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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목사 ‘생가복원운동’ 추진
작성자 : 운영자(kylggc@hanmail.net)  작성일 : 2008-06-14   조회수 : 76
주기철목사 ‘생가복원운동’을 추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순교한 소양 주기철목사가 어린시절을 비롯 22년동안 신앙생활을 한 고향교회인 경남 진해시 성내동 웅천교회(담임=오성한목사)를 중심으로 최근 ‘생가복원운동’이 일어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주기철목사〈사진〉의 생가는 빈터로 남아있으며 어릴 때 자란 사랑채는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상당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이 집에는 불교신자가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랑채 주변이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있어 한국교회의 관심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오성한목사는 “사랑채 구입과 함께 생가를 복원해 교인들의 신앙교육과 역사교육, 학문연구, 순교신앙의 전수를 위해 훈련장으로 활용할 경우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고 한국교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아울러 오목사는 “이 일은 한국교회의 역사적 책임이요 꼭 해야할 일”이라고 말하고 “순교신앙에 대한 의식이 약해져가는 후세들 특히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살아있는 체험장을 만들어 주자”고 강조했다.

이어 오목사는 “한국교회 교인들이 역사의식을 갖고 훌륭한 신앙의 모범이 되었던 선배 신앙인의 삶을 본받게 하기 위해 사료관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하고 주기철목사의 사료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동참을 권했다.

현재 주기철목사와 관련된 책은 20여권이 발행돼 있으며 논문은 300여편이 각지역 도서관이나 개인에 의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진해시기독교연합회도 이 일에 관심을 갖고 있어 앞으로 ‘생가복원운동’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주기철목사는 1897년 11월 25일 주현성장로와 조재선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지난 1910년 12월 25일 처음 교회에 출석했으며 원래 이름은 ‘기복’이었으나 ‘기독교를 철저히’라는 의미로 ‘기철’로 개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웅천개화학교와 오산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했으나 하나님의 섭리중에 눈병을 얻어 웅천으로 낙향해 결혼을 하고 집사로 교회를 섬기다가, 1920년 고 김익두목사의 사경회에 참석해 은혜를 받고 목회자가 될 것을 결심하고 평양신학교에 입학, 졸업후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후 부산초량교회와 마산문창교회, 평양산정현교회에서 각각 목회를 하였다.

산정현교회 재임당시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4차례의 걸친 투옥과 고문 끝에 1944년 4월 순교했다. 주기철목사의 순교정신을 이어 받아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하자’는 신념으로 이 일에 매진하고 있는 오목사는 “반드시 이 선한 뜻이 이루어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특히 오목사는 생가복원 후원(www.jubo52.co.kr)과 관련해 후원금은 가장 투명하게 한국교회 앞에 공개될 것 이라고 강조했다.

기독교신문/박병득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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