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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
작성자 : 운영자(kylggc@hanmail.net)  작성일 : 2008-06-07   조회수 : 90
팀 슈뢰더
(Tim Schroeder)┃
캐나다 트리니티침례교회 담임목사



[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들 ]
나는 오늘 밤 여러분이 진정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몇 년 전 나는 처음으로 시카고를 방문했었습니다. 나는 서부 캐나다의 작은 도시에서 살던 젊은 목사였고, 큰 도시로 혼자 여행을 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우리 교단 사무실이 시카고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어떤 회의가 있었습니다. 혼자 이곳까지 온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었고, 그래서 나는 약간 긴장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금방 회의에 익숙해졌고, 모든 것들은 잘 진행되었습니다.

토요일 점심 때 회의가 전부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나는 시카고 시내를 한번 둘러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나는 시카고컵스팀의 경기를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불안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곳 경기장 근처에는 절대로 가지 말게나”, “그 근처 사람들은 캐나다 사람들에게 바가지를 씌운다네” 등등의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자동차를 빌린 후 지도를 보고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잠시 후 나는 리글리(Wrigley) 구장 밖에서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나이가 지긋한 부인이 저쪽 옆에서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눈길을 무시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녀는 계속 나를 바라보더니 결국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그녀는 나이가 칠십이나 되었지만 아주 명랑하고 혈기가 왕성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젊은 양반, 표를 한 장만 살 건가요?” 그래서 내가 그렇다고 하니까, 다시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당신에게 표를 팔지요.”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런 식으로 표를 산다는 것은 무척 불안하다고 솔직히 그녀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오, 걱정할 것 없어요. 나는 암표 파는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은 내 옆에 앉아서 경기를 볼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베티(Betty)였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몇 년 동안 쓸 수 있는 지정석 시즌 티켓을 사 두었습니다. 그들의 자리는 바로 시카고컵스팀의 선수대기실 뒤쪽 두 번째 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시즌에 그녀의 남편이 죽었고, 그 이후로 베티는 계속 혼자 경기를 보러 왔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날 계속 줄 옆에 서서는 표를 한 장만 사려고 하는 사람 중에서 말쑥하게 생긴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나머지 표를 팔려고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베티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나는 베티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자리들은 정말 훌륭한 것이었고,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베티를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 중 대부분은 그녀를 껴안거나 키스를 하며 그녀를 반겼습니다. 그녀는 곧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습니다.

“자, 여러분, 내 친구 팀(Tim)을 소개합니다. 캐나다에서 왔어요. 블루제이스(Blue Jays)를 응원하는 게 흠이긴 하지만, 그것만 빼고는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에요.” 시합 도중 베티는 내게 시카고에는 왜 왔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냥 사업 때문이라고 말하고 그게 어떤 종류의 사업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시합이 중반을 넘어서자 모든 사람들은 경기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컵스는 형편없이 지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것이 그 해의 경기들 중 최악의 것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해는 컵스에게 있어서 가장 형편없는 해였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기에 흥미를 잃은 주위의 사람들은 다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의 주제는 베티가 경기 때 데리고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그 사람들에 대해 대개 호의적이었지만 한 사람에 대해서만은 예외였습니다. 바로 내 앞에 앉아 있던 젊은 변호사가 말했습니다. “베티, 당신은 항상 훌륭한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오는데, 딱 한 번은 어떤 목사를 데리고 들어온 적이 있었어요.”

“세상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있다니!”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의미했던 것은 정반대였습니다. 그 변호사는 계속 말했습니다. “그 날은 끔찍했어요. 정말이지 맹세코 말하지만, 그 사람이 나를 한 번 쳐다볼 때마다 컵스 타자들이 삼진 아웃을 당해 나갔어요. 내가 여섯 번째 맥주를 주문했을 때, 그 목사가 어떤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는지 당신도 그 얼굴을 봤어야 해요.”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베티, 다시는 그런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지 마세요. 제가 당신께 바라는 것은 여기 있는 이 팀(Tim)처럼 멋지고 정상적인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는 거예요.”

청년 목사였던 나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 앞과 여러분들 앞에서 정직하게 고백을 하자면, 만약 그 날 나중에 베티가 내 직업에 대해 물었다면 나는 거짓말을 했을 것입니다. 나는 도망치듯이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캐나다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몇 시간 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슨 짓을 했기에 사람들이 목사에 대해 저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무슨 일을 했기에 사람들이 교회와 기독교에 대해 저런 인상을 갖게 된 것일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고 하며 목에 걸고 있는 자화상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떤 모습의 그림일까?’

그 문제를 놓고 고민해야 했던 것은 그 때만이 아니었습니다. 몇 년 후 우리는 콜로나(Colona)의 어떤 시장 조사팀에 의뢰해서,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는 작업을 했습니다. 조사가 끝나고 그들이 내게 보고서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어느 날 사무실에 앉아서 그 보고서를 읽다가 나는 큰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질문들 가운데 하나는 “콜로나의 교회들에 대해 생각할 때, 당신의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교회는 어떤 것입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의 인지도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단히 많은 사람들은 “벤볼런헤리티지교회(Benvolan Heritage Church)”라고 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것은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내가 교인들에게 그 사실을 발표했을 때, 그들도 모두 기가 막혀서 숨을 쉬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으십니까? 벤볼런헤리티지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시내에 있는 옛 교회 건물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지금은 교인도 없고 목사도 없습니다. 물론 아무 집회도 없습니다. 그것은 목사도, 교인도, 아무 내용도 없는 그저 텅 빈 옛 교회 건물일 뿐입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머리 속에 떠오르는 교회 이름을 대라고 했을 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 텅 빈 교회 건물 이름을 댄 것입니다.

나는 그 모든 사실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우리는 사람들에게 괴상하고 낯선 존재로 취급받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백 년이나 된 빈 건물에게까지 참패를 당했다.’ 그 때 저는 성경 말씀 가운데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피고자 하는 본문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주님이 세우신 교회 ]
설문조사 보고서가 보여 준 것은 내가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던 교회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수없이 반복해서 자신에게 던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그리셨던, 그런 훌륭한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올바르게 사랑하고, 또 우리들 자신이 그 교회가 된다는 것은 도대체 우리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교회는 낯설고, 텅 비어 있고, 사람들과는 상관없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힘있고, 아름답고, 의미 있는 그런 교회이어야 합니다. 그 교회는 역동적이고 호소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그런 교회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음속에 그리시고 계획하셨던 그런 교회를 실제로 이룰 수 있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주님의 교회들을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까? 오늘밤 이 질문에 대해 몇 가지 가능한 대답들을 찾아보려 합니다. 지금 마태복음 16장을 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그리셨던 교회의 몇 가지 자격조건들 혹은 특징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자격조건들 혹은 특징들을 거울로 삼아 “지금 나는 어떻게 행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 그리셨던 교회의 첫 번째 특징은 그것이 세상 속의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저 밖의 세상 속에 세워진 교회 말입니다. 이런 교회는 우리가 자신들의 사명을 바로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3절은 겉보기에는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은 지리적 설명과 함께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이사랴 빌립보가 배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 부분을 그냥 넘어가지 마십시오. 이 지명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바로 그곳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그 당시 우상 숭배의 중심지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역사가들의 말에 따르자면, 그곳은 수리아의 바알 숭배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바로 그곳에 열 네 개나 되는 바알 신전들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것들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알에 대한 예배는 자주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들과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은 그 신전들 속에서 어떤 일들이 행해졌었는지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근처에는 커다란 언덕이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 깊은 동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굴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자연의 신 판(Pan)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이사랴 빌립보는 수리아의 바알 숭배와 관련된 모든 죄악들이 창궐했던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들 중 여러 가지가 시작되는 그런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이사랴 빌립보의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바로 그 동굴에서 요단강이 시작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말에 따르자면 이런 생각은 너무나 강력한 것이었기 때문에, 독실하고 경건한 유대인들은 누구나 그것을 믿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것을 자신들의 종교와 연관시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는 또한 헤롯 대제가 건축한 흰 대리석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황제들을 숭배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했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이것보다 더 극적인 상황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렇게 화려한 세상 종교들 속에서, 그들의 모든 역사와 세력의 한가운데서, 그리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들의 모든 부도덕한 범죄들의 한가운데서, 이제 겨우 열 두 명의 제자들을 거느린, 집도 없고 돈도 없던 나사렛 예수가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지만 누구든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복잡한 상황을 바라보며 “예, 옳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현대 교회가 부흥하고 번성하고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세상이 너무 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또 우리 시대가 교회에 대하여 너무 비호의적이며 반기독교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교회가 처음 세워질 당시의 상황은 우리의 이런 핑계를 무색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 죄악 가운데 세워진 교회 ]
이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 시점에서인가, 우리는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고자 하시는 곳은 바로 죄악이 가득한 비기독교 세계의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교회는 바로 그런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당신은 이와 같은 사명을 분명하게 깨닫고 있습니까?” 오트버그 목사님은 내가 약 십 년 동안 기마경찰대의 보조요원 혹은 예비요원으로 봉사했었다고 소개해 주셨습니다. 사실 나는 약 이 년 전에 그 일을 그만두고 은퇴했습니다. 그 때의 경험담을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어느 날 밤 근무를 서고 있는데, 사고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가 근무하던 곳은 과수원 지역인데, 긴 직선 도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과수원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직선 도로는 마지막 부분에서 구십 도로 꺾입니다. 바로 그 코너 부분에 관개수로가 있는데 그곳은 항상 물이 고여 있어서 늪지 비슷합니다. 그곳에서는 끔찍한 사고들이 여러 차례 일어났습니다. 몇 년 동안 그곳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고 직선 도로를 과속으로 달려오다가, 코너에서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늪지에 그냥 빠져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사이렌을 울리며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가까이 가면서 보니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바로 그 늪지에 차가 빠져 있었습니다. 별로 기독교인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늪지 속을 허우적거리며 걸으려니까 불평의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날 오후에 바지를 세탁소에서 찾았고, 장화도 이제 막 광을 낸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철벅거리며 늪지를 헤치고 걸어가서 자동차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차안에는 십대 아이들이 아니라 노인 부부가 앉아 있었습니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인이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를 들것에 실어서 내온 후 앰뷸런스에 태워 병원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남편을 경찰차에 태웠습니다. 차안에서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영감님,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어쩌다가 코너에서 늪지로 빠지셨어요?”

그는 아주 화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오늘 그 멍청한 검안사(檢眼師)에게 갔었지 않겠소? 그 사람이 만들어 준 이 멍청한 새 안경을 끼고 운전을 하는데, 도대체 앞이 보여야 말이지. 이중초점인지 삼중초점인지 하는 안경인데, 나는 솔직히 차를 몰면서 거기 코너가 있는 것도 못 봤다오. 그래서 그냥 계속 앞으로 달린 거지 뭐.”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그 사건을 웃음으로 넘기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우리가 길을 보지 못할 때, 우리가 참으로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할 지를 알지 못할 때, 다시 말해서 우리가 비전을 잃고 소명을 망각했을 때, 우리는 코너 부분에서 차를 돌리는 대신,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다가 늪지에 빠지게 됩니다. 그대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게 뭡니까? 우리는 단지 과거에 해 왔던 대로 전통에만 집착해서 일을 처리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고집이 너무나 세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들어선 이후에도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야 ‘아까 벌써 몇 킬로 전에 길을 잘못 들었구나’라고 깨닫게 됩니다.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고,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시는 그런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우리의 소명은, 바로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 한가운데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이고, 교회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두 번째 특징은 그것이 실제적인 세상 속에 세워질 뿐 아니라, 우리에 의해 세워지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우리들이 받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은혜들을 기억할 때에만 세워질 수 있습니다. 나는 이야기의 이 부분을 아주 좋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시험하셨습니다. 그들이 지금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이제 막 놀랍도록 화려한 바알 신전을 지나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가이사의 궁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기 위해 그 안을 기웃거렸는지도 모릅니다.

그곳 신문 가판대에서는 어떤 그리스 여신의 최근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순박한 어부들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가이사랴 빌립보의 이런 모든 광경에 푹 빠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들이 마법에 홀린 것처럼 넋을 잃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법을 풀어 주십니다. “자, 얘들아, 나를 쳐다보거라. 사람들은 내가 누구라고 말하느냐?” 예수님이 그들에게서 얻으신 대답은 우리가 우드필드(Woodfield) 쇼핑몰에서 사람들에게 물어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은 대답들이었습니다.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사람들은 그분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종교적 스승이나 선지자라고는 생각했지만, 정말로 그분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대답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실상을 설명해 주시는 대신, “그러면 너희는 어떠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문제를 계속 탐구해 보기로 합시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여기서 ‘이 반석’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자, 이제 내가 너의 인생을 바꾸겠다. 내가 너를 변화시키겠다. 너는 이제 베드로이다. 너는 지금까지 시몬이었고, 시몬은 문제 투성이의 배경과 결점들 그리고 충동적인 죄악들과 실패들로 가득 찬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의 눈을 여셨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너는 내가 참으로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고, 네 자신이 변한 것도 보게 되었다. 베드로야, 바로 그 하나님의 은혜 위에, 그 반석 위에 나는 나의 교회를 세울 것이다.”

우리는 이 원칙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누구인지를 보게 된 사람들을 통해 세워집니다. 그 은혜 위에, 그 반석 위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세우십니다. 내가 올바로 이해를 하고 있다면, 그 반석은 바로 저와 여러분을 가리킵니다.



[ 주님이 교회를 세우시는 법칙 ]
몇 년 전에 나는 친구에게서 중고 오토바이를 한 대 샀습니다. 그 친구는 당시 내가 살고 있던 도시에서 백 마일도 더 떨어진 어떤 한적한 목초지에서 살고 있었고,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그곳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나게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그만 갑자기 엔진이 멈춰 버렸습니다. 주위에 인가라고는 몇 마일 이내에는 한 채도 없었습니다. 나는 기계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우리 아버님은 움직이는 거라면 뭐든지 다 고치셨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능력이 유전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토바이를 길옆에 세우고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한 동안 멍하게 서 있었습니다. 시동을 다시 걸어 보려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바퀴들을 발로 힘껏 차 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버튼들을 다 눌러 보았지만 그것도 헛수고였습니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어딘가에 숨겨 두고, 다른 차를 얻어 타고 집에 가서 뭔가 장비를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다른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습니다. 육중한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가 내 옆에 멈춰 섰는데, 그 위에는 험상궂게 생긴 바이커(biker; 오토바이 타는 사람 - 역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앞이 툭 터진 가죽 조끼를 입고, 머리를 길게 기르고, 팔뚝이 내 허벅지보다 더 굵고, 양쪽 팔뚝에 미이라 문신을 새긴 그런 진짜 바이커 말입니다. 그는 멈춰 서서 나를 쳐다보더니 역시 전형적인 거친 바이커 음성으로 내게 말했습니다. “문제가 있는 것 같구만.” 나는 “아, 예, 엔진이 멈춰 버렸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 내가 좀 볼까?”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가 내 오토바이를 내놓으라고 했다면 그냥 주어 버렸을 것입니다. 내 말은 그만큼 그가 무서웠다는 것입니다. 하여튼 그는 내 오토바이의 이곳 저곳을 만져 보더니 곧 다시 시동이 걸리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는데, 나는 그 때의 오싹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 이건 우선 임시로 고친 거고, 연장이 좀 더 있어야겠는걸.” “나는 여기서 겨우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으니까, 나를 따라오라구.” 나는 결코 그를 따라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대항할 만한 위치에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그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는 한참을 달려가더니 주도로에서 벗어나 관목들 사이로 난 좁은 비포장도로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전혀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간절히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오, 주님, 제가 범한 모든 죄를 지금 고백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오, 주님, 어떻게 좀 해 주세요!”

우리는 그 좁은 길을 따라 몇 마일을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작은 마당과 정비공장 비슷한 것이 나타났습니다. 우리 둘이 그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내게 마실 것을 권했습니다. 나는 “아니오, 감사하지만 별로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번에는 마약 담배 비슷한 것을 권했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것들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 오토바이를 고쳤습니다. 겨우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어서면서 “자, 이젠 잘 움직일 꺼야”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 순간 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얼마를 드려야 할까요?” 나는 그 때 그의 심장이 터져 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는 화를 버럭 내며 벽력같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를 내냐고? 당신은 바이커가 아냐?” 나는 “아, 예, 그렇지요”라고 겨우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한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거든, 다른 바이커가 곤란을 당했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으면 되는 거야, 알겠어?” 여러분들 중에서도 오토바이를 타시는 분이 있다면, 그것이 그들의 절대적인 불문율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 때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면서 염두에 두셨던 법칙도 그것과 똑같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핵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알게 해 주셨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으며, 우리의 영과 육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이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 전해 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그 은혜는 우리로부터 흘러 넘쳐서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계획이 얼마나 천재적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윌로우크릭 교회가 있는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들 가운데 하나인 시카고의 한가운데입니다. 그리고 시카고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애타게 갈망하고 있는 이 나라의 중심부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그저 작은 친절이나 도움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밤 잔과 떡을 함께 나누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찢기신 몸과 피를 통해 우리가 온전하게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우리가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 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내 교회가 어떻게 부흥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이 사람들을 취하여서, 은혜를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는 이 나라의 한 가운데에다가 그들을 내려놓았다. 그러니 어떻게 일이 잘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구원을 필요로 하고 있는 나라 한가운데에, 구원을 경험한 자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해 놓으셨다는 것은 모든 계획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계획입니다.

당신은 교회를 사랑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교회가 어디에 세워져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주님이 그것을 누구를 통해 세우려 하시는 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도록 하기 위해 당신이 주님께 받은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사명과 은사들을 기억하란 말입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주제는 이것입니다. 오늘날 부흥하고 번성하게 될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 세워지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세상 속에 세워지고, 우리에 의해 세워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 세워집니다. 약간 다르게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자신들의 확실한 기초를 기억할 때에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구별하는 것은 아주 미묘한 일입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우리 자신이 교회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그 은혜를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책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우리의 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우리에게 신뢰감을 불어넣어 줍니다.

연구가들은 현대 교회의 쇠퇴 혹은 몰락에 대해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어떤 지역들에서는 건강치 못한 증상들이 실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교회, 아름답고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신부는 결코 패배하여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태양은 타 없어질 수 있고, 혹성들은 그 궤도를 벗어날 수 있으며, 바다는 먼지로 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신 그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신의 말씀이 불명예를 당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신뢰감을 줄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만듭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정말로 그분의 교회라면, 이 교회를 계획하시고 세우신 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면, 내가 모든 싸움에 있어서 항상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것은 그분을 신뢰하는 일뿐입니다. 나는 교회의 모든 것들에 대해 그분에게 규칙적으로 말씀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몇 년 전 나는 짚을 엮는 기계를 빌리기 위해 교회 건너편에 있는 가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가게 주인은 가장 가까운 교회의 목사인 나를 알아보았습니다. 내가 짚 엮는 기계를 빌리러 왔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예, 목사님(Reverend), 마침 올해의 신 모델이 이제 막 우리 가게에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가 시범을 보여 드리죠.”

나를 목사님(Reverend)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대개 교회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그에게 “잠깐만요, 저는 매년마다 이 기계를 빌렸었기 때문에 작동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시범을 보이실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닙니다. 이것은 올해 처음 나온 신형 혼다(Honda) 모델입니다.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시범을 보여 드리죠. 혼다에서는 항상 새로운 것들을 내놓으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를 가게 뒤쪽에 있는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거기에는 과연 반짝거리는 새 혼다 모델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위치를 켠 후, 몸을 구부리고 시동을 걸기 위해 엔진에 달린 줄을 힘껏 당겼습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몸을 구부리고 다시 줄을 당겼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스위치를 점검하고 또 연료를 체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줄을 당겼지만 시동은 여전히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좀더 세게 당겼습니다. 하지만 실패였습니다. 그는 정말로 화가 나서는 다시 힘껏 줄을 당겼습니다. 또 실패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번에는 온 몸의 힘을 다해 줄을 당기고 나더니, 그래도 안되니까 세 문장이나 되는 긴 욕설을 늘어놨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목사라는 것을 기억하고는 나를 쳐다보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줄을 당기고, 또 욕을 하고, 다시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반복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내 오토바이가 혼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기계도 역시 혼다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혼다 제품에는 동력 차단 스위치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기계의 동력 차단 스위치를 살펴보았는데 스위치가 꺼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영원히 줄을 당긴다 해도 시동은 결코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한 십 분 정도 그는 계속해서 줄을 당기고, 욕을 하고, 사과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결국 내가 “자, 이제는 내가 좀 해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그가 조금 옆으로 비켜서자 나는 동력 차단 스위치를 살짝 비틀고는 몸을 구부리고 줄을 한 차례 당겼습니다. 그러자 그 기계는 힘찬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때 그의 표정을 보셨어야 합니다. 그는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괴로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걱정하지 말아요. 이것은 순전히 기적이었으니까”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나는 그 일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것이 내가 목회 사역을 대하는 태도와 너무나 똑같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는 단지 내가 더 힘차게 줄을 당겨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래도 일이 풀리지 않으면, 나는 더 힘껏 줄을 당깁니다. 나는 기독교인이 입에 담을 수 있을 만한 온갖 불평들을 속으로 삼키며, 더 힘껏 당기고 또 당깁니다. 하지만 전원이 연결되지 않았거나 스위치가 꺼져 있다면, 내가 아무리 땀을 흘리며 줄을 당긴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대개 완전한 패배가 코앞까지 닥쳤을 때에야, 나는 현실을 깨닫고 이렇게 외칩니다. “오 주님, 이것은 당신의 교회입니다. 당신께서 이것을 세우셨고,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내가 기도와 신뢰 그리고 순종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전에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움켜쥔 채 일을 했지만, 이제는 “오 주님, 다시 한 번 나를 통해 당신의 교회에서 일을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얼마나 아름답게 세우시는지를 보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 맺은말 ]
당신은 교회를 사랑하고 싶습니까? 먼저 죄악이 가득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는 이 세상 한 가운데에 교회를 세우십시오. 그리스도가 그것을 위해 죽으신 세상 속에 교회를 세우란 말입니다. 그리고 은혜에 대한 경험에 기초하여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당신이 깨닫고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그 은혜가 자연스럽게 당신으로부터 흘러 넘쳐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교회를 패배시킬 수 없다는 확신과 담대함 속에서 교회를 세우십시오. 나는 한 가지 그림을 소개하며 설교를 맺으려 합니다. 이것이 신학적으로 정확한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니 너무 교리적으로 따지지는 말기 바랍니다. 이것은 연약한 인간인 나에게 큰 힘이 되는 그림입니다. 오늘밤 설교한 내용들에 대해 생각해 볼 때, 나는 역사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그림이 마음속에 떠오릅니다. 나는 그날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천상의 존재들 앞에 서 계신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좌정해 계신 보좌 앞으로 예수님께서 한 걸음 나서시면, 하늘의 모든 존재들은 숨을 죽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제 신부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그녀는 멋지지 않습니까? 아름답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녀에게 기대했던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그런 교회를 세우고 또 그것을 사랑하기 위해 나의 모든 인생을 바칠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다함께 일어서서 기도 드리겠습니다. 팀 슈뢰더(Tim Schroeder)·캐나다 브리더시 콜럼비아 주 콜로나에 있는 트리니티침례교회 담임목사로 있다.

이 글은 Willow Creek Assosiation의 허락을 받아 번역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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