리대로 행해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려 하지 말고 감정을 제어하고 다만 기도와 간구로, 때로는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아뢰어서 우리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고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셔서 악한 상대가 무릎을 꿇게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시37:7-9을 보면,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발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라고 했고,

시62:12에서도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신다.”라고 했습니다.

바울 선생도 롬2:6에서 밝히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했습니다.

딤후4:14에서는 “구리장색 알렉산더가 네게 해(害)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라고 말했고,

마16:27에서도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III. 결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선악 간에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것이니, 우리는 이것을 잘 알고 모든 것을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원수갚을 능력이 있었음에도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고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처럼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벧전2:19-24에서는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詭詐)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의영광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선으로 악을 이기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여서 모든 인간관계에서 잘했다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귀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요한 강영래 목사(인천 주님의영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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