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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이 2천년만에 복음 회복했다”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08-02-05   조회수 : 176
“다락방이 2천년만에 복음 회복했다”

류광수 목사 이단시비 부른 다락방 특수화 주장 여전
정윤석 pride@amennews.com



▲ 다락방사명자 수련회에서 강연하는 류광수 목사(동영상캡쳐)

“한국교회 98%가 마귀에게 잡혔다” 등 극단적인 한국교회 비판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다락방전도운동(다락방)의 류광수 목사가 최근에도 ‘초대교회 말고 한번도 복음을 제대로 깨달은 적이 없다’, ‘다락방이 2천년만에 회복된 전도운동을 하는 곳이다’, ‘다락방이 2천년만에 복음을 회복했다’는 다락방 특수화 주장 등을 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류 목사의 이러한 주장이 담긴 설교는 2006년도 이후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그는 이런 극단적 설교를 핵심 훈련자는 물론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해 왔다.

다음은 평신도지교회 훈련이란 이름으로 2006년 10월 24일 진행한 설교다. 이 자리에서 류 목사는 “초대교회 말고 한번도 복음을 제대로 깨달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한국 교회도 제가 보기에는 정통한 복음을 받지 못하고, 거의 율법이 섞여서···. 안타까운 일이죠. 여러분 중요한 분들인데 신앙생활이 어려운 게 아닙니다. 교회사를 한번 쭉 살펴 보세요. 어떤 결론이 나옵니까? 초대교회 말고 한번도 복음을 제대로 깨달은 적이 없어요. 그러니 신비주의들이 나와서 들고 일어났다 이 말이에요.

한국교회에도 복음이 들어왔는데도 율법이 훨씬 강했어요. 심지어 한국에 처음에 어떡했습니까? 얼마나 율법적이었나요? 머리를 묶고 살았는데 기록에도 어느 여집사가 머리 자르고 파마하고 왔는데 충격받은 나머지 당회에서 의논해서 치리시켰습니다. 네, 복음 근처도 못간 것이죠.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치리감이야. 그러니까 복음을 모르는 것이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예배당에 여자, 남자 같이 못 앉았어요. 지금은 얼마나 다정스럽게 앉아있는가?”

류 목사의 주장에 의하면 한국교회는 복음을 깨닫지 못했다. 복음이 들어왔어도 율법이 강했고 결국은 복음 근처도 못 간 것이다고 말한다. 반면 다락방은 ‘2천년만에 회복된 전도운동을 하는 곳이자 복음을 깨달은 유일한 단체’라는 식으로 특수화시킨다.

“종교개혁이 있었던 때가 1500년이다. 지금까지 복음이 제대로 있었냐? 정확하게 보면 없다. 요한 웨슬레가 한 것은 영성 운동이지, 복음 운동이 아니다. 무디의 경우는 청년 운동을 한 것이다. 다락방이 복음을 회복한 것이 약 500년 걸렸다. 그 동안 성경적인 전도는 그동안에 없었다. 이렇게 많은 세월동안엘··. 성경적인 전도는 초대교회에 딱 한 번 있었다. 그래서 2천년만에 회복한 운동인 것이다. 이것을 다른 교단이 들으면 상당히 기분 나쁜 소리다.

최OO 목사가 그런 질문을 했다. 2천년만에 찾아낸 전도라면 그 동안에는 전도가 없었냐라고 했다. 물론 있었다. 그러나 성경적 전도 자료를 남긴 적이 없다. 지금까지···. 지금 성경을 들고 나와서 성경대로 전도하자고 나온 것이 2천년만이다. 실제적으로···. 보통 사건이 아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생겼어도 2천년만에 회복된 운동임을 알아야 한다”(류광수 목사, 2006년 4월 12일 충주호리조트, 현장복음메시지 41과~42과).

이 설교에서 류 목사는 성경적인 전도는 초대교회에 딱 한 번 있었고 다락방이 2천년만에 성경적인 전도운동을 회복했다고 주장한다. 2006년 4월 15일에 행한 ‘복음과 종교’라는 제목의 설교에서는 이 주장이 좀 더 심화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도 사실상은요, (복음을: 녹취자 주)제대로 깨닫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가 됐어요. 복음 제대로 깨달은 사람이 나왔습니다. 모세입니다. 복음을 깨달으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어요? 완전히 싸우지도 않고 10가지 재앙으로 이기게 되었습니다. 광야 가는 길에는요, 홍해도 갈라지고 물이 없으면 물도 나오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류 목사에 의하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은 복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고 모세는 복음을 깨달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복음은 단순히 전도운동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자, 깨달으니까 어떻게 되죠? 바벨론에 어마어마한 기적이 일어났어요. 심지어 바다에 길이 나고 사막에 생수가 나는 일이 벌어졌다 말예요. 한국교회, 세계교회 이렇다 저렇다 뭐 문제가 많은데. 다 틀렸어요. 복음이 없어서 그래요. 복음을 깨닫고 나니까 바벨론에서 나오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이래가지고 또 잊어버렸다. 참 이상하죠. 문제는 이 겁니다. 복음을 또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는 또 초대교회에 와서 복음이 회복되었어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바벨론에서 나온 지 500년 만에.”

그의 설교는 잘되고 형통하면 복음을 깨달은 것이요, 안되고 실패하면 복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또 지금 복음이 없어졌어요. 정말로 없어졌느냐? 네, 정말로 없어졌어요. 마틴 루터가 1517년에 종교개혁을 했는데 500년이면 2017년입니다. 아니 그동안에 복음이 없었다는 말이냐? 미안스럽습니다마는 요한웨슬레는 아무리 연구해봐도, 복음 전하지 않았습니다. 각성운동을 한 것입니다. 무디도 각성운동, 영성운동을 했어요. 그러니 점점 어려워지는 거예요. 교회가 점점 어려워진다니까요. 각성운동을 하면 각성이 안 되고 점점 어려워져요. 지금 이런 위기가 왔어요. 그리고 제가 아무리 찾아봐도요, 없습니다.”

이어지는 설교에서 류 목사는 다락방이 2천년만에 회복된 복음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성경에 있는 완벽한 전도를 찾아낸 것이 2천년만이다’는 부연설명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설교의 연장선상에서 그의 말은 단순한 전도운동을 의미하기보다 복음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깨닫지 못했다가 모세가 깨달았던 복음, 바벨론 이후 복음을 잊었다가 다시 초대교회 때 깨달은 복음, 그리고 복음을 잊었다가 다락방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복음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류 목사는 다락방 멤버들을 향해서는 모세 이후 4200년만에 나온 인물들이라고도 추켜세운다. 특수화도 이만저만한 특수화가 아니다.

“그래서 2000년만에 회복된 복음이라고 했더니 어떤 목사님이 제게 시비를 걸었죠. ‘류 목사님 저, 다락방에서는 2000년만에 복음이 회복되었다고 하는데 그럼 지금까지 전도가 없었습니까?’ 라고 했어요. 어, 있었죠! 있었는데 성경에 있는 전도는 제가 찾지를 못했어요. 찾으면 수정하겠는데 없어요. 저도, 공부 좀 했는데요,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성경에 있는 완벽한 전도를 찾아 내는 게 2000년만이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이 거(출애굽~현재까지를 뜻한다: 녹취자주) 다 합치면 얼맙니까? 4200년이에요! 여러분들이 4200년 만에 나타난 인물들이에요(청중들: 아멘!). 여러분 이거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앞으로 많은 분들이 보고 후회하거나 알게 될 겁니다. 계속 역사가 일어날 겁니다. 교회사를 똑바로 봐야 합니다. 제일 깨닫기 어려운 게 복음입니다. 은혜로 깨닫는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는 복음이 2000년만에 회복된 것이에요.”

최근 입수한 류 목사의 설교 자료들은 그가 한국교회에서 이단이나 사이비성 단체로 규정되던 1990년대 중반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장통합측은 1995년 류광수 씨의 다락방 운동을 ‘사이비성이 있다’고 규정했다. 다락방 전도운동을 하나의 전도의 방법으로 보는 차원을 넘어 전도의 유일한 방법인양 강조하는 인상을 강하게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성교회를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기성교회보다 다락방을 우월시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예장 고려측은 1995년 류 목사의 다락방 전도운동을 유사기독교운동, 사이비기독교운동으로 규정했다. 기성 교회의 목회자를 비방하며 성도를 교회에서 떠나게 하고 자기들이 주장하는 복음의 대열에 서지 않으면 구원마저 의심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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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투

김기홍 kimkh@amennews.com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삿 7:7).

살다보면 고통스러운 일을 당한다. 작게는 머리가 아프고 허리나 무릎 관절이 상한다. 크게는 심한 병이 온다. 재산이 날아가고 치욕을 당한다. 사고를 당한다. 누구나 이런 일이 안 일어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당하고는 아주 슬퍼한다. 더 자주 당하고 더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다. 그러면 삶이 너무 버거워진다.

한 주일 내내 사람들의 고통스런 이야기를 듣는다. 어찌 보면 돈이 좀 있으면 될 것 같고, 멋진 결혼 상대자만 있으면 될 것 같고, 새로운 약이 나오면 될 것 같다. 그러나 모든 게 있는 사람들도 여전히 고통스럽다. 문제의 원인은 돈도 사랑도 약도 아니다. 공해나 경기도 아니다. 마음을 지배하는 어둠의 영적세력이다.

성경은 삶 전체를 영적전투라고 말한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몸이 아프다고 호소한다. 사업이 안 된다고 괴로워한다.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병이나 실패나 사고로부터 시작해서 게으르고 방탕한 것 모두가 영적싸움이다.

성경의 전투를 살펴보라. 거기서 승리의 비결을 찾을 수 있다. 기드온의 전투는 세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거기는 영적인 원리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도 세상에서 일어났다. 그때 하늘에서는 무서운 미증유의 전투가 있었다. 거기서부터 싸움의 원리를 찾고 언제나 승리하기 바란다. 어떤 원리인지 살펴보자.

두려움을 거부하라

두려움은 어떤 형태건 거부하라. 기드온 당시는 이스라엘이 미디안 사람들의 치하에 있었다. 지배자들은 마음대로 악을 행한다. 재산을 탈취하고 부녀자를 끌어간다. 사탄의 노예가 되어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과 같다. 잘 있던 사람이 몹쓸 병에 걸리고 재산이 날아간다. 사고를 만나고 실패를 당한다.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 산다. 무서운 일이 언제든지 덮칠 수 있다. 얼마 전에도 20대 여인 둘이 납치되고 성폭행 당하고 죽었다. 남자 셋이서 음식점을 낸다고 그 악한 일을 한다. 그 앞에도 얼마나 더 죽이고 나쁜 일을 했는지 추궁중이다. 죽은 사람은 무서운 일을 당한다. 죽이는 사람들 역시 사탄의 노예로 망해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드온을 부르신다. 그를 도와서 미디안과 전쟁하고 그들을 이스라엘 땅에서 몰아내려고 하신다. 기드온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전쟁할 사람들을 모은다. 3만 2천명이 왔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수가 너무 많다. 이기더라도 하나님이 도와서 이긴 게 아니라 수가 많아서 이겼다고 생각하리라.”

기드온은 사람들에게 말한다. “두려워서 떠는 사람은 모두 돌아가시오.” 2만 2천명이 갔다. 싸움의 승패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신자는 이 원리를 알아야 한다. 무서우면 절대 못 이긴다. 뒤에 나오는 다른 원리도 중요하지만 여하간 두려워하면 끝이다. 두려움은 악이다. 언제나 싸움 앞에서는 수없이 외치라. “나는 두렵지 않다!”

미디안은 기드온과 싸우려고 아말렉과 동방 지역에 동맹했다. 메뚜기 떼처럼 군사가 많고 낙타만도 해변의 모래처럼 많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두려움의 그림자가 임한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이상하게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전투가 임하자 무질서하게 되고 적군과 아군도 구분 못하고 서로들 쳐 죽여 그 많은 군사가 자멸하고 말았다.

인간관계에서도 상대를 두려워하면 진다. 노예가 된다. 사업도 경쟁하는 데도 마찬가지이다. 이유 없는 두려움이 일어나도 못 당한다. 잠을 못 잔다. 사탄이 두려움을 줄 때 이길 사람은 없다. 심지어 신자들도 잘 모르면 세상 사람들처럼 두려워한다. 그래서 불신앙에 빠져 힘을 읽고 망한다. 성경은 두려워 말라고 강력히 말한다.

두려움의 제왕 사탄을 보라. 예수에게 완패했다. 전에는 주인이었지만 이제는 신세가 바뀌었다. 크기가 하늘만 했고 미디안 연합군처럼 많았지만 힘을 잃었다. 여전히 더럽고 악하지만 쥐나 바퀴벌레 수준이다. 그러나 두려워하면 나는 작아지고 상대는 강해진다. 똑바로 보라. 사탄을, 귀신을, 문제를, 병을. 아무 것도 아니다.

한두 번에 안 되더라도 계속 마음 훈련을 하라. 기드온도 그렇게 두려움을 극복했다. 이슬람은 하루에 다섯 번 외친다. “알라는 위대하시다.” 그들만큼도 안 되면 되겠는가! “크시도다 주 하나님!” 나도 위대하다. 그들을 지배하도록 하나님이 아들로 다시 낳아주셨다. 사실은 귀신들이 나를 두려워한다. 문제가 병이 실패가 나를 무서워한다.

이기는 행동을 하라

기드온의 군사 중 두려워 떠는 사람들은 다 돌아갔다. 일만 명이 남았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아직도 많다. 내가 말하는 대로 해서 정예를 뽑아라.” 이길 사람들을 뽑는 것이다. 물가로 데려갔다. 물에 얼굴을 대고 먹는 사람들, 무기를 놓고 무릎 꿇고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선택된 사람들은 오직 3백 명이었다.

선택된 용사들은 이기는 행동을 했다. 한 손에 무기를 들고 만약을 대비하며 다른 손으로 물을 떠먹었다. 마시는 시간은 더 걸리지만 경계태세는 확실하다. 이것이 용사의 자세요, 신자의 자세이다. 신자는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나님을 의지해서 약점을 고쳐서 강하게 만든다. 그냥 자기 약한 부분을 내버려두고 굴복하지 않는다.

몸이 나른한가? 머리가 아픈가? 그러면 교회 쉬고 사우나 가는가? 늦잠 자는가?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간다. 이런 분들은 너무 쉽게 몸이 나른하다. 그래서 교회 못 나온다. 주일마다 손님이 오는가? 주일마다 부부가 다투는가? 그러면 거기 맞추어서 조심을 해야 한다. 작은 일 같지만 복 받는 길에서 완전히 제외된다.

늘 불평하고 늘 걱정한다. 그럴수록 불평거리가 많아지고 삶은 고달파진다. 이건 지는 행동이다. 삶이 힘든가? 몸 아프고 괴로운 일만 일어나는가? 속지 말자. 확실하게 거부하라. 이기는 자세를 찾으라. 사탄에게 이용당하면 안 된다. 걱정하고 불평하는 마음 들어오지 않게 자세를 갖추고 살펴야 한다. 잘 되는 행동으로 바꾸어야 한다.

사탄은 약점을 노린다. 술, 돈, 이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 것들을 좋아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화투 좋아하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쉽게 사탄에게 당한다. 어느 여자가 노름빚에 쫓겨 같은 노름빚에 쫓기는 여자를 부인 있는 자기 남동생에게 소개한다. 바람나게 하고 적금을 깨게 한다. 결과는 모두의 멸망이다.

성경에도 여자 좋아하다가 솔로몬이나 삼손 같은 인물들이 망한다. 게으르다가 망한 사람도 있다. 자기 약점을 알면서도 사탄이 공격하게 한 것이다. 자기는 그렇게 생겼고 성질이 그렇다고 주장하지 말라. 사람들하고 어울리기 싫다고 교회도 잘 안 가고 가더라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평생 그러다가 마칠 것인가? 이기는 행동을 만들어보라.

하나님께 선택받는 용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교회를 가까이 한다. 예배도 예배의 자세가 필요하다. 시작부터 마치는 시간, 그리고 교우들과 교제하는 시간 모두가 신자에게는 중요하다. 예배는 축복의 심장부이다. 목숨 걸고 나와야 한다. 예배에 나와서도 예배의 자세를 갖지 않는 이, 참 불행하다. 평생 교회 다녀도 삶은 풀리지 않는다.

승리는 약속된 것

신자는 이미 승자이다. 그런데도 늘 속는다. 병들고 망하는 게 속는 것이다. 괴로워하고 싸우는 게 속는 것이다. 거부하고 서라. 병 위해 기도한다. 문제 놓고 기도한다. 그래도 그냥 있다. 그러면 속는다. 말씀 안 믿고 문제를 믿는다. 귀신보고 나가라면 나가겠다고 하지 않는다. 안 나간다고 한다. 문제도 병도 속인다. 자기가 아직 왕이란다.

어떤 분은 북한에 가니까 기도가 막힌다고 한다. 어떤 분은 앙코르와트에 갔다가 귀신이 많아 병 걸렸다고 가지 말란다. 싸우는 집에 가면 귀신이 많아서 가슴이 답답하단다. 어떤 분은 태국에서 기념품을 사왔다. 계속 사고가 나고 병이 나서 기도해 보니까 그 기념품 때문이란다. 토착신의 우상이라나? 신자가 그 귀신들보다 약한가?

귀신들과 싸우느라 밤새웠다고 자랑하는 분도 있다. 이미 이긴 귀신들과 왜 밤새 싸우는가? 기도원에서 매일 철야해야 하는 분도 있다. 이게 속는 것이다. 미신적 신앙이다. 그냥 승리를 선포하고 자기 할 일을 하면 된다. 기도온과 3백 용사는 승리자로 전쟁에 임했다. 신자는 이미 승리했다. 귀신에게 문제에게. 자신에게 승리를 선언하라.

귀신들은 이미 패했다. 신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 바퀴벌레가 수없이 많아도 우리를 이길 수 없다. 그들을 두려워한다면 자기 집도 남의 집이다. 사탄은 바퀴벌레만큼도 못하다. 귀신 때문에 기도가 안 되고 무덤에 못 가고 밤에 혼자 있으면 잠을 못 잔다면 자기 권리도 못 찾는 신자이다. 주께서 주신 건강과 행복을 주장하라.

예수께서 하신 일들을 그대로 주장하라. 이미 이긴 귀신과 밤새 싸울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그냥 기도하고 명령하고 말아야지. 기도는 내가 하는 것이지 저절로 입에서 막 나와야 하는가? 절 근방에 가면 기도가 막히고 머리가 아프다면 이미 속고 있는 것이다. 바퀴벌레의 소굴에 들어가도 아무런 해를 받지 않는다. 악령을 분명히 알아야한다.

스스로 확인해 보라. 무엇이 나를 눌러왔는가? 어떤 분은 온 몸이 다 아프단다. 어떤 분은 사업이 막혔고 어떤 분은 가정이 엉망이다. 그만 속고 이제 자신의 권리를 찾으라.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이기는 행동을 하라. 모든 저주를 흔들어 떨어버리라. 절대로 약해지지 말라. 자신에게 예수의 말씀을 들려주고 확고히 서라.

사탄에게 속던 생각과 행동을 고치라. 꾸준히 발전시키라. 복음 말씀을 듣고 승리로 도전하라. 시간이 걸린다고 약해지면 안 된다. 건강을 자기 몸에게 명령하고 일으키라. 좋은 음식을 먹이고 운동도 하고 필요하면 약도 먹이라. 사업도 그렇다. 연구하고 배우고 도전하라. 삶 전체가 그렇다. 약속된 승리 향해 끝까지 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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