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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수 목사 특별인터뷰
작성자 : 운영자(kylggc@hanmail.net)  작성일 : 2008-06-07   조회수 : 89
 "한국교회여 본질로 돌아가자"

최삼경 sam5566@hanmail.net
월간 <교회와신앙> 발행인, 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

주님의 교회와 임영수 목사. 둘은 서로 닮은 꼴이 많습니다. 이 땅에 선 지 13년 된 주님의 교회는 예수님의 무소유 정신에 입각해서 자체 교회 건물을 소유하지 않은 교회로 유명합니다. 서울 잠실의 정신여고에 대강당을 지어주고, 주일이면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 이 교회의 담임으로 있는 임영수 목사는 보기만 해도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분입니다. 6월 19일 임목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목회자란 인간과 하나님에 대한 탐구를 진지하게 해 가는 사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단아한 풍모에서 구사하는 절제된 언어로 선비처럼 맑은 느낌을 주는 임목사였지만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한국교회를 꿰뚫어 보는 현실감각이 배어있었습니다. 바쁜 일정 가운데 본지와의 인터뷰를 허락해 주신 임영수 목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주님의 교회의 담임 임영수 목사(우측)와 최삼경 목사

▶ 인터뷰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은 ‘영락교회’를 맡으셨다가 현재 ‘주님의 교회’에 오셨습니다. 청빈하시고 깨끗하신 목사님을 뵈면 저 자신도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맑고 깨끗한 분들이 보는 한국교회 모습이 정확한 한국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을 통해 한국교회에 대한 반성도 해보고 싶고 후배로서 교훈도 얻고 싶습니다. 먼저 목사님께서 영락교회에서 주님의 교회로 오신 배경과 과정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 제가 영락교회 갈 때도 특별히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영락교회의 청빙이 있었고, 그 청빙이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해서 좀 주저했는데 시대적인 특수성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락교회가 한국교회에서의 중요한 위치라고 봤을 때 영락교회가 흔들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영락교회에 부임하게 됐죠. 그러나 저는 영락교회에 갈 때부터 평생 목회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대형교회의 목회가 저에게는 너무 힘들고, 적성에도 잘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해서 원래부터 ‘50주년’을 기하여 끝내려고 했습니다.

목회를 하는 동안 제가 한 일은 주로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면서 변화된 교회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 작업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락교회에서 세웠던 중요한 방침은 세 가지였습니다. 먼저 교회가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고, 둘째로는 교회 조직이 너무 방대했기 때문에 교회 조직적인 면에서 많이 정리되어야겠다는 것을 목회의 이슈로 내걸었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 내적으로 여러 기구가 많이 통폐합이 되었습니다. 단적으로 예를 들면 매주마다 나오는 테이프 외에 설교 전단을 만들던 것을 없앴고, 하다못해 연말에 구역장, 권찰들에게 나눠주는 치약, 칫솔도 없앴습니다. 그리고 셋째로는 영락교회가 대외적인 일은 많이 했지만 환경적으로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컴퓨터로 얘기하면 하드웨어가 좋지 않아서 외적인 시설을 확보해야겠다는 의식을 갖고 목회를 했습니다. 그래서 50주년 기념관을 지었고, 중·고등학교에서 사용할 채플실을 지어주는 등의 일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교회를 떠날 생각을 했는데 교회에서 좀더 있기를 원하면 제가 프린스턴에 가서 1년 동안 쉬고 와서 교회 목회를 새롭게 시작해 보겠다고 하고, 50주년 끝나고 프린스턴에 가서 1년 공부를 했습니다. 1년 있다가 와보니까 제가 다시 목회를 한다는 것이 욕심인 것 같고, 목회를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는 여러 가지 영적 사인이 왔습니다. 장로님들이 극구 반대하여 연대서명까지 해서 ‘계셔야 한다’고 했지만 그냥 일방적으로 정리하고 50주년 마무리를 끝으로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렇게 하고 제가 유럽에서 8개월 정도 있었죠. 이런 것들이 영락교회를 사임하게 된 배경이 되죠.

▶ 대형교회 목회가 너무 힘들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지금 목회하고 계시는 주님의 교회도 큰 교회에 속하지 않습니까?

- 이 교회는 영락교회와 비교할 때 한 교구에 불과하죠. 지금 교인이 성인만 3천3백여 명 정도 됩니다. 중형교회라고 볼 수 있지요.

▶ 특별히 이 교회를 담임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지요?

- 저는 영락교회 담임을 그만두면 기존 교회 목회는 안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남대문교회와 영락교회 목회를 하면서 저 나름대로 특수한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유럽에 있을 때 주님의 교회 전임 목사님이신 이재철 목사님이 세 번이나 찾아와서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거절하다가 세번째는 ‘한 1년만 강단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유럽에 있을 당시 생각하기를 한국에 가면 여수에 있는 애양원에 가서 봉사를 하려고 했는데 목사님이 오셔서 주일만 설교해 달라고 해서, 1년 약속을 하고 강단만 지킬 생각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교회에 와서 6개월 동안 설교를 하다보니 ‘교회를 어느 정도 기틀을 잡아야지 지금 떠나면 안 되겠다, 일년 동안 이런 식으로 설교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 새 건물을 짓고 옮기는 과정이었고, 교회 빚도 있었습니다. 저는 저를 보내신 뜻이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동기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더 이상 특별한 동기는 없습니다.

▶ 이제 또 목사님 계획하신 대로 기틀이 잡히면 목사님 가고 싶은 대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 최종적인 결정을 한 번 하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해 놓은 것이 있어서. 그래야 영락교회를 그만둔 보람도 있을 것 같고. 여기가 최종적인 종착지점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 개신교 목사님인데도 목사님을 뵈면 수도사적인 느낌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그것이 목사님 스스로의 영성과 관련된 것인지요, 또 목사님의 이미지와 잘 맞다고 생각이 드십니까?

- 제가 가끔 그런 얘기를 듣는데 제가 특별히 수도사적인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목회자로서 구도자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하나님에 대한 탐구를 진지하게 해 가는 한 사람입니다. 목회자의 주된 관심이 아무래도 하나님과 인간이니까 인간과 하나님에 대한 탐구를 평생 해 간다는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 할 일도 그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 평생 목표는 제 자신이 되어 가는 거예요. 남을 모방하지 않고, 내 삶을 이해하며 내가 내가 되어가면서 목사로서 일하는 것, 그것에 제 삶의 초점을 맞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적으로 수도사적인 모습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 한국교회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마치 제가 한국교회에 대하여 판단자 같은 생각이 들어 저 자신도 그런 말을 하기 싫습니다. 마치 내 잘못을 남에게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그래도 중요한 질문이기에 묻습니다. 목사님께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대형교회를 맡으셨고, 지금 이 교회를 맡고 계시는데 목사님이 보시는 한국교회의 건강도는 어떻습니까?

- 제가 영락교회에 있을 때 한 동창 목사님과 얘기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그 분의 말은 ‘과거에는 우리가 한국교회에서 우리 위의 세대들을 비판만 하면서 살았는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서 이제 우리가 비판을 받는 자리에 와 있다’고 하던 말입니다. 이 얘기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렇구나.’ ‘예전에는 위의 분들을 비판만 했는데 이제는 우리 위에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가 그 위에 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책임감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영락교회 담임 목사로 있으면서 특별히 느낀 점은 영락교회는 한국교회 전체를 볼 수 있는 전망대(VIEW POINT)가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영락교회 목사가 되니까 한국교회 전체를 한 시야로 볼 수 있는 관점이 생기더군요. 거기서 보았던 한국교회의 모습은 영성이 매우 혼돈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개개가 힘은 있는데 교회마다 지나친 개인적인 체험에 기반을 둔 목회를 하거나 극단적으로는 지엽적이고 폐쇄적인 교리에 기반을 둔 목회를 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왜 그렇게 되어갈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원인을 깊이 따져보니 교회들이 너무 경쟁심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회자들이 자기 나름대로 뭔가 독특성을 내세우려고 하는 중압감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 그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런 면이 영성과 관련해서 혼란을 주는 것일 수도 있고,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너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외적 성장 제일주의로 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목회가 돈과 사업성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거기에 자꾸 목표를 두고 있으니까 교회의 건전성이 약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중심해서 자꾸 서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 본질이 많이 희석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본질에 있어서 한국교회는 많은 반성을 해야 합니다. 영락교회에 있으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도 그것입니다.

▶ 좀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데요.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일 터인데, 그것이 교회 역사가 짧아서 그럴까요, 신학교에서부터 바르게 못 가르쳐서 일까요, 아니면 우리 민족성 때문일까요?

- 그것은 복합적이라고 볼 수 있겠죠. 우리가 너무 근대화 과정에서 외형 중심의 경제 성장이 되면서 교회가 그 바람을 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 후보자나 목회자들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교회 현장에 들어간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봅니다. 자기 정립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 정립은 평생 해야 하지만 그러나 신학교를 졸업하는 사람들조차 그 아이덴티티(identity)가 결핍되어 있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 그 정체성의 부분도 신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형성되는 부분과 들어가서 형성되는 부분이 있다고 볼 때, 그래도 신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확실하게 정립시켜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그렇죠. 그런 면에서 우리 나라 신학교육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해 볼 때 우리 나라 신학교육 M.Div 3년 가지고는 상당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신학교의 학부 제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냥 M.Div 제도만 있어도 괜찮다고 보는데, M.Div 과정은 신학 기본적인 것을 공부하게 하고, Th.M 과정을 현재의 교과과정에서 통합적인 영성 목회자를 만드는 과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M.Div 마치고 공부 더 할 분들은 ‘나는 신약학이다, 교회사다’ 하며 자꾸 나뉘는데 그렇게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목회 현장은 통합적인 장인데 그에 맞는 통합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M.Div과정 3년과 함께 그 다음 2년 과정이 현재는 목사와 인간(PASTOR, PERSON) 두 가지 중에서 주로 목사의 문제에만 목표를 두는데, 목사 이전에 인간의 문제가 크단 말입니다. 목사의 문제가 기능적이라면 인간의 문제는 하나의 인격적인 요소인데, 목사가 되는 데 필요한 인간 교육이 좀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 제가 볼 때는 오늘날 신학교가 학문적인 것만 추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학자보다는 좋은 목회자를 양성해야 하는 것이 신학교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희 교단만 해도 목회자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보다 신학자적 측면만 더 강조하는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 그래서 제가 얘기하는 것이 M.Div 끝나고 학자 양성에 힘쓸 것이 아니라 목회자 양성에 될 수 있는 한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영적 지도력(Spiritual Leadership)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훈련과 병행된 교육을 하자는 겁니다.

▶ 그런 면에서 볼 때 오히려 신학대학교에서 대학 4년을 보내는 편이 M.Div 3년만 신학교에서 보낸 사람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시간 속에서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점에서 목회를 하는 데 장점이 될 듯한데요?

- 그렇지 않죠. 신학대학이라도 대학부에서는 일반 대학 과정의 기능을 하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M.Div 과정은 신학학부 4년 하고 나서 역시 그분들이 들어와서 신학의 원리들을 익히게 됩니다. 그러니 M.Div 과정 다음에 1년 내지 2년 동안 집중적이고 통합적인 영적 리더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제가 볼 때는 3년 M.Div 과정에서는 신학의 기본적인 것만 하는데도 힘과 에너지가 소진되기 때문에 영적인 훈련을 위한 시간이나 인격훈련을 할 여유가 더 없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대학부에서부터 그런 훈련을 받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 어쨌든 M.Div 과정을 끝내고 1년이나 2년은 집중적으로 목회학적이고 통합적인 목회와 윤리, 리더십, 영성의 문제, 목회 상담, 성서보는 법, 설교방법 등의 훈련을 그 과정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사이비 이단 연구를 통해 볼 때 이단문제는 목회자 문제로 보입니다. 지금 목사님 말씀하신 것은 제도적인 측면에서 하신 말씀이 강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오늘날 신학교의 질적 문제도 많이 있다고 봅니다. 근원이 잘못되면 나머지가 다 잘못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그렇죠. 그것도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대부분 한국의 신학교 교수가 외국에서 학위 과정을 하고 오면 교수 요원이 되기 위한 형식적인 3년 목회 과정을 끝내고 주로 교수로 옵니다. 신앙은 상당한 과정을 통해서 걸러지고 형성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학문적인 것만 추구해선 안 됩니다. 독일의 기독교 역사를 보면 학문적으로 지엽적인 것 하나를 가지고 교회에 적용을 시키려 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결국 통합적인 교육이 안 된다는 겁니다.

들은 얘기지만 영국 같은 곳에서는 교수 하려고 하면 최소한도 10년은 목회를 하고 신학교 강단에 선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 프린스턴의 총장 토마스 길레스피(Thomas-Gill espie)가 20년 목회를 하고 프린스턴 총장으로 왔습니다. 토마스 길레스피가 총장으로 온 다음에는 학교 교육이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학문과 경건이 통합된 방향으로 간다는 얘기죠.

학문과 경건은 말만으로는 안 됩니다. 교수의 인격을 통해서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신약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신약학을 가르쳐도 어느 정도 전체적인 통합성 속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평생 그것만 알고 가르치는 것은 문제입니다. 조직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체 속에서 조직신학을 이해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교수로서의 캐리어가 필요한데 우리 신학교 교육에는 그런 점이 너무나 약합니다.

▶ 교수님들이 형식적으로 목회를 2년 동안 하고 교수로 부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신학교 교수들을 향해 ‘당신들이 목회에 대해 뭘 아느냐?’라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신학교 교수님들은 교수가 목회를 알아야 한다는 말에 형식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육과 목회가 완전히 이원화되는 현상을 보이는데 이런 모습으로는 신학을 5년을 하나 10년을 하나 마찬가지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 그러나 신학교육을 그렇게라도 바꿔가면 많은 것들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원고를 준비해서 ‘신학과 교회’라는 곳에 한 번 내려고 생각중입니다.

▶ 주제를 바꿔 볼까 합니다. 목사님께서 영락교회를 통해서 한국교회를 보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50명 미만의 교인들을 가진 교회가 통합측이 50-60%라고 합니다(정확한 통계는 아닙니다만). 그러면 한국교회 70여% 이상이 50명 미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형교회를 통해서 작은 교회가 안 보이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요? 영락교회에서 조직의 간소화 문제나 하드웨어 문제는 가시적으로 쉽게 될 수 있겠지만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부분들은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 오래된 교회들의 문제점이 몇 가지 있는데 상당히 경직되어 있고, 굳어 있고, 변화에 대해서 둔감하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교회가 되려고 노력한 결과 영락교회나 남대문 교회, 두 교회 모두 목회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이루어졌습니다. 오히려 이런 교회들이 더 잘 흡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반면 지금 새롭게 형성되는 교회들보다도 더 쉽게 받아들이고, 잘 깨닫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신앙의 연륜과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 형성된 교회는 어떤 면에서 신앙의 기본부터 배워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대형교회의 경우 목회자의 의지와 장로님들이 목사님께 바라는 요구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실질적으로 영적인 주도권이 목회자에게 있을 때 장로님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목사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 그 부분은 현실적으로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주님의 교회도 역사가 얼마 안 되는 교회인데도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락교회에 부임해서 6개월 동안 목회의 모델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나서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영락교회 같은 대형교회는 장로군과 목사군이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상당한 견제와 갈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나 생각해 보니까 목사와 장로들이 만나는 장이 전부 다 갈등의 장입니다. 예를 들어 1년에 한번 장로와 목회자가 만나는 목회 세미나를 한다고 합시다. 그 때는 밖에 나가서 침식을 하는데 장로들이 목사를 청문회하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장로들이 뭐하나 딱 쥐고 있다가 그 때를 기해서 터뜨리는 그런 식입니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당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당히 갈등이 많습니다. 그래서 부임하고 나서 그 다음해부터는 한 것이 당회원 영성훈련이었습니다. 그 때는 교회 이야기 일체 하지 않고, 넥타이 다 풀고 목사 장로들이 다 나와서 영성훈련을 했습니다.

▶ 효과가 있었습니까?

- 상당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많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 후로는 당회 시간이 많이 줄어들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형식과 표면을 넘어선 기쁨이 있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목사와 장로의 이해가 많이 깊어졌습니다. 당회 시간이 줄다보니 어떤 때는 한 시간 내에 당회가 끝날 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당회원간의 갈등을 줄이는 실제적인 방안도 필요합니다. 우선 중요한 것은 교회가 사업체를 많이 갖고 있지 않아야 한다고 봅니다. 대형교회는 때로 한 교단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됩니다. 거기서 오는 갈등이 많습니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다’는 식이죠. 교회가 그런 일도 하긴 해야겠지만 그런 것들은 떼어내야 합니다. 대형교회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전부 독립시켜야 할 것입니다. 지금 대형교회들은 하나의 기업화가 되었습니다. 전형적인 기업입니다.

▶ 지금 장로교는 당장 목회자와 장로와의 갈등이 심합니다. 장로교가 많은 장점을 가졌으면서도 문제가 많이 나타납니다. 칼자루를 목사 쪽에서 쥐면 목사가 타락하기 쉽고, 장로 쪽으로 가면 장로들이 잘못되기 쉽다고 봅니다. 그래도 다른 교파의 경우 목회자의 역량이 있으면 그 사람의 역량만큼 교회가 성장하고 활성화되는데 반하여 장로교는 당회 문제에서 걸리면 목회자가 발목이 잡혀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장로교의 제도 자체를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한국교회, 특히 장로교의 경우에는 교회 문제가 평신도의 문제라기보다는 목사와 장로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장로교의 장로들은 자꾸 자신들을 주식회사의 이사나 주주로 생각하고 목사들은 하나의 고용인으로 생각하는데 그 사고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에 와서도 이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우리가 그 사고방식을 바꾸자고 했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얘기한 대로 영성 훈련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기존의 장로교의 틀 갖고는 힘듭니다. 개교회적으로도 바뀌어야 하지만 총회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장로님들의 임기제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임기제도만 갖고도 안 됩니다. 더 적극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이 교회에 오래 있지 않더라도, 장로들의 근본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이 교회의 틀을 바꿔 나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직회는 재정 문제만 다루고, 당회는 목회적인 정책 문제만 다루어 교회를 사역 중심의 모델로 바꿔 보려고 합니다. 장로들을 자꾸 행정적인 영역에만 묶어 두니까 문제가 커지는 것입니다. 이젠 교회의 틀도 바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재정이나 관리를 맡은 장로가 있으면 다른 장로들은 구체적으로 교회의 사역에 참여해서 일을 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며 생겨난 것이 ‘셀 교회’(Cell Church) 형태인데요. 그 부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 제가 셀 교회는 잘 모릅니다. 가보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그 셀이라는 것을 장로교로 말하면 구역 조직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사역 모델은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영락교회를 사임하면서도 말했는데 만일 제가 새롭게 개척교회를 한다면 ‘이런 모델로 할 것이다’ 하는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그런 유형으로 이 교회를 바꿔가려고 합니다.

현재 몸담고 있는 이 주님의 교회도 아직 굳어지지 않은 교회니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교회는 건물은 없지만 영락교회와 비슷한 소프트웨어를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건물도 있어야 하는 구조입니다. 자체 건물이 없는 교회인데 건물 있는 교회처럼 만들어진 제도들은 바꿔야 합니다. 이것은 많은 저항이 있기 때문에 기존 교회에서는 힘듭니다. 그래서 앞으로 제가 권하고 싶은 것은 기존 교회는 기존 교회대로 건전성을 쇄신하고, 새로운 교회는 새 물결을 일으키면 좋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 시작하는 교회들이 너무 목회자 중심의 교회가 되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새로 시작하는 교회에 위험스러운 요소가 있다면 목회자가 절대 군주와 같은 파워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교회는 또 많은 유형의 위험성에 빠진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목회를 해 낼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M.Div만 갖고는 안 됩니다.

▶ 제가 볼 때는 교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는 목회자의 카리스마가 절대적으로 요청된다고 봅니다. 그러니 차라리 현재 카리스마가 있는 대형교회 목사님들께서 그 카리스마를 잘 이용해서 더 좋은 모델을 제시해 가면 한국교회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떠신지요?

- 그래서 영락교회에 있을 때 협동목사(CO-PASTOR) 제도라든가, 전임 목사 제도를 시도해 봤습니다.

▶ 시도만 하고 실패하고 말지 않았나요?

- 그러나 그 시도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봅니다. 실패라기보다는 협동 목사 제도를 통해서 전담목회를 굳혀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델은 얼마든지 기존교회에서 가능합니다. 이것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형교회는 교회에서 하는 많은 기관을 떼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 어렵습니다. 그런 것을 근본적으로 포기하고 독립시킬 수 있는 가운데 새롭게 뭘 할 수 있다고 봅니다.

▶ 독립시키지 못하는 것은 아까워서일까요, 더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일까요?

- 복합적이죠. 미국같은 곳에서는 개교회에서 양로원을 지을 경우 교회에서 시설을 하고 나서 이사나 운영은 그 지역에 맡깁니다. 그리고는 손을 안 댑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은 대형교회들이 그러지 못하고 소유에 대한 집념을 보이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목사님께 영향을 주었던 인물과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 책으로는 대표적인 것 중에 신학하기 전에 읽었던 스탠리 존스 목사님의 <인격변화의 길>이 있고, 칼 바르트, 폴 튜니어, 칼 융, 몰트만, 헬무트 틸리케, 그런 분들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 그 책들 속에 오늘 목사님의 영성에 영향을 끼친 것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 목사의 인격 형성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신학교 M.Div를 마치고 제일 요구되었던 문제가 ‘기독교적인 삶이 무엇일까?’라는 거였습니다. 그에 대해 연세대 신대원에서 기독교 윤리 2년 과정을 공부하면서 헬무트 틸리케의 책을 많이 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 문제를 현실적으로 더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칼 융을 부여 잡게 되었습니다. 융을 만나면서 윤리가 필요없게 됐는가 하면 윤리가 인간이해에 있어서 재구성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나서 융 연구소까지 갔다가 영성의 문제에 대해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서를 해석하는 문제에 걸려서 영성 문제를 파게 되고, 교회의 여러 현실문제와 관련한 목회학적인 문제의 과정을 겪으면서 통합적인 영성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가 처음에는 전도폭발 등의 아주 부분적인 것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통합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영적으로 많이 성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목사는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평생을 진지하게 하나님과 대면하며, 진지하게 목회하다가 은퇴할 때에 그래도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인격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 그렇다고 하더군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항상 과정 속에 있으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목사님께서 목사의 인격으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적어도 가장 절박하고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 첫째는 너무 한국의 목회자들에게 본질을 추구하는 자세가 결핍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너무 없습니다. 그 다음에 여러 가지 원인을 얘기할 수 있겠습니만 그것은 저도 사실 똑같은 경험을 하며 똑같은 느낌을 가졌던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허상을 깨닫고 거기에 걸려들지 않았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런 점에서 깨닫지 못했다면 저도 같은 과정을 겪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처음 목회 임지에 갔을 때 그 교회가 아주 작았는데, 그 교회가 나에게 필수과목처럼 요구하는 것이 있었다고 느낍니다. 빨리 많은 수의 교인으로 부흥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교회 짓고, 그 때만 해도 상용여권 갖는다는 것이 어려웠는데 빨리 상용여권 만들어 외국을 드나들어야 한다, 그리고 학위도 빨리 하나 가져야 하고, 그 다음에 노회나 총회적으로 빨리 발을 딛고 나서야 한다,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타는 차는 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체를 악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한국교회의 분위기에 나를 던지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굉장한 허무와 무의미에 빠질 것 같았습니다. 목회를 한다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묻고 하나님께 응답해 가는 내가 되고 싶었는데, 그런 한국교회 분위기에 맞추다 보면 내가 원했던 것을 하나도 못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노회 활동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나는 학위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 대신 내 나름대로 ‘내 페이스’로 바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목회를 해 왔습니다.

내가 만일 큰 교회나 학위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나도 똑같은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 목사님들에게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대형교회를 지향하지 말자”, “학위를 받는 데 집착하지 말자”가 아닙니다. 이제는 “본질로 돌아가자”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 저희 교회 부교역자들만 봐도, Th.M을 하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에서 청빙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분위기는 상당히 중요한 것인데 현재 한국교회 분위기가 그렇게 되어 간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저도 처음에 목회를 할 때에도 그런 분위기 앞에 섰던 적이 있습니다. 그 분위기에 빨려 들어가느냐 아니냐, 그 갈등이 많았습니다.

▶ 저는 목사님보다 어린 목사로서, 어떤 욕심은 버릴 수 있었는데 또 어떤 욕심은 버리기 상당히 힘든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 속에 욕심을 보면 ‘내가 욕심이 많구나’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반대로 욕심 없는 부분에 대하여, 정직하게 ‘욕심이 없어서 없는 것이냐? 욕심이 많아서 욕심이 없는 것이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욕심을 버릴 수 있었던 동기가 있었습니까?

- 저는 욕심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게도 야망(ambition)이 있었는데 그 초점이 다른 것이었을 뿐입니다. ‘내가 나 되어가는 것’ 그것에 저는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상과 야망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저의 이상은 빨리 교회를 크게 하고 노회적으로 출세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실 저에게 하나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내 존재의 의미를 주는 것은 늘 인간의 문제, 내 내면의 문제, 신의 문제에 대해 탐구를 하면서 그것을 갖고 사람들에게 얘기하며 그런 것으로 살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각도가 좀 다른 것입니다.

▶ 다른 종교와 비교할 필요는 없지만 기독교가 다른 종교보다는 윤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기독교가 사회 복지에서 손을 떼면 이 나라의 복지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윤리문제로 도전을 많이 받습니다. 윤리와 신앙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 이것은 깊은 문제입니다. 지금 기독교의 문제는, 특히 목회자들의 문제는 목사직에 대한 허무성의 문제가 상당히 큽니다. 종교 다원주의 시대가 되면서 ‘기독교의 이 시대적 의미가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많은 도전과 부담을 줍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서 우리가 정직하지 않으면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게 되고 목회직은 허세에 빠지기 쉽습니다. 대형 교회건, 소형 교회건 간에 ‘오늘 이 시대 앞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정직하고 명백하게 정리하며 강단에 서는가’라는 문제는 아주 심각한 과제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기독교의 위기는 기독교제도의 위기라기보다는 좀더 깊이 들어가면 이런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의 강단에서 외칩니다. ‘불교는 구원이 없습니다, 힌두교도 구원이 없습니다’라고 자꾸 남에게는 구원이 없고, 자기에게는 구원이 있다고 하면서 ‘예수, 예수’ 하거든요. 복음주의적 설교는 ‘예수’라는 말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기독교가 이 시대에 구원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종교라고 생각한다면 그에 대한 분명한 대안을 얘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보편적이면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어떤 독선적인 교리 말고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기독교의 문제는, 모슬림이나 불교에 구원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기독교가 정체성(identity) 자체를 상실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오늘 목회자들의 허세감과 초조감의 내면에는 바로 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봅니다. 목회자 정체성의 문제는 자기 영성의 확립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오늘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목회자들이 원하는 대형교회를 이룬다고 칩시다. 그 다음에 오는 문제는 내용의 문제입니다.

융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세 종류라고 했습니다. 한 종류는 기존의 진부한 기독교에 대해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남아 있는 부류, 그 다음 두번째는 오늘의 과학 시대에 철저히 적응하면서 기독교 신앙에 대해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되 그 진부한 것을 재해석해 주기 바라는 부류, 즉 천당과 지옥의 개념이 없어진 시대에 천당의 의미가 무엇이고 지옥의 개념이 무엇인지 알아들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해석해 주길 바라는 부류, 그리고 나머지 한 부류는 오늘의 이 사회의 현실에 바쁘게 적응하면서 신앙에 대한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않는 부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도 첫째 부류보다는 둘째 셋째 부류가 많아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목회 현장이 그렇습니다. 이것이 목회자들에게 도전이 됩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을 만나면 공허성, 막연한 영성, 진부한 교육에 의해서 자기 자신도 내면으로 동의가 되지 않는 것을 부여 잡고 있으면서 목회의 현장을 지켜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니까 자꾸 사이비나 이단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 새 돈은 숨어 있고 세상에 돌아가는 돈은 헌 돈밖에 없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비록 진실하게 어떤 운동을 일으키려 하면 영웅심으로 일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다 보니 진실하고 맑은 분들은 무슨 일을 하려고 하기보다 더욱 은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 처방이라면 신학교육의 재정립을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목사님들의 재교육 프로그램을 얘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뜻이 있는 목사님들이 그런 목회 모델을 보여 줘야 합니다. ‘저런 목회도 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게 말입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한 목사님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분은 한국에 오기가 무척이나 두려웠는데 저를 보고 힘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저 임목사 같은 분은 한국에서 배겨나지 못할 분인데 그래도 영락교회에서도 배겨나는 것(웃음)을 보니 나도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볼 때 저 같은 스타일은 한국에서 실패한다고 단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희망사항을 보여 주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큰 교회 목사의 모습을 정형화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가 자기 길을 정직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성의 문제입니다. 정직한 길을 걸어도 된다는 희망을 갖고 가야 하며,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 희망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 오늘날 영성운동이 한국교회에 대두되고 있는데 목사님은 영성운동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 영성운동에 대해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오늘날 영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영성훈련을 한다기보다 자기 교회를 결속하고 부흥시키고 성공시키는 도구로서 활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 그래요. 그런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보다 교회가 그런 면에서 눈을 뜬다는 것은 희망적입니다. 또 하나 희망적인 것은 오늘날 교인들이 ‘대형교회’나 ‘축복’ 그런 것보다는 뭔가 본질을 추구하기 원하는 모습을 봅니다. 축복보다는 바른 삶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 오히려 불안할 만큼 그렇습니다. 교회가 큰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큰 것인데 큰 것 자체를 부정하고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을 만큼 강하다고 봅니다.

- 몰트만이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은퇴할 때 학생들이 ‘21 세기에 독일 국가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몰트만의 대답이 ‘21세기에 국가 교회는 다 망한다’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했을 때 ‘자네들이 21세기에 가서 새 교회를 만들게’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기존 교회 문제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영락교회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공공연하게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영락교회 같은 이 공룡을 밀고 가려고 하지 말고, 자네들이 미래에 영락교회를 새로운 교회로 만들라고 말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우리의 희망은 기존 교회들이 아닙니다. 세습의 문제 등등 보십시오. 기존 교회를 개혁한다고 하는 것은 에너지와 시간 낭비입니다. 기존 교회는 갱신으로 끝내야 합니다. 그런 교회는 그런 교회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 대신에 건전한 목회자들이 나와서 새로운 유형의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기독교 자체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약점 많은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을 볼 때, 교회에 대해 비관적 자세보다는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잘못을 지적하고 스스로 반성하고 계속 도전하고 또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된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 그런 교회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계속 갱신시켜 가야 합니다. 전에 목회자 모임이 있어서 얘기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일산에서 목회하는 한 분이 자신은 개척한 지 10여 년이 됐는데 아직 당회도 조직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자신은 아주 희망적인 목회를 하는 것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기성 교회에서 목회하는 분들이 그 얘기를 듣고 갈등을 느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10년 동안 목회하면서 장로를 안 세웠다는 것이 무슨 자랑인가?’ ‘왜 혼자 해 먹느냐, 장로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얘기를 했는데 기성 교회를 저 목사님처럼 목회하면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결국 오래된 교회는 오래된 교회대로 역사와 전통이 있으니까 긍정하고 들어 가야하고 오히려 그곳에서 목회하는 것을 긍지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이수영 목사가 새문안교회로 간 것을 상당히 긍지로 생각합니다. 새문안교회 당회가 힘들든 힘들지 않든 간에 새문안교회는 나름대로 한국역사 앞에서 지켜온 것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니까 목회자들이 기성교회의 그 틀을 깨는 데 에너지를 쏟지 말고 그것을 갱신해서 건강한 제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오래된 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을 오히려 긍지로 생각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장로와 목사가 갈등이 있으면 그것을 다른 면으로 적절히 풀어가는 리더십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목사가 마음대로 목회하는 교회들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으로는 목사가 마음대로 하지 않으면서도 목회를 평화롭게 하는 것을 자랑할 수 있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의 한국교회 풍토는 목사 마음대로 목회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도 이 교회에서 나를 데려다 놓고 대형교회를 바란다고 한다면 이 교회를 시작한 의미가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대형교회를 바라지 말고 알맞은 교회를 만들어가자고 도전했습니다.

▶ 목사님께서 영락교회를 통해 한국교회의 모습을 진단하셨다면, 저는 사이비 이단 문제를 통해서 한국교회를 더 잘 진단하고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사이비 이단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이비 교주들이 돈을 착취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고마운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만약 그 돈을 선하게 쓰면 기독교보다 더 선하게 비칠까봐 두려울 정도입니다. 현재 그들의 힘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입니다. 사이비 이단들이 판을 치는데 이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십시오.

- 사이비 이단 문제는 그것을 밝히고 교인들에게 주지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목회자들이 교인들에게 영적으로 만족을 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독교의 위기는 제도의 위기도 있습니다만 결국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회가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달하는 것이 교회 내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단 문제도 해결되리라고 봅니다.

▶ 교회가 교회다워지면 이단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죠. 마치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면 질병이 생기지 않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급성 전염병처럼 사이비 이단 문제가 번져간다는 점입니다. 이재록 씨의 경우 기독교방송, 극동방송에 계속해서 출현하였고 대형집회의 강사로 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기독교가 이렇게 곤욕을 치르게 된 것입니다. 미리 그의 이단성을 밝혀 줬다면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 것으로 봅니다. 이단 사이비들이 기성교회가 무관심한 틈을 타 일단 성장하기만 하면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이비 이단 문제에 대하여 불만스러울 만큼 무관심합니다. 그냥 말세의 한 가지 현상으로 받아서 그런지, 내 교회만 생각하는 이기심 때문인지, 용기가 없어서 그런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 중심으로 이단 문제를 연구하고 대처하게 하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 사람의 약점으로 인해 교회가 어렵게 되고 또 그 사람을 희생시킬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교적 열정이 있는 한국교회가 조금만 힘을 기울이면 상당한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단 사이비를 막는 일에 관심이 없는지 의아합니다. 이단과 사이비를 구별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이단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기독교 자체의 문제로 본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 목회자들이 의도적으로 이 문제를 회피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적극적으로 목양을 하고 이단 문제에 관한한 총회적인 대응을 바라는 것 아닐까요? 앞으로 총회나 노회에서 그런 부분이 약화된다면 보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습니까? 특별히 이 부분에 소명을 가진 분들이라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제가 볼 때 이단은 더욱 많아질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더욱 영적으로 혼란스럽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단에 대한 대처도 중요하고, 더 중요한 일은 조금 전에 말한 대로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물량중심에서 바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좀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마 더욱 혼란에 빠질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목사님이 하시는 일은 누구나 추구하는 길이 아니기에 외로운 길입니다. 순교자적 자세를 갖고 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의 현실이 많은 갈등과 암담함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이비 이단 문제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부름받은 자로서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해야겠습니다. 어려움과 좌절도 있겠지만 이단 문제를 대처하시면서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늘 성령의 조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기를 부탁합니다. 저도 관심을 가지고 협조하겠습니다.

(월간 <교회와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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