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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한경직 목사 ‘평생 재정조력자’ 최창근 원로장로/ 2010-04-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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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운영자(kylggc@hanmail.net) 작성일 : 2013-07-30 조회수 : 107 | |
“아신대 사태는 일부 인사들 사심 때문” ![]() 올해는 일평생 기독교 교육과 사회봉사에 헌신했던 한경직 목사의 소천 10주기가 되는 해다. 위대한 지도자 뒤에는 항상 충성스런 조력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최창근(97) 영락교회 원로장로는 한 목사의 ''오른팔''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 섬유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던 최 장로는 한 목사가 제시한 비전(중·고·대학교 설립, 군 선교, 기드온협회 창립 등)에 순종하며 수백억원대의 재정을 투입해 그것을 현실화시켰다. 허름한 양수리 자택에서 최 장로를 만났다. -고령에도 여전히 건강하십니다. "몇 해 전 무릎과 척추수술을 하고 나니 거동이 불편해졌어요. 집안에서도 2개의 지팡이를 짚고 다닙니다. 그래도 매주일 오전 10시면 아들과 함께 서울 영락교회로 향합니다. 이젠 먼저 하늘나라로 간 분들이 더 많아요. 너무 오래 산 것 같아요. 허허." -올해 한 목사님의 10주기 기념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됩니다. 목사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한 목사님과는 47년 첫 만남을 갖고 50년 넘게 섬겼습니다. 그 어른은 정말 애국심이 강한 분이셨어요. 늘 우리나라가 바로 서려면 젊은이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철저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재산을 기부하신 겁니까. 일례로 76년 영락고등학교 건축 당시엔 4억원이라는 큰돈을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평생 한 목사님의 선교를 돕는 것을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목사님도 선교계획을 구상하면 늘 저를 불러 재정과 행정문제를 상의했어요. 하나님이 축복해주신 재물은 주님이 기뻐하실 일에 쓰고 가는 것이 교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에 동석한 장남 인석(69)씨는 97년 IMF 구제금융으로 회사가 부도난 뒤 서류를 정리하면서 부친이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 알게 됐다고 귀띔했다. 최씨는 "아버지는 재산을 헌납하면서 한번도 가족과 상의하지 않았고 가족들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면서 "남들은 우리 집안에 돈이 엄청 많아서 그 중 일부를 기부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오해다. 사실 아버지는 전부에 가까운 재산을 내놓았다"고 설명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엔 27만4400여㎡(8만3000평)나 되는 땅을 기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학내 문제로 복잡합니다. "아신대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선교 사업이었습니다. ''아시아 복음화를 실천할 지도자 양성''이라는 한 목사님의 막중한 비전에 공감해 재산을 내놨고 30년간 모 목사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그 목사님이 스스로 설립자를 자처하며 학교를 사유화했다고 해요. 세상에 이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 발전보다는 현실에 안주해 자기 이익에 몰두하는 교수들도 문제죠. 학교에 주인이 없는 상황에서 일부 인사들이 사심을 품은 결과입니다." -기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백성이니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자기 소유로 뭘 가지려고 집착해서도 안 됩니다. 세상에 우리 소유가 있는 것 같지만 엄밀히 따지면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돌려드림으로써 기쁨과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그동안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이 적힌 액자는 수도 없이 봐왔다. 하지만 최 장로 자택에 걸려 있는 액자만큼 그토록 준엄한 느낌을 준 것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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