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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자가 돌을 던져라/ 과거 고문기술자 이근안 목사/ 2012-02-04
작성자 : 운영자(kylggc@hanmail.net)  작성일 : 2013-08-01   조회수 : 192
폐지수거, 파출부로 생계 유지하는 이근안 부부의 기구한 운명.

지난 1월 19일, 이근안 목사 관련 뉴스가 하나 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 교단이 긴급 징계위원회를 열어 그의 목사직 면직 판결을 내린다는 내용이다. 이씨가 목사로서 품위와 교단의 위상을 떨어뜨렸고, 겸손하게 선교하겠다는 약속도 어겼다고 여겨 내린 징계다. 한 번 면직되면 평생 복귀할 수 없는 것이 목사라는 직업이다.

그가 목사안수를 받은 것은 지난 2008년이다. 겸손하게 선교할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면직도 감수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이루어진 일. 하지만 “나는 고문 기술자가 아닌 애국자”라며 본인의 고문을 정당화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논란을 빚었다. 결정적으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김근태 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기독교계 시민 단체들이 그의 목사안수 철회 서명운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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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여성조선
업보로 받아들이기에도 힘든 가족사
“목사 면직 이전부터 비참하게 살았다”


이제 목사로서의 삶은 끝났지만, 출소 이후 목사의 신분으로 사는 동안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신앙 간증을 하면서 생활을 유지해왔다. 그의 강연료가 비싸진 않았지만 생활에 보탬이 되는 수준이었다. 강연 중 자신의 고문 전력을 강연해온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간첩 잡는 킬러로서의 활약상, 고 김근태 고문의 진실 등도 이야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본인은 공갈만 했지 고문은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과거의 행동을 뉘우치지 않아 문제가 됐다.

하지만 최근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업보 때문에 가족들에게 불행이 닥친 것 같다고 말했다. 과연 업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의 현재는 지나칠 정도로 비참하다.

보증금 100만원, 월세 20만 원짜리 4평 단칸방
이삿짐 풀기도 전에 김근태 사망 소식 듣고 종적 감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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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신옥영 씨. /출처=여성조선
현재 이씨는 아내 신옥영 씨와 함께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한 주택에 거주 중이다. 그의 집은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세간 살림이 보관되고 있는 곳이다. 지난 2006년 출소 이후 용두동에서 살았는데,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월세 규모를 줄여 지난 연말에 이곳으로 이사왔다. 공교롭게도 이사 직후 고 김근태 고문이 사망했고, 그때부터 이씨는 자의반타의반으로 종적을 감춘 상태다.

보증금 100만원, 월세 20만 원짜리 단칸방이다. 큰 대로변에 있지만 재개발이 들어가지 않은 지역으로, 오래된 주택이다. 이미 많은 취재진이 다녀간 그의 집에서 그들의 행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집 출입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집주인은 “남자(이씨)는 딱 한번 얼굴을 봤다. 사람들이 계속 몰려오니까, 아줌마(신씨)도 잘 안 들어온다. 지금까지 두 번 정도 얼굴을 봤다”며 집엔 아무도 없다고 전했다. “쌓여 있는 짐들은 어떻게 정리를 하고 살 지 모르겠다.”며 “매달 말일이 월세 받는 날인데, 아직 한 달이 안 됐으니 그때까지만 지켜봐야 겠다.”고 말했다.

작은 마당의 한쪽 구석에는 이씨 가족의 살림들이 너부러져 있었다. 가스레인지, 화분 등 사용이 불가능해보이는 짐들이었다. 어린이용 자전거도 이씨 집 물건이라고 했다. 집주인은 “살림이 너무 많아서 집에 들어가지 못한 짐이 더 많다”면서 이들이 남기고 간 짐을 처분하지 못해 골치라고 했다.

이씨 부부가 이 집으로 이사 온 후 그들을 만난 사람은 없었다. 이사할 때 부동산 계약을 했던 담당자도 계약서를 쓰던 날 딱 한번 봤을 뿐 이후로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씨 부부는 바로 옆집 2층에서 이사를 왔다. 5~6년 정도 살았다는 그 옆집에서 그는 막내아들의 아들인 손자도 함께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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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구 용두동에 위치한 이근안의 집이다. 최근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월세가 싼 집으로 이사했다. 아직 짐 정리도 끝나지 않은 상태. /출처=여성조선
낮에는 빌딩청소, 밤에는 폐지수거
실질적인 생활 유지하는 부인 신씨의 몫


이씨의 아내 신씨는 폐지와 재활용품을 수거하고 빌딩 파출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동네에서 한때 미용실을 운영했으나 지금은 처분한 상태다. 미용실 규모가 작아 벌이가 넉넉하진 않았다.

마트에서 만난 동네 토박이 주민은 “미용실 할 때도 폐지는 계속 주웠다. 아마 미용실 운영하면서 돈을 거의 못 벌었을 거다. 신씨가 심성이 고와서 노인들 머리를 무료로 손질해줬다. 착한 일을 많이 했다. 생활비는 폐지 모은 것으로 마련하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

신씨는 70세가 넘은 나이지만, 낮에는 빌딩 청소, 새벽 3시면 일어나 동네를 돌아다니며 폐지를 모으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생활이 벌써 10년째다.

신씨가 폐지를 납품하며 생활비를 번다는 동대문구 용두동의 고물상을 찾았다. 고물상의 사장은 “거의 매일 들러 폐지를 가져다주던 그녀의 발길이 최근 불규칙하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있다가 얼마 전에 풀었고, 최근 남편이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취재진이 몰려들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기자가 찾은 날에는 새벽에 5000원 가량의 폐품을 건네고 갔는데, 오랜만에 온 것이었다고 한다. 사장 역시 최근 그녀가 작은 집으로 이사 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작은 곳으로 이사를 해 리어카를 둘 곳이 마땅찮아 고물상에 두고 다닌다고 했다.

고물상 관계자는 신씨가 굉장히 미인형의 얼굴이라며, 가끔씩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갈 때가 있는데 평소에는 거의 말이 없지만 한 번씩 속 이야기를 쏟아낼 때가 있다고 전했다. 가족 이야기부터 본인의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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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구 용두동에 위치한 이근안의 집. /출처=여성조선
이씨도 가끔씩 고물상 들러
직접 손으로 쓴 ‘성경교리연구’ 선물하기도


고물상 사장은 이근안 씨가 찾아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평소 폐지의 양이 많으면 아내를 대신해서 리어카를 끌어주고, 음료수 캔처럼 무게가 나가는 것은 남편인 그가 들어준다. 부부가 함께 오는 날이면 고물상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은 12월 말쯤. 이씨가 자필로 쓴 성경교리연구라는 책을 선물로 주고 갔다고 한다.

“감옥에 있을 때 직접 손으로 썼다고 하더라고요. 성경 공부 하던 거 정리해서 쓴 책이에요. 쓰다가 중간에 잘못 쓴 부분이 있으면 또 처음부터 써서 완성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사람 정성이 대단히 들어 있어요. 이걸 다 손으로 썼다니까. 제가 간증을 들었는데, 언변도 좋아요.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A4 용지를 묶어서 만든 성경교리연구 책은 그가 나름대로 정리한 성경에 대한 연구다.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글씨체로 성경 교리에 관한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했다. 수감시절 매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감하는 생활을 보내던 중, 어느 날 묵상 기도 중에 “맛있는 떡을 혼자만 먹고 있느냐”는 질책의 음성을 듣고 떡을 책으로 빚어 나누는 것에 착안해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나씩 써내려간 책은 2004년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날 완성됐다.

에필로그도 눈에 띈다. “이 책은 지난날 영욕의 세월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쓰임 받는 종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옥중에서 써내려갔다. 피를 잉크삼아 한자 한자 써내려간 회개의 얼굴이다. 내용도 미흡하고 난필에 착오도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넓으신 해량 있으시길 바라오며, 이 글을 완성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린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든 분들께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시기를 무릎으로 기도한다.”

그의 간증을 들은 두 주민은 이씨의 언변이 대단히 좋은 편이라며 “과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했다. 간첩 이야기도 하고, 본인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풍채가 좋고, 카리스마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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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안이 감옥에 수감 중일 때 직접 손으로 써서 완성한 '성경교리연구'는 흐트러짐 없는 깔끔한 글씨체가 인상적이다. 그는 이 책을 측근들에게 선물하여 열심히 간증활동을 했다. /출처=여성조선
숨겨진 슬픈 가족사
심장마비, 교통사고로 두 아들 먼저 떠나보내


힘들게 사는 아내의 사연과 함께 아들들의 이야기도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그에겐 3명의 아들이 있는데, 그중 2명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둘째는 이 전 경감이 교도소 복역 중에 심장마비로 숨졌고, 셋째는 지난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씨 부부가 이사 오기 전 살던 집의 1층 식당 주인은 “둘째 아들 내외랑 함께 살았는데, 아들이 지병인 심장마비로 죽었다더라. 며느리는 신 씨의 미용실 일을 도왔는데, 아들이 사고를 당한 후 신씨가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냈다. 슬하에 아이도 없으니, 잘 살라고 보내준 것”이라고 말했다. 한 주민은 “큰아들 내외는 떨어져서 산다고 들었다. 며느리가 대전에서 유치원 선생님을 한다더라”고 소식을 전했다.

최근 이근안 씨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업보 때문에 가족들에게 불행이 닥친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늘 말하는 대로 어쩔 수 없는 선택, 그 시절엔 ‘애국’이었다지만 그와 가족을 둘러싼 말로는 비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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